'국제무역논쟁'에 해당되는 글 9건

  1.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⑥] 공정무역을 달성하기 위해 경기장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한다 - 미일 반도체 분쟁과 전략적 무역 정책 논쟁 12 2019.01.13
  2.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⑤] 닫혀있는 일본시장을 확실히 개방시키자 - Results rather than Rules 2 2019.01.10
  3.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④] 전략적 무역정책 - 관세와 보조금으로 자국 및 외국 기업의 선택을 변경시켜, 자국기업의 초과이윤을 증가시킬 수 있다 1 2019.01.06
  4.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③]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을 수 없다 - 생산의 학습효과가 작동하는 동태적 비교우위 3 2019.01.02
  5.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②] 마틴 펠드스타인,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은 국가경쟁력 상실이 아니라 재정적자 증가이다" 2 2018.12.31
  6.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①]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다 (New Protectionism) 12 2018.12.29
  7.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 5 2018.12.07
  8.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③]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3 2018.08.05
  9.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 2 2018.07.25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⑥] 공정무역을 달성하기 위해 경기장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한다 - 미일 반도체 분쟁과 전략적 무역 정책 논쟁[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⑥] 공정무역을 달성하기 위해 경기장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한다 - 미일 반도체 분쟁과 전략적 무역 정책 논쟁

Posted at 2019. 1. 13. 23:26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일본의 불공정 무역관행이 기울어진 경기장을 만들었다


지난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시리즈[각주:1]를 통해 누차 살펴봐왔듯이, 1980년대 미국은 대내적으로는 경기침체 · 대외적으로는 세계경제적 지위 감소를 겪고 있었습니다. 이런 거시적 환경은 미국 내에서 보호주의 압력을 증대시켰습니다. 그리고 타겟은 '일본' 이었습니다.


'닫혀있는 일본시장(closed Japanese market)'[각주:2]은 미국 기업들의 불만을 자아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낮은 관세율을 기록하고 있었지만, 일본정부의 지도 아래 시행되는 차별적 규제 · 일본기업들 간 폐쇄적 경영 등은 미국기업이 일본시장에 진입하기 어렵도록 만들었습니다. 일본의 GDP 대비 제조업 상품 수입 비중은 수십년이 지나도록 낮은 수준을 기록한 반면, 미국으로의 수출은 계속 늘려왔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미국기업들의 불만에 불을 부은 것은 '정부의 보호와 지원에 힘입은 일본 반도체 산업의 성장' 입니다. 


위에 첨부된 1985년 및 1990년 세계 반도체 회사 매출액별 순위를 보시면 NEC · Hitachi · Toshiba 등 일본 기업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70년대 중반 반도체 세계시장에서 미국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60% 였던 반면 일본기업은 30% 미만 이었습니다. 그러나 1985년 두 국가는 45%씩 동률이 되었고 때때로 일본이 우위를 점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D램 분야에서 일본의 성장이 돋보였습니다. 미국기업 점유율은 1978년 70%에서 1986년 20%로 하락했고, 일본기업은 30%에서 75%로 상승했습니다. 


이러한 일본 반도체 기업의 성장에는 일본정부, 특히 통상산업성(MITI, Minstry of International Trade and Industry)과 재무성(MOF, Ministry of Finance)의 보호와 지원이 있었습니다. 통산성과 재무성은 외국 기업의 일본시장 접근을 차단한 채, 선택받은 일본 기업들에게 금융 · R&D 지원을 대규모로 단행하였습니다. 또한, 외국기업이 기술이전을 하지 않으면 일본시장에 진입할 수 없게끔 막았습니다.


덕분에 일본 기업들은 미국 반도체 기업의 선진기술을 빌려오거나 무단으로 모방할 수 있었고, 대규모 투자를 위험을 줄인채 실시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덤핑을 통해 해외시장에 아주 값싼 가격에 물건을 팔아 점유율을 늘려나갔습니다.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덤핑'(dumping) · '시장 접근'(market access) · '반도체 설계 특허권'(chip design patent) 이슈를 두고 불만을 품을 수 밖에 없었고, 일본정부로 인해 '기울어진 경기장 위에서 불공정한 경기를 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공정무역'(fair trade)을 강조하는 레이건 대통령의 연설이 1985년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주 :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시리즈 첫번째 글에서 첫번째로 나온 문단) 


"국제적인 무역 시스템이 작동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모든 국가들이 규칙(rules)을 준수하고 개방된 시장(open market)을 보장하도록 애써야 한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자유무역(free trade)은 말그대로 공정무역(fair trade)이 된다."[각주:3]


"다른 나라의 국내시장이 닫혀있다면(closed) 이는 자유무역이 아니다(it is no longer free trade). 다른 나라 정부가 자국의 제조업 및 농업에게 보조금(subsidies)을 준다면 이는 자유무역이 아니다. 다른 나라 정부가 우리 상품을 베끼도록 놔둔다면(copying) 이는 우리의 미래를 뺏는 것이고 자유무역이 아니다. 다른 나라 정부가 국제법을 위반하고(violate international laws) 그들의 수출업자를 지원한다면 경기장은 평등하지 않은 셈(the playing field is no longer level)이 되며 이는 자유무역이 아니다. 다른 나라 정부가 상업적 이익을 위해 산업 보조금을 집행하여 경쟁국에게 불공정한 부담을 안긴다면(placing an unfair burden) 이는 자유무역이 아니다."[각주:4]


"우리는 GATT 체제와 국내법 하에서 국제통상에 관련한 우리의 권리와 이익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할 것이다. 다른 국가들이 우리와 맺은 무역협정과 의무를 준수하는지 지켜볼 것이다. 만약 무역이 모두에게 불공정하다면, 자유무역은 이름 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외국의 불공정한 무역관행(unfair trading practices)으로 인해 우리의 기업인들이 실패(fail)하는 것을 가만히 옆에 서서 지켜보지 않을 것이다. 다른 나라들이 규칙에 따라 행동하지 않아서(do not play by the rules) 우리의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마는 사태(lose jobs)를 가만히 옆에 서서 지켜보지 않을 것이다."[각주:5]


- Douglas Iriwn, 2017Clashing Over Commerce: A History of US Trade Policy, 606쪽 재인용


이제 1980년대 미국 무역정책 목표는 '평평한 경기장'(level playing field)을 만들어서 국가 간에 '공정한 무역'(fair trade)을 하는 것이 되었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제시된 방법 중 하나가 '전략적 무역 정책'(Strategic Trade Policy) 입니다. 


  • 왼쪽 : 1980년대, 전략적 무역 정책 실시를 강력하게 주장했던 로라 D. 타이슨 

  • 오른쪽 : 전략적 무역 정책 이론을 만들었으나, 현실 속 적용은 반대했던 폴 크루그먼


로라 D. 타이슨(Laura D. Tyson)은 자유무역 체제의 한계를 강하게 비판하고 전략적 무역 정책의 필요성을 설파하면서, 1980년대 미국 내 무역논쟁의 한 축을 담당했습니다. 그녀는 반도체 · 전자 · 의약 등 고부가가치 최첨단산업(High Value-added, High-Tech)은 다른 산업보다 경제 전체에 더 이로움을 주기 때문에, 미국정부의 보호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전략적 무역 정책 이론을 만들어낸[각주:6] 폴 크루그먼(Paul Krugman)은 정작 현실 속 적용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는 "산업정책 옹호론자들이 제시하는 대부분의 기준은 형편없으며 비생산적인 정책을 낳을 것이다. 경제이론상 정교한 기준들이 많이 존재하지만, 우리는 론적모형이 실제 정책처방으로 적절한지 충분히 알지 못한다."라며 산업정책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냅니다.


이제 이번글을 통해, 1980년대 미국-일본 간에 벌어진 '반도체 무역분쟁'을 살펴보면서 당시에 발생한 국제무역논쟁을 더 자세히 이해하도록 합시다. 




※ 1970년대 말, 보호 · 통제 · 미국기술 모방으로 급성장한 일본 반도체 산업


1960-80년대 일본의 고도성장을 상징하는 기관은 통상산업성(MITI)과 재무성(MOF) 입니다. 이들 기관은 기업들에게 자원을 인위적으로 할당하고 경영방향도 제시하는 '지도'(administrative guidance)를 통해 경제발전을 이끌었습니다.


특히 통산성(MITI)과 재무성(MOF)의 역할은 '일본 반도체 산업 발전과정'에서 더욱 돋보입니다


1970년대 말부터 세계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일본 반도체 산업 뒷면에는 정부의 지원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통산성은 초고밀도 집적회로(VLSI) 연구개발을 위해 Fujitsu, Hitachi, Mitsubishi, NEC, Toshiba 등 선택받은 일본기업들에게 1976-79년동안 약 2억 달러를 지원했습니다.  


이에 더하여, 통산성은 '외국기업의 시장접근 통제'와 '일본기업간 공동 R&D 지원' 정책을 통해 선진 미국 기술을 일본으로 옮겨왔고 일본 기업간 불필요한 경쟁을 억제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반도체산업 성공의 결정적 요인이 되었습니다.


▶ 통제된 접근 (Controlled Access)


통산성과 재무성은 일종의 '도어맨'(doorman) 역할을 하였습니다. 외국기업이 일본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허가가 필요했습니다. 재무성은 외국인 직접투자(FDI)를 규제했고, 통산성은 특허 · 라이센스 형태의 기술수입(technology imports)을 통제했습니다. 


즉, 통산성은 외국기업의 시장진입 조건으로 '기술이전'(transfer of technology)을 강요했는데, 미국 반도체 기업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의 사례가 이를 보여줍니다.


1968년 TI는 일본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SONY와 합작투자 협약을 맺었습니다. 1960년대 초반 100% 지분을 가진 자회사를 설립하려고 했었으나 일본정부가 허가하지 않아서 합작투자로 선회한 겁니다.  


이과정에서도 반도체 부품 중 핵심기능을 맡는 집적회로(IC) 설계 특허를 일본기업에게 라이센스 해주느냐를 놓고 줄다리기가 오고갔습니다. 일본정부는 TI가 가진 특허권 효력을 일시정지 시키면서 협상에 응하기를 압박했습니다. 결국 협상의 결론은 'TI와 SONY의 5:5 합작투자 및 TI의 일본시장내 점유율 최대 10%로 제한'이 되었습니다.


마이클 보러스(Michael Borrus) · 제임스 밀스타인(James Millstein) · 존 지즈먼(John Zysman) 등은 <미국-일본 간 반도체 산업 경쟁>(<U.S.-Japanese Competition in the Semiconductor Industry>)을 통해, "TI의 사례가 보여주는 기술확산 및 제한된 시장접근 전략은 일본기업이 미국의 기술수준을 모방할 수 있게 해주었다"[각주:7]고 말합니다.


▶ 일본 기업간 R&D 협력 (Collaborative R&D)


일본 통산성은 이렇게 들여온 미국 선진기술을 사용하는 방식마저 통제하였습니다. 정부는 일본기업들 간에 범용기술이 확산되도록 독려하였고, 특정 상품에만 사용되는 기술은 위험이 크다는 이유로 지원을 꺼렸습니다.


그리고 일본 기업간 (쓸데없는) 경쟁이 초래할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 통제하였고, 기업들에게 각각의 임무를 부여했습니다.


▶ 보호와 통제 그리고 미국으로부터의 기술이전으로 급성장한 일본 반도체 산업


1980년대가 되자 미국 반도체 기업의 일본시장 접근이 겉보기에는 보다 쉬워졌습니다. 미국산 반도체 상품 관세가 지속적으로 인하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본시장은 여전히 폐쇄성을 띄고 있었습니다. 일본 반도체 회사들은 다른 전자상품도 생산했기 때문에 반도체 구매자이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미국산 반도체의 구매량과 종류를 통제하였고, 케이레츠(keiretsu)를 구성하고 있는 계열회사에게도 이를 강제했습니다. 


이런 보호 속에서 일본정부의 R&D 투자 금융지원은 확대되었고, 미국으로부터 전수받은 기술은 일본 반도체 산업의 수준을 재빠르게 끌어올렸습니다. 그 결과, 1984년 세계 RAM 생산에서 일본 기업들이 차지하는 점유율은 제품 종류별로 60~90%에 달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본 반도체 산업 발전은 '정부가 비교우위를 창출'(Creating Advantage)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글 '생산의 학습효과가 작동하는 비교우위'[각주:8]를 통해 일본 경제발전의 이론적 함의를 배웠습니다. 폴 크루그먼은 1987년 논문 <The Narrow Moving Band, The Dutch Disease, and The Competitive Consequences of Mrs.Thatcher - Notes on Trade in the Presence of Dynamic Scale Economies>를 통해, 과거부터 많은 양을 생산하여 지식을 많이 축적한 기업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여 높은 생산성을 달성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때, 기업이 자국 정부의 보조금 지원에 힘입어 생산에 착수하고 관세라는 보호막에 힘입어 자국 내에서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다면, 이러한 보호 기간 중에 쌓은 지식과 노하우로 언젠가는 상대적 생산성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습니다. 일시적인 보호가 비교우위를 영구히 바꿔놓은 겁니다.


크루그먼은 일본정부의 산업정책을 사례로 논문을 썼던 것이고, 제목 중 'The Narrow Moving Band'는 한 산업을 발전시킨 뒤에 다른 산업으로 정책이 옮겨가는 모습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 1981년, 정치적행동을 시작한 미국 반도체 산업 협회(SIA)


이렇게 정부의 보호와 지원 아래 성장한 일본 반도체 업계가 1970년대 후반부터 세계시장을 점유해감에 따라, 미국 반도체 업계는 심각한 위기감을 느꼈고 정치적행동을 개시합니다. 이들은 1977년 반도체산업협회(SIA, Semiconductor Industry Association)를 창립합니다.


SIA가 미국정부에 요구한 사항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미국기업 보호와 지원. 둘째는 일본의 불공정 무역관행 시정 입니다.


SIA는 반도체 칩 설계 특허권 보호, R&D 세제지원 등을 미국 정부에 요구하였고, 덤핑(dumping)과 시장접근(market access) 등 일본의 불공적 무역을 정치적으로 이슈화 시켰습니다. 그리고 정치적 이목을 끌기 위하여 '공정무역'(fair trade) · '평평한 경기장 만들기'(level playing field)를 일종의 캐치프레이즈(?)로 삼았는데, 이 단어들은 1980년대 미국-일본 간 무역분쟁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 미국정부는 우리 기업을 보호하고 지원하라!



당시 미일 반도체 분쟁은 메모리칩을 중심으로 발생했습니다. 1985년 기준 전체 반도체 상품 중 메모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18%였고, 특히 DRAM 하나가 7%를 기록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메모리 반도체 업계의 특징은, ① 신제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R&D 고정투자가 선행되어야 하며(large fixed costs), ② 제품 출시 사이클이 매우 짧으며(rapid product cycles) ③ 기업들이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메모리 반도체 세대 전환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점(unprepared transition) 입니다. 


① 앞서 말했듯이, 일본정부는 초고밀도 집적회로(VLSI) 개발에 4년간 2억달러를 투자했으며, 전체 반도체 산업에 들어간 직접적 · 비집적적 금융지원은 1976-82년간 약 5억~20억 달러로 추산됩니다.


② (오늘날에도 그렇듯이) DRAM 메모리는 짧은 주기로 고성능 상품이 출시되는 패턴을 가지고 있습니다. 1970년 1K 램이 등장한 이래 1973년 4K, 1976년 16K, 1979년 64K, 1982년 256K, 1985년 1M, 1989년 4M, 1991년 16M 램이 개발되었죠. 


③ 이때 제품의 상용화는 개발이 완료되었을 때가 아니라 생산비용이 이전세대에 인접한 수준으로 떨어졌을 때 이루어지는데, 기업은 이 시점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1976년 개발된 16K 상품은 생산비용이 4K와 유사한 수준까지 하락한 1978년이 되어서야 상용화 되었습니다.  


이러한 세 가지 특징은 '반도체 업계 R&D 투자는 본질적으로 위험성이 높다'는 점을 드러내줍니다.


본 블로그의 다른글 '창조적파괴를 통한 경제성장 모형'[각주:9]에서 살펴보았듯이, '현재 성공한 기업이 누리고 있는 독점이윤은 오직 다음 혁신이 발생할 때까지만 지속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혁신이 자주 발생한다는 것은 혁신에 성공했을 때 기쁨을 누리는 기간이 짧아짐을 의미합니다.


즉, ① 대규모 R&D 투자를 단행해야 적어도 뒤처지지는 않는데 ② 짧은 제품 출시주기는 비용을 회수할 수 있는 기간도 짧게 만들며 ③ 정확히 언제 수익을 실현할 수 있을지 그리고 언제 현재 상품이 구세대로 전락할지 정확한 예측은 힘듭니다. 


여기서 미국기업이 가진 불만은 "일본기업은 정부의 보호 아래 투자위험성을 줄이고 있는데, 미국정부는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고있냐"는 것이었습니다.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공동 R&D 투자를 통해 위험을 줄이고 싶었는데 反독점법은 이를 규제하고 있었으며, 미국정부는 일본기업의 특허권 침해도 수수방관 하고 있었습니다.


SIA가 반도체 칩 설계 특허권 보호, R&D 세제지원 등을 미국 정부에 요구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미국정부는 일본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시정하게끔 압박하라!



SIA가 더욱 중점을 둔 것은 '일본의 불공적 무역관행 시정' 이었습니다. 아무리 미국정부가 기업들을 도운다 하더라도, 일본기업의 덤핑과 일본시장 접근 제한이 계속된다면 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 반도체 업계의 불만은 반도체 산업 침체기에 더욱 높아졌는데, 특히 1981년 DRAM 가격 하락으로 인한 침체가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일본기업의 덤핑 → 가격 하락 → 치킨 게임 → 미국 반도체 기업 침체 및 퇴출'이 발생하면서, 미국 기업들은 일본정부를 상대로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을 명확히 인지하기 시작했습니다.


레이건 행정부 시기 상무부 부차관보을 역임했던 클라이드 프레스토위츠(Clyde V. Prestowitz)는 다음과 같이 회고 합니다. "시작은 1981년 가을이었다. 미국 반도체 업계를 대변하는 사람이 워싱턴에 빈번하게 출입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단순한 보호가 아니라, 일본 덤핑의 종료 · 일본이 미국에서 물건을 파는 것과 동일한 기회를 일본시장에서 갖기 · 반도체 설계 특허 침해 방지 등을 요구하였다."[각주:10]




※ 최첨단산업의 중요성 및 전략적 무역 정책의 필요성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볼 것이 있습니다. 왜 유독 '반도체 산업'을 둘러싸고 미국-일본 간 무역분쟁이 크게 벌어진 것일까요? 물론 당시 전자 · 자동차 · 철강 · 섬유의복 등등 다양한 산업들도 일본 및 개발도상국의 발전에 따른 경쟁심화에 불만을 가졌으나, 대중들의 주목을 유독 끈 것은 반도체 였습니다.


미국 대중들은 반도체 산업을 '최첨단산업'(High-Tech Industry)으로 인식하였고, 일본기업에게 최첨단산업 주도권을 내준다면 미국의 미래도 빼앗길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 로라 D. 타이슨과 그의 1984년 저서 『누가 누구를 때리는가? - 최첨단 산업 내 무역분쟁』


최첨단산업의 중요성 · 국가경쟁력 상실 · 정부개입의 필요성 등의 인식이 확산되게끔 큰 역할을 했던 인물이 바로 로라 D. 타이슨(Laura D. Tyson) 입니다. 그녀는 1984년 『누가 누구를 때리는가? - 최첨단 산업 내 무역분쟁』(『Who's Bashing Whom? - Trade Conflict in High-Technology Industries』)과 여러 논문·보고서를 통해, '일본정부의 불공정 무역으로 인해 위기에 처한 미국 최첨단 산업의 현실'을 묘사했고, '미국정부가 전략적 무역 정책을 구사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그녀가 왜 이러한 주장을 했는지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합시다.


▶ 반도체 · 컴퓨터 등 최첨단 산업이 다른 산업보다 더 가치가 있는 이유


타이슨은 반도체 · 컴퓨터 등의 '최첨단산업'(high-tech)을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서 미국정부가 적극적인 무역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최첨단산업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성격이 전체 경제에 이로움을 안겨다 주기 때문입니다.


첫번째 성격은 '초과이윤'(excess profits) 및 '고부가가치'(high value-added) 입니다. 반도체 등 최첨단산업을 키우기 위해서는 막대한 고정비용이 요구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진입장벽이 존재합니다. 만약 진입을 한다고해도 고정비용을 회수할만큼의 이윤을 거두지 못하면 시장에서 퇴출됩니다. 결국 이미 자리를 잡은 한 개 혹은 소수의 기업만이 시장에 존재하여 양(+)의 이윤을 누리게 됩니다.


두번째 성격은 'R&D 활동의 파급영향'(spillovers from R&D activities) 입니다. 반도체 신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R&D에 집중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발견되는 기술 및 축적된 신지식이 다른 산업의 발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또한, 지식의 외부성[각주:11] · R&D 그 자체의 중요성[각주:12] 등을 강조한 신성장이론이 등장한 시대적 배경도 최첨단산업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켰습니다.


세번째 성격은 '연계가 가져다주는 외부성'(Linkage Externality) 입니다. CPU와 RAM 등 반도체 부품은 여러 제품에 투입요소(input)로 들어갑니다. 이때, 반도체 산업은 기술이 발전하고 경험이 축적될수록 생산성이 향상되어 비용이 감소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반도체 산업 발전은 다른 제품 생산비용을 감소시키는 긍정적 영향을 가져다줍니다.    


▶ 전략적 무역 정책을 통해 미국 기업을 보호·지원 해야하는 이유


이렇게 가치 있는 최첨단산업을 보호하고 키우기 위해서 자유무역 원리에 위배되는 무역정책을 구사할 필요가 있을까요? 특정 산업이 가치가 있다는 것과 보호무역 정책을 써야 한다는 것은 서로 다릅니다.


이때 주목해야 하는 최첨단 산업의 또 다른 특징은 '생산자 간 전략적 고려가 행해지는 과점시장'(strategic behavior in oligopoly market) 이라는 점 입니다. 


'전략적 무역 정책'을 소개한 지난글[각주:13]에서 이야기 했듯이, 과점 생산자는 '다른 생산자의 선택을 고려하여 결정'을 내리는 전략적 행위를 합니다. 이로인해 상대방 이윤이 늘어날 때 자신의 이윤은 감소하는 '전략적 대체관계'가 나타납니다. 이는 정부의 개입으로 초과이윤을 만들어내는 산업에서 외국기업을 희생시켜 자국기업의 세계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다(increase a country's share of rent in a way that raises national income at other countries' expense)는 함의를 안겨다 줍니다. 


로라 D. 타이슨은 "미국 최첨단기업의 세계시장 속 경쟁 지위가 약화됨에 따라, 보호와 지원을 바라는 요구가 증대되었다"[각주:14]고 말합니다. 그리고 "최첨단산업의 특별한 특징-규모의 경제와 가파른 학습곡선-을 고려하면, 기업의 전략적 무역 접근 요구가 증가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외국시장 접근 여부와 외국 기업 및 정부의 행위는 국내 기업의 수익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미국 시장은 개방되어 있고 외국 시장은 닫혀있다면, 외국 경쟁자는 자국내 생산량 증대 덕분에 효율성과 생산의 학습효과을 누리게 되는 반면, 국내 경쟁자는 쪼그라든다."[각주:15]고 강조합니다.


따라서, 정부가 개입하여 외국 기업의 초과이윤을 국내 기업으로 이전시키는 '전략적 무역 정책'(Strategic Trade Policy)의 필요성이 부각됩니다.


타이슨이 생각하는 전략적 무역 정책은 ① '국제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규칙'을 정립하고(internationally accepted rules of the game for competition), 이를 외국에게 강제하고 압박하기 위하여 ② 달성해야할 부문별 성과를 구체적으로 정하는 것(specifying sectoral outcomes) 입니다.


이전글에서 살펴본 루디 돈부쉬[각주:16]가 "일본의 미국산 제조업 상품 수입 증가율은 다음 10년간 연간 15%씩 증가해야 한다"라고 말하며 '규칙 보다는 결과'(Results rather than Rules)를 말한 것과 타이슨의 주장은 약간 다릅니다. 돈부쉬는 경제 전체 혹은 대분류 산업을 타겟으로 결과를 달성하기를 원했다면, 타이슨은 구체적인 산업을 타겟으로 규칙을 먼저 정립하는 방식을 선호하였습니다. 결과를 추구하는 건 어디까지나 외국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 현행 GATT 체제에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런데 타이슨은 당시 국제무역 체계였던 GATT 하에서는 전략적 무역 정책이 추진될 수 없다고 평가했습니다. 약 120개 국가가 참여하고 있는 GATT 시스템상 빠르게 진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GATT는 관세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보조금 · 덤핑 등 비관세장벽(non-tariff barriers)이나 지적재산권 침해로 인한 피해(intellectual property)를 규제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타이슨은 반도체 부문을 대상으로 미국-일본 간 양자협상(bilateral agreement)을 통해 공정한 규칙을 제정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 이것은  '공정한 게임'(fair play)을 요구하는 것이다


또한, 그녀는 무조건적인 보호무역정책(unconditional protectionism)보다 전략적 무역 접근(strategic trade approach)이 미국정부에게 우호적일 수 있다고 바라봤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전략적 무역 정책은 일본에게 '공정한 게임'(fair play)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보호주의가 아니라 불공정 무역관행을 시정하여 평평한 경기장을 만드는 것(level playing field) 입니다. 


둘째, 협정을 통한 규칙 제정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수많은 외국정부들이 최첨단산업이 경제성장과 생활수준 향상을 위해 중요하다고 확신하고 있었고, 이로 인해 자국 기업을 지원하는 정책들이 늘어만 갔습니다. 결국 국가간 협정은 불가피한 일이었습니다.


▶ 정부가 해야할 선택은 자유화와 개입을 적절히 혼합하는 것


로라 D. 타이슨은 경제학 박사학위를 가진 학자였으나, 국제무역이론이 상정하는 세계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겼습니다. 그녀는 "현실 속 국제무역 세계는 자유무역 세계가 아니며, 정부는 다양한 방식으로 무역을 관리한다(manage)"[각주:17]고 생각했습니다. 자유무역론자들이 만든 GATT의 규제 또한 정부간 협상의 결과물 입니다.


그녀는 "일반론인 자유무역 이론을 현실에서 말해서는 안되며(no general theoretical principles), 정책결정권자가 해야하는 선택은 순수한 자유무역 vs 순수한 보호무역이 아니라, 자유화와 개입을 적절히 혼합하는 것이다(choices about the appropriate combination of liberalization and government intervention). 이것이 국민후생을 증대시키고 더 개방된 국제무역 시스템을 지속하게끔 만든다."[각주:18]고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미국이 다른 선진 산업국가와 최첨단산업 규칙(rules)을 둘러싼 관리무역협정(managed trade agreement)을 맺는 것이 현명하며, 이를 통해 '특정 산업에서 협력과 표준을 달성할 수 있다'[각주:19]고 재차 강조했습니다.




※ 1986년, 미국-일본 반도체 협정 체결 


1980년대 초중반은 이처럼 미국 내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무역정책을 요구하는 압력이 높아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레이건 행정부는 자유주의를 신봉하고 있었고, 반도체 업계의 요구에 회의적으로 반응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부처마다 상반된 의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습니다. 기업계와 노동계를 대표하는 상무부와 노동부는 일본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시정하기를 원했으나, 냉전기 동맹 · 안보를 중요시했던 국무부 등은 동맹국인 일본을 압박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상황이 반전된 것은 1985년 이었습니다. 


반도체 업계는 가격 하락으로 인한 또 다른 불황이 시작을 겪게 되었고 특히 메모리 칩 시장에 집중되었습니다. 반도체 판매는 20% 감소했고 DRAM은 60%나 줄었습니다. SIA는 다시 정부에 대책을 요구하였고, 1985년 6월 14일 일본 반도체 기업을 '1974년 통상법 제301조' 위배혐의로 미 무역대표부(USTR)에 제소합니다. 


'1974년 통상법 제301조'(Section 301 of the Trade Act of 1974)란 'unreasonable, unjustifiable, discriminatory'한 외국의 무역행위를 USTR이 조사한 이후 대통령의 제재조치가 실시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미국 법안입니다. 1984년, unreasonable 정의에 '공정하고 동등한 시장 기회를 부정하는 어떠한 법안, 정책, 관행'(any act, policy, or practice which denies fair and equitable market opportunities)을 추가함으로써, 일본의 불공정 무역행위에 일방적 보복을 할 수 있는 법률적 기반을 제공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재선에 성공하고 1985년 출범한 레이건 행정부 2기는 이전과 달리 일본의 불공정 행위를 심각하게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1985년 달러가치는 최고수준을 기록하며 무역적자가 계속 심화된 경제 환경도 정책방향을 선회하게 만들었습니다.


1985년 9월, 레이건 대통령의 'fair trade' 연설이 나오게 되었고, 미 무역대표부(USTR)는 일본 반도체 업계의 행태를 크게 문제삼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1986년 초, 미국 반도체산업 협회(SIA) · 무역대표부(USTR)와 일본 전자산업 협회(EIAJ) · 통상산업성(MITI) 간 시장진입(market access) · 덤핑(dumping)을 주제로 한 협상이 시작되었습니다. 


일본 EIAJ는 301조 보복을 종료시키고, 시장접근과 덤핑 이슈에 대해 구체적인 보장을 하지 않은채 협상을 끝내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미국 SIA는 덤핑을 확실히 방지하고, 실제적인 시장접근('real' market access) 보장을 얻어내지 않는 한 협상을 마무리 할 의사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단지 일본에서 판매할 기회를 얻는 게 아니라 실제 판매의 증가(actual realization of sales)를 원했습니다.


그 결과, '1986년 미국-일본 반도체 협정'(1986 U.S.-Japan Semiconductor Trade Agreement)이 체결되었습니다. 그리고 협정과정에서 '향후 5년내 일본시장에서 외국산 반도체 상품 점유율 20%를 기록한다'는 구체적인 성과를 강요하는 내용이 다루어졌고, 1991년 반도체 협정 개정에서 공식적으로 문구가 삽입되었습니다. 




※ 전략적 무역 정책을 둘러싼 비판, 경제학자들의 노파심 때문일까?


1980년대 자유무역에서 전략적 무역으로의 미국 무역정책 전환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큰 논란을 낳았습니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일본에게 공정한 게임을 요구했고, 반도체 협정을 통해 성과를 이루어냈으니 된 거 아니냐?" 라고 하기에는 더 생각해봐야 할 논점들이 존재했습니다.


  • 전략적 무역 정책을 이론화 하였으나 실제 적용에는 회의적이었던 폴 크루그먼

  • 1983년 잭슨홀미팅에서 '산업정책'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다

  • 크루그먼의 발표 보고서 <Targeted Industrial Policies: Theory and Evidence>


결국 전략적 무역 정책의 현실 적용을 둘러싸고 경제학자들 간에 논쟁이 거세게 붙게 됩니다. 1983년 <산업변화와 공공정책>(<Industrial Change and Public Policy>)을 주제로 한 잭슨홀미팅이 논쟁이 벌어진 장소였습니다. 


폴 크루그먼은 <Targeted Industrial Policies: Theory and Evidence> 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하며 주목을 끌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당시 신무역이론[각주:20]생산의 학습효과[각주:21] · 전략적 무역 정책[각주:22] 이론화를 이끌었던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크루그먼은 "향후 10년간 산업을 targeting 하는 정책들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질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산업이 targeted 되어야 하는가? 결국 중심 이슈는 선택의 기준(criteria for selection)이 될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이어서 크루그먼은 "산업정책 옹호론자들이 제시하는 대부분의 기준은 형편없으며 비생산적인 정책을 낳을 것이다. 경제이론상 정교한 기준들이 많이 존재하지만, 우리는 이론적모형이 실제 정책처방으로 적절한지 충분히 알지 못한다."[각주:23]라며 산업정책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냅니다.


전략적 무역 이론의 개발자가 왜 실제 정책 처방에 회의적인지, 그의 논리를 따라가면서 이해해 봅시다.


▶ 대중적인 기준(Popular Criteria)이 가진 문제점


로라 D. 타이슨은 최첨단산업을 타겟으로 한 산업·무역정책이 실시되어야 하는 근거로 고부가가치 · 연계가 가져다주는 외부성 · 미래 경쟁력 등을 들었는데, 크루그먼은 이러한 기준들이 다 타당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① 1인당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 (High value-added worker)


: '고부가가치 산업'을 선택하여 육성하자는 주장은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다른 조건이 일정하다면, 고부가가치 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 비중이 높아질수록 1인당 국민소득이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크루그먼은 "왜 산업별로 근로자 1인당 부가가치가 다르냐?"는 물음을 던집니다. 특정 산업이 1인당 부가가치가 높은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자본이 많이 투입되었을 뿐이라는 게 크루그먼의 설명입니다. 


따라서, 이들 산업의 자본/노동 비율은 매우 높기 때문에, 고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한다면 주어진 투자 수준에서 더 적은 사람이 고용될 것이고 실업률은 올라갑니다. 또한, 한계생산체감에 의해서 경제성장률은 점점 떨어집니다. 결국 고부가가치 부문 투자를 독려하는 산업정책은 실업률 상승과 느린 성장을 가져온다는 것이 크루그먼의 주장입니다.


② 연계된 외부성을 가져오는 산업 (Linkage)


: 앞서 타이슨은 반도체 등은 다른 산업의 투입요소(input)로 쓰이기 때문에, 이들 산업이 발전하면 타산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여겼습니다. 당시 다른 학자들 또한, 일본의 경제발전 성공요인을 철강 · 전자 · 반도체 등 투입요소의 성격을 지닌 산업을 육성했다는 점에서 찾곤 했습니다.


그러나 크루그먼은 "시장을 왜곡시키는 요인이 없다면, 시장은 알아서 연계산업에 필요한 적절한 양의 투자를 집행했을 것"[각주:24]이라고 말하며, 시장원리를 강조합니다. 물론, 연계산업 진흥을 방해하는 시장실패가 존재할 수도 있지만, 다른 산업의 투입요소로 작용한다는 기준만으로 산업정책을 시행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합니다[각주:25]


③ 미래 경쟁력 (Future Competitiveness)


: 반도체와 같은 최첨단산업은 말그대로 최첨단이기 때문에, 미래 경쟁력을 위해 육성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크루그먼은 "궁극적 경쟁력은 산업정책 대상을 선정할 때 유용한 기준이 아니다. 이 산업이 경쟁력을 가지게 될지 아닐지 알더라도, 이것은 그 산업이 보호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는다"[각주:26]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유치산업보호론 논쟁[각주:27]을 통해서 이미 살펴본 바 있습니다. 유치산업 정책은 '특정한 경우'에만 타당하며, 특정한 경우란 외부성 등 시장실패가 존재하는 때를 의미합니다. 즉, 단순히 잠재적 성장 가능성 등만으로 산업정책을 시행해서는 안된다는 게 크루그먼의 주장입니다.


▶ 더 정교한 기준(More Sophisticated Criteria)이 가진 문제점


전략적 무역 정책은 '규모의 경제 · 외부성 · 과점 등 불완전경쟁'을 기반[각주:28]으로 하고 있습니다. 불완전경쟁 시장구조는 자유무역 정책이 타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통찰은 제공하였지만, 항상 전략적 무역 정책을 적용할 수 있다고 받아들이면 안됩니다.


지난글에서 짚었듯이, 꾸르노 모형 · 스타겔버그 모형 등등을 사용하여 전략적 무역 정책의 논리를 그럴싸하게 설명 하였으나, 정부는 개별 기업의 보수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혹시 어떤 행위를 선택할지는 안다고 하더라도, 정확히 어느 정도의 보조금을 지원해야 외국기업의 행동을 자국기업에게 유리하게 변경시킬지는 알지 못합니다. 


즉, 전략적 무역 정책은 모형의 파라미터 값의 변화나 기본 전제가 변하면 결론도 크게 달라지며, 크루그먼은 이를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줍니다.


▶ 보호주의 정책이 자유무역 정책을 대체할 가능성에 노파심을 갖는 경제학자들 

 

전략적 무역 정책을 만든 경제학자가 현실 속 실행을 반대한다는 건 매우 이상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학자들에게 이는 매우 자연스럽고 권장할만한 행위 입니다. 왜냐하면 경제학 이론과 학자들의 주장은 '특정한 조건이 주어져있을때'를 전제로 하고 있으며, 이것을 고려치않고 남용할 경우 해로운 결과를 사회에 안겨다준다는 걸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레이건 행정부 시기 대통령 경제자문위원장을 역임한 마틴 펠드스타인은 "감세로 인한 재정적자가 무역적자의 원인이다."[각주:29]라고 말하며 정부의 감세정책을 비판했으나, 레이건 정부 인사들이 감세정책을 고안해낸 건 그의 연구 덕분이었습니다. 펠드스타인은 "조세가 경제주체의 행위를 왜곡시킨다"는 논문을 출판했었는데, 보수 정치인들은 이를 "그러므로 세금을 없애야한다"로 받아들였습니다. 이건 펠드스타인이 의도하지도 동의하지도 않은 정책입니다. 


전략적 무역 정책을 만든 폴 크루그먼 · 제임스 브랜더 · 바바라 스펜서도 이 점을 우려하여 논문 말미에 "이건 이론적 논의일 뿐이다"며 주의를 주었으나, 타이슨 및 기타 인사들은 "자유무역 정책은 오늘날에 맞지 않다. 그러므로 정부의 개입이 꼭 필요하다."로 선전했습니다. 이것은 신중한 경제학자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행태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새로운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기를 반대하고, 전통적인 자유무역 주장을 고수하는 아이러니한 행보를 보였습니다.


1980년대 자유무역 정책을 고수하며 옹호했던 경제학자들은 그 누구보다 자유무역 원리가 가진 한계와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더 문제로 인식하는 건, 그들의 주장이 보호주의자들의 선전으로 가로채질 가능성 입니다. 


우리는 [국제무역논쟁] 시리즈 첫번째 글[각주:30]에서 '노파심을 가지고 자유무역 원리를 계속 설파해야 하느냐 vs. 자유무역의 문제점을 대중들에게 신중히 설명해야 하느냐'의 논점을 살펴본 바 있습니다. 


경제학자 대니 로드릭은 2018년 출판된 『Straight Talk On Trade』 서문을 통해, "트럼프의 충격적인 대선 승리에 경제학자들의 책임이 있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하며, 경제학자들은 자신들의 신중한 분석이 보호주의자들에게 남용되어 '야만인들의 탄약'(ammunition for the barbarians)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에 노파심을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어서 그는 경제학자들의 이러한 노파심이 오히려 대중들의 외면을 부른다고 지적합니다.  "경제학자들의 주장이 대중논쟁장에서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 누군가에 의해 가로채질 위험은 항상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이 '학자들은 국제무역에 있어 한 가지 방향만 말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 "경제학자들은 사회적 논쟁 장에서 목소리를 잃게 된다. 그들은 또한 무역의 옹호자로 나설 기회도 잃고 만다."


우리는 앞으로 살펴볼 [국제무역논쟁 10's 미국] 시리즈, 즉 오늘날 중국 제조업의 발전과 교역확대가 초래하는 무역논쟁을 볼 때에도, 노파심으로 인해 자유무역 원리만을 고수하는 경제학자들이 대중들에게 외면받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겁니다.




※ 공격적 일방주의 및 GATT 한계가 가지는 의미는? 


미국 반도체 산업 협회(SIA)가 일본 반도체기업을 제소할 수 있었던 근거는 '1974년 통상법 제301조'(Section 301 of the Trade Act of 1974) 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불공정 무역 관행 여부를 판단한 것은 당시 국제무역 시스템이었던 GATT가 아닌 미국정부 였습니다. 미국정부가 자국의 무역이익 침해여부를 스스로 판단하고 일본을 상대로 보복조치를 취한 겁니다.


GATT는 말그대로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을 의미하는데, 1980년대 벌어진 무역분쟁에서 거의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습니다. GATT는 주로 관세를 규제하는데, ① 시 국가들은 관세가 아닌 보조금 · 덤핑 등 비관세장벽을 이용하여 자국의 이익을 보호했습니다. 또한, ② 국가간 무역분쟁이 일어났을 때에도 이를 중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③ GATT는 서비스산업 · 지적재산권 등 당시 미국이 우위를 가지고 있는 부문을 다루지 못했고, 이는 미국의 불만을 자아냈습니다. 일본 등 다른나라들이 자국의 지적재산권을 침해하는데 GATT 체제 속에서 대응을 하지 못하였으며, 서비스산업 무역자유화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미국은 자국의 법률인 1974년 통상법 제301조를 근거로 일방적 보복을 행사하였고, 이후 1988년 종합무역법(Omnibus Trade and Competitiveness Act of 1988) 속 '슈퍼301조'(Super 301 Article)를 제정하여 '공격적 일방주의'(aggressive unilateralism) 행보를 강화해 나갑니다.


이처럼 1980년대 미국의 무역정책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자국의 이익이 침해되는 상황'에서 'GATT 체제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공격적 일방주의 행보'를 보였다는 점 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미국의 모습은 오늘날에도 재현되고 있습니다. 이제 다음글에서 1980년대 미국의 무역정책이 가지는 의미를 알아본 이후, [국제무역논쟁 10's 미국]으로 넘어가 오늘날 미국-중국 간 무역분쟁을 이해합시다.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⑦]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을 무시한채, 미국이 판단하고 미국이 해결한다


  1.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①]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다 (New Protectionism) http://joohyeon.com/273 [본문으로]
  2.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⑤] 닫혀있는 일본시장을 확실히 개방시키자 - Results rather than Rules http://joohyeon.com/277 [본문으로]
  3. to make the international trading system work, all must abide by the rules. All must work to guarantee open markets. Above all else, free trade is, by definition, fair trade. [본문으로]
  4. When domestic markets are closed to the exports of others, it is no longer free trade. When governments subsidize their manufacturers and farmers so that they can dump goods in other markets, it is no longer free trade. When governments permit counterfeiting or copying of American products, it is stealing our future, and it is no longer free trade. When governments assist their exporters in ways that violate international laws, then the playing field is no longer level, and there is no longer free trade. When governments subsidize industries for commercial advantage and underwrite costs, placing an unfair burden on competitors, that is not free trade. [본문으로]
  5. we will take all the action that is necessary to pursue our rights and interests in international commerce under our laws and the GATT to see that other nations live up to their obligations and their trade agreements with us. I believe that if trade is not fair for all, then trade is free in name only. I will not stand by and watch American businesses fail because of unfair trading practices abroad. I will not stand by and watch American workers lose their jobs because other nations do not play by the rules. [본문으로]
  6.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④] 전략적 무역정책 - 관세와 보조금으로 자국 및 외국 기업의 선택을 변경시켜, 자국기업의 초과이윤을 증가시킬 수 있다 http://joohyeon.com/276 [본문으로]
  7. ''the strategy of technological diffusion and limited market access, implied in the TI story . . . enabled Japanese firms roughly to mimic technological developments in the United States.'' 폴 크루그먼이 편집한 '전략적 무역 정책과 신국제경제학'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8.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③]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을 수 없다 - 생산의 학습효과가 작동하는 동태적 비교우위 http://joohyeon.com/275 [본문으로]
  9. [경제성장이론 ⑨] 신성장이론 Ⅱ - 아기온 · 호위트, 기업간 경쟁은 창조적 파괴를 통해 혁신을 불러온다(quality-based model) http://joohyeon.com/259 [본문으로]
  10. It was at this juncture in the fall of 1981 that representatives of the U.S. semiconductor industry began making regular trips to Washington. They asked not for protection but for an end to the Japanese dumping, for the same opportunity to sell in Japan as the Japanese had in the United States, and for an end to Japanese copying of new chip designs.- 출처 : Irwin, 1996 재인용 [본문으로]
  11. [경제성장이론 ④] 수렴논쟁 Ⅰ- P.로머와 루카스, '지식'과 '인적자본' 강조 - 수렴현상은 없다 http://joohyeon.com/254 [본문으로]
  12. [경제성장이론 ⑧] 신성장이론 Ⅰ - P.로머,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다양한 종류의 투입요소가 끝없는 성장을 이끈다 (variety-based model) http://joohyeon.com/258 [본문으로]
  13.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④] 전략적 무역정책 - 관세와 보조금으로 자국 및 외국 기업의 선택을 변경시켜, 자국기업의 초과이윤을 증가시킬 수 있다 http://joohyeon.com/276 [본문으로]
  14. demands for protection and support by high technology producers have intensified as their competitive position in world markets has weakened. [본문으로]
  15. The special features of high-technology producers make their growing demands for strategic trade approaches understandable. 32 As just noted, such producers are often characterized by large economies of scale and steep learning curves. Under these circumstances, access to foreign markets and the behavior of foreign firms and governments can directly affect the profitability of domestic producers. In industries in which the U.S. market is open and large foreign markets are closed, foreign competitors may be able to achieve more efficient scale and learning advantages as a result of increased volume in domestic and overseas markets, while domestic competitors are squeezed into a portion of the domestic market. [본문으로]
  16.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⑤] 닫혀있는 일본시장을 확실히 개방시키자 - Results rather than Rules http://joohyeon.com/277 [본문으로]
  17. In reality, the world of inter national trade is not a world of free trade. Governments control or manage trade in various ways. [본문으로]
  18. For informed policy making, the real choices are not choices between pure free trade and protection-which most economists incorrectly equate with managed trade-but choices about the appropriate combination of liberalization and government intervention that will improve national economic welfare and sustain a more open, international trading system over time. [본문으로]
  19. greater coordination and standardization of behavior in specific industries [본문으로]
  20. [국제무역이론 ④] 新무역이론(New Trade Theory) - 상품다양성 이익, 내부 규모의 경제 실현 http://joohyeon.com/219 [본문으로]
  21.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③]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을 수 없다 - 생산의 학습효과가 작동하는 동태적 비교우위 http://joohyeon.com/275 [본문으로]
  22.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④] 전략적 무역정책 - 관세와 보조금으로 자국 및 외국 기업의 선택을 변경시켜, 자국기업의 초과이윤을 증가시킬 수 있다 http://joohyeon.com/276 [본문으로]
  23. The answers I will suggest are not encouraging. Most criteria for targeting suggested by the advocates of industrial policy are poorly thought out and would lead to counterproductive policies. While there are more sophisticated criteria suggested by economic theory, we do not know enough to turn the theoretical models into policy prescriptions. [본문으로]
  24. What does formal economic theory have to say? In textbook economic models, the fact that some industries are inputs into other industries is not in and of itself a source of market failure. In the absence of other distorting factors, the market will in theory produce exactly the appropriate amount of investment in linkage industries. [본문으로]
  25. The fact that an industry provides inputs into other industries does not in and of itself mean that markets underinvest in that industry. There may be market failures which do make it desirable to promote a linkage industry, but the fact that an industry provides inputs to the rest of the economy gives us no help in deciding whether or not it should be targeted. [본문으로]
  26. Unfortunately, knowing that an industry will or might become competitive tells us nothing about whether it should be promoted. [본문으로]
  27.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 http://joohyeon.com/272 [본문으로]
  28.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④] 전략적 무역정책 - 관세와 보조금으로 자국 및 외국 기업의 선택을 변경시켜, 자국기업의 초과이윤을 증가시킬 수 있다 http://joohyeon.com/276 [본문으로]
  29.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②] 마틴 펠드스타인,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은 국가경쟁력 상실이 아니라 재정적자 증가이다" http://joohyeon.com/274 [본문으로]
  30. [국제무역논쟁 시리즈] 과거 개발도상국이 비난했던 자유무역, 오늘날 선진국이 두려워하다 http://joohyeon.com/263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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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⑤] 닫혀있는 일본시장을 확실히 개방시키자 - Results rather than Rules[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⑤] 닫혀있는 일본시장을 확실히 개방시키자 - Results rather than Rules

Posted at 2019. 1. 10. 00:01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문제는 일본시장의 폐쇄성(closed market) !!!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시리즈를 통해 살펴보았듯이, 세계경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의 감소 · 생산성 둔화 · 무역적자 심화 등 거시경제 환경 악화[각주:1] 미국민들에게 국가경쟁력 상실의 우려를 안겨주었습니다.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 의장 마틴 펠드스타인 등 경제학자들 "무역적자는 경쟁력 상실이 아닌 자본흐름 변화 때문이다.[각주:2] 또한 절대적 생산성이 둔화되더라도 여전히 비교우위에 의한 교역은 가능하다" 라고 말하였으나, 미국 기업들은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세계시장 속 경쟁에 노출되어 있는 미국기업들은 "외국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을 수 없다"[각주:3]는 인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반도체 · 전자 · 자동차 · 철강 등은 대규모 고정투자가 필요하며, 생산량이 많은 기업만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여 이익을 거둘 수 있습니다. 결국 개별 국가 내에서 독점 혹은 과점 형태로 기업이 자리잡고 있으며, 전세계적으로도 소수의 기업만이 존재합니다. 


이렇게 과거와 달라진 시장구조는 "외국정부의 자국기업 보호지원 정책이 미국기업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안겨다 줄 수 있다"[각주:4] 라는 새로운 통찰을 탄생시켰고, "외국의 불공정무역 관행을 시정케하거나 미국정부도 자국기업을 돕는 산업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는 보호주의 무역정책 요구가 미국 내에서 커졌습니다 



미국기업이 문제 삼았던 외국은 바로 '일본'(Japan) 이었고, 이들의 '닫혀있는 시장'(Closed Market)이 불만을 자아냈습니다.


1980년 미국 GDP 대비 무역적자 비중은 0.7% 였으나, 1985년 2.8%, 1987년 3.1%로 대폭 증가하였는데, 이 중에서 대일본 무역적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 가까이에 달했습니다.  


특히 대일본 무역적자의 상당수를 제조업 상품(Manufactured Goods) 교역이 초래하였고, 미국기업들은 일본의 공식적 · 비공식적 무역장벽들로 인해 일본시장에서 낮은 점유율을 기록할 수 밖에 없다고 인식했습니다. 실제로 위의 그래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일본의 제조업 상품 수입 비중은 1967-1990년동안 전혀 증가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들(intangible barriers) 입니다. 


분명 일본은 일찍부터 GATT에 가입한 상태였고 관세도 차츰차츰 인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본 재무성(MOF) 및 통상산업성(MITI)의 지도 아래 시행되는 여러 차별적 규제들(administrative guidance) · 여러 기업이 뭉쳐 하나의 기업집단처럼 행세하는 계열체제(Keiretsu) 등 일본 특유의 경제시스템은 외국상품 판매를 가로막았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1980년대 미국 내에서 일본시장을 '확실히' 개방시킬 수 있는 무역정책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습니다. 


단순히 관세인하 등 무역 규칙(rules)을 변경하는 것으로는 비공식적 장벽을 허물 수 없기 때문에, 수입물량 · 무역수지 등 지표의 목표값을 정해놓고 이를 강제해야 한다(quantitative targets)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이른바, '규칙 보다는 결과'(Results rather than Rules) 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미국 내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을 일으켰습니다. 


자유무역 원리를 고수하는 학자들은 이런 시도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았고, 근본적으로 일본 시장은 닫혀있지 않다는 인식도 존재했습니다. 다른 한편, 일본시장 폐쇄성이 문제이긴 하지만 전체 무역수지 등 총집계지표(aggregate)를 대상으로 하는 건 부적절 하다는 의견도 있었고, 성과(outcome)를 내는 무역정책을 찬성하며 이를 적극적으로 구사해야 한다는 학자들도 있었습니다.


이제 이번글을 통해, 정말 일본시장이 폐쇄적인지 · 일본시장 개방을 위해 필요한 무역정책을 두고 어떠한 논쟁이 펼쳐졌는지를 알아봅시다.




※ 일본시장은 정말 폐쇄적인가? 


  • Robert Z. Lawrence, 1987, <일본 내 수입: 닫혀있는 시장 혹은 닫혀있는 마음?>(<Imports in Japan: Closed Markets or Minds?>) 
  • 비슷한 무역흑자국인 독일과 비교해봤을 때, 일본의 제조업 상품 수입은 현저히 적다


일본시장의 폐쇄성을 논할 때 주로 이용되는 근거는 '극도로 낮은 제조업 상품 수입 비중' 입니다. 


1986년 기준, 일본과 독일 모두 제조업 상품 수출로 GDP 대비 10% 가량의 막대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었으나, 독일은 수입비중이 14%를 기록하며 비교적 수입 또한 많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수출비중(10.4%)에 비해 수입비중(2.2%)이 현저히 낮았고, 독일의 수입비중과 비교해보아도 극도로 낮은 값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일부 학자들은 선진산업국가와 멀리 떨어져 있는 일본의 지리적 위치상 수입이 적을 수 밖에 없다 라거나 일본의 부존자원 특징상 1차상품 교역으로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제조업으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하며, 일본시장이 폐쇄적이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한 경제학자는 구체적인 근거를 들며, 일본시장이 실제로 외국기업에 배타적임을 보였습니다. 바로, 로버트 Z. 로런스 입니다.


  • 로버트 Z. 로런스 (Robert Z. Lawrence)

  • 1987년 연구보고서 <일본 내 수입: 닫혀있는 시장 혹은 닫혀있는 마음?>

  • 1991년 연구보고서 <일본은 얼마나 개방되어 있나?> In 『일본과의 무역: 문이 더 넓어졌나?』


경제학자 로버트 Z. 로런스 (Robert Z. Lawrence)"'여러 기업이 모여 하나의 기업집단처럼 행세하는 케이레츠 (Keiretsu) · 일본기업간 오랜 기간에 걸친 협력과 거래 (long-term relationships) · 종합상사회사가 중심이 된 유통시스템 (general trading companies) 등의 일본 특유의 경제시스템이 외국산 상품 판매를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로런스가 말하는 논리를 하나하나 따라가 봅시다.


▶ 일본의 기업내 무역 패턴 (Intra-Firm Trade Patterns)


로버트 Z. 로런스가 주목하는 것은 '기업내 무역 패턴'(Intra-Firm Trade Patterns) 입니다. 


기업이 상품을 수출(수입)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입니다. 첫째는 수출대상국에 위치한 외국기업에게 물건을 판매하는 것(수입대상국에 위치한 외국기업으로부터 물건을 구매하는 것), 둘째는 자국에 위치한 모회사가 수출대상국에 설립된 자회사에 물건을 넘긴 이후 판매하는 것(수입대상국에 설립된 자회사가 물건을 구매하여 자국에 위치한 모회사에 넘기는 것) 입니다.


기업이 외국에 자회사를 설립하여 다국적기업 형태를 갖추는 주된 이유는 해외에 판매망을 직접 설치하여 상품 정보를 직접 전달하고 소비자로부터 피드백을 즉각 받기 위함 입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는 외국 딜러에게 물건을 건넬 수도 있지만, 미국 및 유럽 등에 직접 판매점을 설치함으로써 소비자와 직접 접촉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대부분 다국적기업은 자국에 생산거점을 두고 해외에는 판매 전문 자회사를 설치하는 downstream 구조를 보입니다. 


이러한 다국적기업 형태가 많아질 경우 독특한 무역패턴이 나타납니다. 당연히 동일한 기업내 교역 비중이 증가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 기업의 국적은 대부분 수출을 행하는 나라에 속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이 미국으로 수출을 한다고 했을 때, 한국의 모회사로부터 미국에 위치한 자회사로 물건을 수출하는 교역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을테지, 미국기업이 한국에 설립해놓은 자회사로부터 미국 모회사로 물건을 옮기는 비중은 비교적 적을겁니다. 완성품 수출은 한국이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만약 다국적기업이 upstream 형태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upstream이란 해외에서 원자재 등을 가져와 자국에서 생산하는 구조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기업들은 중동에 설립한 자회사로부터 석유 등을 수입해온 뒤, 한국에서 이를 정제한 제품을 만들어냅니다.


이 경우 앞서와는 다른 무역패턴이 나타납니다. 동일한 기업내 교역비중이 증가하는 건 마찬가지 입니다. 그런데 이때 기업이 국적은 대부분 수출을 행하는 나라가 아닌 수입을 행하는 나라에 속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중동이 한국으로 석유를 수출하는 것이지만, 이는 다르게 보면 한국이 중동으로부터 석유를 수입해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 모회사가 중동에 설립한 자회사로부터 석유를 들여오는 비중이 높을테지, 중동 모회사가 한국에 설립해놓은 자회사로 석유를 건네는 비중은 적을 겁니다. 원자재 수입은 한국 기업들이 하는 것입니다. 



  • 1986년 기업내 교역 비중 (%)
  • 1991년 연구보고서 <일본은 얼마나 개방되어 있나?> In 『일본과의 무역: 문이 더 넓어졌나?』


로버트 Z. 로런스는 "미국의 교역을 살펴보면, 일본과의 거래에서 유독 기업내 거래 비중이 높으며, 미국이 수출을 할 때(=일본이 수입을 할 때) 일본기업 내 거래가 더 많다"고 말합니다. 


이는 위의 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대유럽 수출(=유럽의 대미국 수입)에서 기업내 교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48%, 미국의 대유럽 수입(=유럽의 대미국 수출)은 42% 입니다. 그런데 미국의 대일본 수출(=일본의 대미국 수입)은 72%, 미국의 대일본 수입(=일본의 대미국 수출)은 75%에 달합니다.


또한, 미국이 일본으로부터 수입을 할 때 다르게 말해 일본이 미국으로 수출을 할 때, 일본 모회사가 미국에 위치한 자회사로 물건을 건네는 비중이 전체 기업내 교역 중 66.1%에 달합니다. 미국기업이 일본에 설립해놓은 자회사로부터 본국에 위치한 모회사로 물건을 건네받는 비중은 8.9%에 불과합니다. 이는 일본기업이 자국에서 상품을 생산한 뒤 미국에 위치한 자회사 판매망에 넘기는 downstream 형태임을 보여줍니다. 


문제는 미국이 일본으로 수출을 할 때에 있습니다. 반도체 · 전자 · 자동차 · 철강 등을 만드는 미국 제조업체가 일본으로 상품을 판매할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미국기업 내 거래가 많아야 합니다. 그런데 수치를 살펴보면, 미국기업 내 거래는 13.6%에 불과하고, 일본기업 내 거래가 58.4%에 달합니다


혹자는 "미국이 일본으로 수출을 한다는 건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수입을 해온다는 것이고, 일본 기업이 미국으로부터 원자재 등을 많이 수입해오기 때문에(=upstream) 일본 국적 기업의 거래가 많은 것 아니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로버트 Z. 로런스는 제조업 상품만을 놓고 봤을 때도 일본 기업내 거래가 많고 말합니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일본 특유의 유통시스템' 입니다.


일본의 수입 상당수는 종합상사회사(General Trading Company)가 수행합니다. 이들은 해외에서 원자재 뿐 아니라 다양한 제조업 상품을 구매한 뒤 일본에 위치한 모회사 혹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기업(long-term relationship)에게 넘깁니다. 그리고 단순한 중개회사 역할을 맡는 게 아니라 서비스 · 해외시장에 대한 정보 · 금융 · 유통 등 다양한 행위를 합니다.


게다가 일본 종합상사회사들은 일본 내 유통시스템에 깊숙히 들어가 있습니다. 이들은 일본내 유통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며 상품을 효율적으로 배분케 합니다. 또한, 동일한 집단에 속해있는 기업들 즉 케이레츠(Keiretsu)들과 밀접한 거래관계를 맺으면서 상품을 유통시킵니다.


이러한 종합상사 및 케이레츠들의 행동은 일본시장에서 시장지배력을 키웠습니다. 종합상사와 거래관계가 없거나 케이레츠에 끼어들지 못한 외국기업들은 일본에 물건을 판매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분명 일본은 관세를 점차 인하하여 눈에 보이는 무역장벽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들이 미국 기업의 일본시장 진출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미국의 대일본 수출에서 미국기업내 거래가 아닌 일본기업내 거래가 많다는 사실이 이를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 일본내 높은 수입 제조상품 가격


일본시장 폐쇄성은 '가격'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일본시장이 미국기업을 차별하지 않고 열려있다면, 일본 내 상품 가격과 미국 내 상품 가격은 거래비용을 제외하고는 대동소이 할겁니다. 반대로 일본시장이 닫혀있다면, 일본 기업들은 보호 속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릴겁니다.


로버트 Z. 로런스는 "일본 내 상품가격이 다른 국가보다 매우 높다는 상당한 근거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PPP를 이용한 상품가격 비교시, 일본의 소비재 · 생산재 가격은 미국보다 25% 유럽보다 42% 비싸다고 지적합니다. 


  • 일본과 다른 국가들의 제조업 이익률 및 자기자본이익률 비교 

  • 1991년 연구보고서 <일본은 얼마나 개방되어 있나?> In 『일본과의 무역: 문이 더 넓어졌나?』


    또한, 일본 제조업자들은 상당한 시장지배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의 이익률은 다른 국가와 비교했을 때 매우 높은 수준입니다. 더군다나 일본으로 수입된 상품에 대해서는 일본기업 상품보다 높은 가격이 책정되어 있습니다. 


    로런스는 "만약 일본 수입업자들이 시장지배력을 통해 초과이윤을 누리고 있다면, 일본의 유통시스템은 마치 '사적으로 설정된 관세'(privately administered set of tariff)처럼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라고 지적합니다.


    ▶ 관세 인하 요구로 일본시장을 개방할 수 없다


    이 시기 자유무역은 '관세장벽 철폐'(removing tariff barriers)를 의미했습니다. 당시 세계무역시스템 이었던 GATT는 말그대로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살펴본 일본의 무역장벽은 관세인하 요구로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공식적인 관세율은 매우 낮더라도, 일본 특유의 경제시스템이 사실상 수입상품 가격을 높이거나 아예 시장진입을 가로막았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하여, 단순히 "자유무역 규칙(rules)을 준수하라"는 식의 요구를 하기보다, 수입물량 · 무역수지 등 지표의 목표값을 정해놓고 이를 강제해야 한다(quantitative targets)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이른바, '규칙 보다는 결과'(Results rather than Rules) 입니다. 




    ※ 결과지향적 관리무역의 필요성


    • MIT 대학 경제학자 Rudiger Dornbusch (1942-2002)


    경제학자 루디 돈부쉬(Rudiger Dornbusch)는 수입물량 · 무역수지 등 지표의 목표값을 강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대표적인 인물 입니다. 그의 주장은 1990년 출판된 『미국의 무역 전략: 1990년대를 위한 옵션』(『An American Trade Strategy: Options for 1990s』) 중 한 챕터로 실렸습니다.


    돈부쉬는 "GATT 체제는 상당한 보호를 받고 있는 개발도상국의 문을 여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각주:5] 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리고 "GATT 체제의 대표적인 실패는 여전한 일본시장의 페쇄성이다"[각주:6]라고 말합니다. 앞서 소개한 로런스의 주장처럼, "(관세를 줄여나갔음에도) 일본은 서로 다른 종류의 여러막의 보호막이 감싸고 있는 양파와 같다"[각주:7]는 것이었죠.


    그렇다면 돈부쉬는 일본시장의 개방시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한다고 주장했을까요?


    돈부쉬는 미국정부가 일본을 향해 공세적인 요구를 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일본의 미국산 제조업 상품 수입 증가율을 타겟으로 맞춰야 한다"[각주:8]고 강하게 주장합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증가율 수치를 제시하는데, "일본의 미국산 제조업 상품 수입 증가율은 다음 10년간 연간 15%씩 증가해야 한다"[각주:9]고 말합니다. 이어서 그는 일본정부에게 이를 강제할 수단도 제시합니다. 만약 일본이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일본의 미국시장 접근을 제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돈부쉬의 주장은 '결과지향적 조치(results-oriented)를 추구하는 관리무역'(managed trade)'라고 칭할 수 있습니다. 관리무역이란 정부가 교역에 직·간접적으로 간섭하고 관리하는 무역체제를 의미하는데, 특히나 그의 주장은 단순한 규칙(rules) 준수를 일본에 요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확한 결과(results)를 내놓도록 압박해야 한다는 점에 특징이 있었습니다.




    ※ 일본에게 구체적인 결과를 강제하는 무역정책이 타당한가


    일본에게 구체적인 성과를 강제하자는 주장에 대해 경제학자들 간에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기본적인 자유무역 원리를 고수하는 학자들은 물론이고, 현재 일본과의 무역에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여러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습니다.


    ▶ 일본의 무역개방도를 '결과'로 판단하는 것은 일종의 수출보호주의 (export protectionism)


    • 국제무역이론의 대가, 자그디쉬 바그와티 (Jagdish Bhagwati)

    • 그는 상대방이 어떤 무역정책을 취하든 상관없이 자유무역 정책을 고수하는 '일방주의'를 주장했다


    국제무역이론의 대가 자그디쉬 바그와티(Jagdish Bhagwati)는 더글라스 어윈과 공저한 1987년 논문 <오늘날 미국 무역정책에 상호주의자들의 귀환>(<The Return of the Reciprocitarians U.S Trade Policy Today>)를 통해, "일본의 무역개방도를 '결과'로 판단하는 것은 일종의 수출보호주의(export protectionism)이다" 라고 비판합니다. 


    바그와티가 보기엔 돈부쉬의 요구는 일본에게 '자발적 수입팽창'(VIE, Voluntary Import Expansion)을 요구하는 꼴이었으며, 진정 일본의 무역체제를 자유화하기 위함이 아니라, '제3국을 배제시켜 미국의 수출을 촉진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근본적으로 바그와티는 '무역상대국이 장벽을 낮춰야만 우리도 자유무역을 하겠다는 상호주의적 발상(reciprocity)'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는 '상대방이 어떤 무역정책을 취하든 상관없이 자유무역을 실시하는 게 옳다는 일방주의(unilateralism)'를 믿었으며, 상호주의가 언제든지 보호무역으로 돌변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하지만 바그와티의 믿음과 바람과는 달리, 1980년대 미국 무역정책은 다른 형태의 일방주의로 나타났습니다. 바로, '제재 위협을 통해 상대방의 무역장벽을 일방적으로 낮추는 공격적 일방주의'(aggressive unilateralism) 이었고, 1988년 종합무역법 슈퍼301조가 이를 보여주었습니다.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시리즈 마지막 글을 통해, 일방주의 · 상호주의 · 공격적 일방주의를 살펴볼 기회가 있을 겁니다.


    ▶ 양자적 혹은 일방적 해결방식이 타당한가 → 다자주의 틀 안에서 해결해야


    로버트 Z. 로런스는 현재 GATT체제에 문제가 있으며, 일본시장이 닫혀있다는 문제인식은 돈부쉬와 공유하였으나, 구체적인 해결방법에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로런스는, 일본이 미국산 제조업 상품 수입증가율 20% 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통상산업성(MITI)과 같은 일본 관료체계가 일본기업들에게 미국산 제조업 상품 수입을 강제해야 하는데, 이것은 진정한 시장개방이 아니라 일본 관료가 이끄는 '일본 주식회사'(Japan, Inc)를 더 확대하는 꼴이 된다고 비판했습니다. 이 경우, 수입물량은 증가하겠지만, 일본경제의 폐쇄적인 시스템은 여전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는 미국이 일본에 강제하는 형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는 원치 않았습니다. 로런스는 GATT 체제가 문제점은 있으나, 미국-일본 쌍방 간이 아닌 다자주의 무역시스템(multilateral trade system) 틀 안에서 무역분쟁을 해결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GATT의 문제점을 인지하면서 여전히 다자주의 무역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여긴 사람들의 힘으로 GATT는 1995년 WTO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WTO는 GATT가 다루지 못한 비관세장벽 · 서비스부문 · 지적재산권 등도 포괄적으로 다루었고, 무역분쟁해결절차를 마련하여 공격적 일방주의가 발생하지 않게끔 주의를 했습니다. 


    이것 또한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시리즈 마지막 글을 통해 살펴볼 겁니다.


    ▶ 전반적인 제조업 상품을 타겟으로 삼는 게 타당한가 → 부문별 세심한 접근 필요


    • 1980년대, 전략적 무역 정책 실시를 강력하게 주장했던 로라 D. 타이슨 (Laura D. Tyson)


    로라 D. 타이슨(Laura D. Tyson)은 자유무역 체제의 한계를 강하게 비판하고 전략적 무역 정책의 필요성을 설파하면서, 1980년대 미국 내 무역논쟁의 한 축을 담당했던 인물입니다. 


    녀는 일본의 불공정한 무역관행(unfair trade practices)에 대해 적극적으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믿은 면에서 돈부쉬와 닮았으나, 전반적인 제조업 상품을 타겟으로 삼는 해결책에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타이슨은 최첨단산업(High-Tech) 내 일본의 무역행태를 문제 삼았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도체 · 전자 · 의약품 등을 대상으로 한 구체적인 산업별 접근(sectoral approach)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그녀는 현재 전세계적으로 정부에 의한 개입이 만연해 있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규칙(rules)을 수립하는 게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돈부쉬가 요구한 수량적 타겟은 지양해야 하며, 필요하더라도 후순위로 밀려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 단순한 '자유무역 vs 보호무역' 논쟁이 아니다


    이처럼 1980년대 미국 무역정책 방향을 둘러싼 논쟁은 단순히 '자유무역 vs 보호무역' 으로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순수한 자유무역 원리를 고수했던 학자들이 없던 건 아니지만, 이들은 100% 자유무역을 믿은 게 아니라 자칫 시대 분위기에 휩쓸려 미국이 보호주의 무역정책을 채택할 것을 염려한 노파심이 더 컸습니다.


    또한, 당시 미국이 처한 무역환경에 대해 문제로 인식하는 정도도 학자들마다 달랐으며, 동일한 문제인식을 공유했더라도 해결방법에 있어서는 또 서로 다른 의견을 보였습니다. 이번글에 나온 로런스와 돈부쉬가 이를 보여주며, 또 돈부쉬와 타이슨 간 서로 다른 해결책도 이를 보여줍니다. 


    1980년대 국제무역논쟁의 복잡성을 드러내는 또 다른 사례는, 로라 D. 타이슨의 전략적 무역 정책 실시 주장에 대하여 전략적 무역 정책(Strategic Trade Policy)[각주:10]을 이론으로 창안해 낸 경제학자들이 극렬하게 반대했다는 점입니다.


    이제 다음글을 통해, '전략적 무역 정책 실시'를 둘러싼 논쟁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1.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①]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다 (New Protectionism) http://joohyeon.com/273 [본문으로]
    2.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②] 마틴 펠드스타인,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은 국가경쟁력 상실이 아니라 재정적자 증가이다" http://joohyeon.com/274 [본문으로]
    3.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③]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을 수 없다 - 생산의 학습효과가 작동하는 동태적 비교우위 http://joohyeon.com/275 [본문으로]
    4.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④] 전략적 무역정책 - 관세와 보조금으로 자국 및 외국 기업의 선택을 변경시켜, 자국기업의 초과이윤을 증가시킬 수 있다 http://joohyeon.com/276 [본문으로]
    5. The GATT also does little to open up heavily protected developing countries. ... The liberal system has not only failed to check marginal protectionismand to open up LDCs, it has also failed in one of its chief assignments: avoidance of discrimination in international trade [본문으로]
    6. Perhaps the most striking failure of the GATT system is the continuing closedness of the Japanese market [본문으로]
    7. Japan seems to be somewhat of an onion with multiple layers of protection of one kind or another. [본문으로]
    8. A target should be set for growth rates of Japanese imports of U.S. manufactures [본문으로]
    9. Japanese manufactures imports from the United States should grow at an average (inflation-adjusted) rate of 15 percent a year during the next decade. [본문으로]
    10.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④] 전략적 무역정책 - 관세와 보조금으로 자국 및 외국 기업의 선택을 변경시켜, 자국기업의 초과이윤을 증가시킬 수 있다 http://joohyeon.com/276 [본문으로]
    //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④] 전략적 무역정책 - 관세와 보조금으로 자국 및 외국 기업의 선택을 변경시켜, 자국기업의 초과이윤을 증가시킬 수 있다[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④] 전략적 무역정책 - 관세와 보조금으로 자국 및 외국 기업의 선택을 변경시켜, 자국기업의 초과이윤을 증가시킬 수 있다

    Posted at 2019. 1. 6. 23:17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달라진 시장구조에서 비교우위론에 입각한 자유무역 정책은 타당한가


    1980년대 초중반, 미국 무역정책 방향을 둘러싸고 논쟁은 "오늘날 시장구조에서 자유무역이 최선의 정책일까?"에 대한 물음과 답변의 연속입니다. 


    당시 미국이 직면했던 거시경제 환경[각주:1], 세계 GDP 중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 감소 · 생산성 둔화 · 무역적자 심화 그리고 일본의 부상은 보호주의 압력을 키웠습니다. 


    이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반응은 전통 경제학의 설명을 따랐습니다.[각주:2] 재정적자로 인한 총저축 감소가 실질 금리를 인상시켜 자본유입 · 강달러 · 무역적자를 차례로 초래했다는 논리 입니다. 그리고 무역적자를 국가경쟁력 상실의 징표로 해석해서는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무역수지는 총저축과 총투자가 결정하는 기초적인 회계등식의 결과물일 뿐인데다가, 통화가치 및 임금 하락을 통해 본래의 비교우위를 찾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미국 기업 경영자들이 보기엔 경제학자들의 설명은 현실을 모르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각주:3]에 불과했습니다.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뺏기면 다시 되찾기 힘든데, 본래의 비교우위를 회복할 수 있다는 설명은 책에서만 타당합니다. 경영자가 직면한 국제무역 환경은 비교우위가 아닌 경쟁력(competitiveness)이 지배하는 곳 입니다.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경영가의 관점을 수용[각주:4]하여 '한번 획득한 비교우위가 자체 강화되는 모형'을 제시하였습니다. 생산의 학습효과(learning by doing)가 존재할 경우, 과거부터 누적된 생산량 즉 생산을 통해 축적해온 경험과 지식이 현재의 생산성을 결정합니다. 따라서 한번 시장을 내준다면 차이는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 독점 및 과점의 불완전경쟁 시장(imperfect competitive market)

    ▶ 동일한상품이 서로 교환되는 산업내무역(intra-industry trade or two-way trade)


    그럼에도 여전히 기존 국제무역이론은 변화한 시장구조와 무역패턴를 완전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리카도[각주:5] 및 헥셔-올린[각주:6]의 비교우위론은 무수히 많은 생산자가 존재하는 완전경쟁시장(perfect competitive market)을 기반으로, 개별 국가들이 서로 다른 산업에 특화한 후 상품을 교환하는 산업간무역(inter-industry trade)을 설명하는 이론입니다. 


    1970-80년대 시장구조와 무역패턴은 전통적인 국제무역이론이 만들어진 시기의 것과는 달랐습니다.


    규모의 경제와 외부성이 초래한 불완전 경쟁시장 ,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국제시장에 소수의 기업만 존재하는 독점 혹은 과점 (monopoly or oligopoly) 형태를 띄는 산업이 증가했습니다. 그리고 개별 국가들이 동일한 상품을 서로 교환하는 산업내무역이 활발해 졌습니다.


    미국과 일본 간 무역분쟁을 낳은 산업은 반도체 · 전자 · 자동차 · 철강 등이었습니다. 이들 산업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고정투자가 필요하며, 생산량이 많은 기업만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여 이익을 거둘 수 있습니다. 결국 개별 국가 내에서 독점 혹은 과점 형태로 기업이 자리잡고 있으며, 전세계적으로도 소수의 기업만이 존재합니다.


    과거에는 '선진국은 제조업 · 개발도상국은 1차 산업'에 각각 특화하여 산업간무역 패턴을 보였던 것과 달리, 1970-80년대에는 개별 국가들이 동일한 제조업에 특화한 후 서로의 상품을 교환하는 산업내무역 패턴이 일반화 되었습니다. 미국은 반도체를 일본에 수출하는 동시에 일본도 미국에 반도체를 수출합니다.


    이때 독과점 시장구조와 산업내무역 증대는 서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시장개방 이전 기업들은 자국 내에서 독점 혹은 과점의 지위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제 시장이 개방되자 기업들은 생각합니다. "외국에도 물건을 팔면 이익이 늘어나지 않을까?". 외국 수출을 통한 시장확대는 생산량 증가를 통해 규모의 이익을 키웁니다. 그리고 이미 포화상태인 자국을 벗어나 외국에 상품을 파는 건 한계수입이 더 큽니다. 


    따라서, 개별 국가 내의 독과점 기업들은 이윤 증대를 위해 외국 시장으로 침투하고(business stealing), 그 결과 국적이 다른 기업이 만든 동일한 상품이 국경을 넘어 교환되는 산업내무역 패턴이 형성되게 됩니다. 


    (사족 : 산업내무역 발생 이유로 상품다양성 이익를 꼽는 폴 크루그먼의 설명[각주:7]과는 다른 원인)


    ▶ 자국기업과 외국기업의 전략적 선택을 변경시키는 '전략적 무역 정책'(Strategic Trade Policy)


    이렇게 달라진 시장구조와 무역패턴은 '정부가 개입하여 자국기업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적극적 무역정책'의 정당성을 키웠습니다. 


    특히 세계시장에 소수의 기업만 존재하는 과점경쟁 구도(oligopoly)에서 '무역정책으로 자국·외국 기업의 전략적 선택을 변경시킴으로써(alter a strategic choice), 자국기업의 초과이윤(rent)을 높일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었습니다.

    (주 : 여기서 전략이란 '상호의존성에 기반을 둔 선택'을 의미합니다. 생산자가 이윤극대화를 위한 결정을 할 때, 다른 생산자의 결정도 고려한다는 의미 입니다.)


    이른바 '전략적 무역 정책'(strategic trade policy) 입니다. 


    • 첫번째, 두번째 : 제임스 브랜더 (James A. Brander), 바바라 스펜서 (Barbara Spencer)

    • 세번째, 네번째 : 폴 크루그먼 (Paul Krugman), 엘하난 헬프만 (Elhanan Helpman)

    • 아래 왼쪽 : 크루그먼이 편집한 1986년 단행본 <전략적 무역정책과 신국제경제학>

    • 아래 오른쪽 : 헬프만과 크루그먼이 편집한 1989년 단행본 <무역정책과 시장구조>


    1980년대 초중반, 전략적 무역 정책 발전을 이끈 주요 경제학자는 제임스 브랜더 · 바바라 스펜서 · 폴 크루그먼 · 엘하난 헬프만 등이었습니다. 


    특히 제임스 브랜더와 바바라 스펜서는 1981년 논문 <잠재적 진입 하에서 관세를 통한 외국 독점이윤 탈취>(<Tariffs and the Extraction of Foreign Monopoly Rents under Potential Entry>), 1983년 논문 <국제적 R&D 경쟁과 산업전략>(<International R&D Rivalry and Industrial Strategy>), 1985년 논문 <수출 보조금과 국제시장 점유율 경쟁>(<Export Subsidies and International Market Share Rivalry>) 등을 통해 전략적 무역 정책을 만들어 냈습니다.


    과점시장 속 전략적 무역정책은 자국 및 외국 기업의 행위를 변경시켜 이로운 결과를 불러옵니다. 그 경로는 크게 두 가지 입니다.


    첫째, 보호와 자국시장 효과(Protection and Home Market Effects) 입니다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독과점 수확체증 산업(increasing return)이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많은 생산량이 필수적 입니다. 자국 정부의 보호 아래 국내시장에서 생산량을 증가시키면, 이를 발판으로 세계시장에 진출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무역정책 성공의 관건은 '자국기업이 국내시장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게끔, 외국기업의 행위를 변경시킬 수 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전략적 무역 정책을 구사하면 동종산업 외국기업의 전략을 변경시킬 수 있고, 그 결과 수입보호는 수출진흥의 효과를 불러오게 됩니다.


    이러한 효과를 알고, 과거 일본과 같은 개발도상국은 반도체 · 전자 · 자동차 · 철강 등 규모의 경제를 가지는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전략적 무역 정책을 구사했습니다. 


    둘째, 이윤을 자국기업으로 이동시키는 보조금(Profit-Shifting Subsidies) 입니다. 


    장기적으로 이윤이 0이 되는 완전경쟁시장과는 달리 완전경쟁인 독과점 시장에서는 초과이윤(rent)이 생깁니다. 이때 보조금을 통해 자국기업을 지원하면 외국기업의 초과이윤을 자국기업에게 이동시키고 세계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여기서도 무역정책 성공은 간건은 '자국기업의 변경된 행위가 외국기업에게 신빙성 있는 위협이 되느냐'(credible threat)에 달려있습니다. 앞서와 마찬가지로, 전략적 무역 정책을 구사하면 자국기업의 변경된 전략이 외국기업에게 신빙성 있게 인식하게끔 만들 수 있습니다.


    1980년대 미국 등 선진국은 자국기업의 R&D 투자를 정부가 보조함으로써 신빙성 있는 위협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러한 두 가지 논리는 자국기업을 단순히 보호 · 지원하는 전통적인 무역정책의 틀을 벗어나자국 기업과 외국 기업의 전략적 행동을 변경함으로써, 외국기업의 생산량과 초과이윤을 희생시켜 자국기업의 생산량과 초과이윤을 늘리는 특징(increase a country's share of rent in a way that raises national income at other countries' expense)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제 이번글을 통해, 독점 및 과점 등 불완전경쟁 시장 하에서의 전략적 무역정책이 어떻게 외국기업의 행위를 변경시켜 자국기업을 돕는지 알아보도록 합시다.




    ※ (이론) 완전경쟁 시장과 불완전경쟁 시장은 어떻게 다른가?


    전략적 무역 정책이 어떤 효과를 내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독과점 시장구조에 관한 기본적인 경제학이론이 배경지식으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본격적인 내용 파악에 앞서 이론 학습을 먼저 합시다. 첨부한 수식이 이해가 어려우신 분들은 글만 읽어 내려가시면 됩니다 !!!


    ▶ 초과이윤을 획득할 수 있는 불완전경쟁 시장 (excess return / rent)


    완전경쟁(perfect competitive)이란 다수의 생산자가 시장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며, 진입과 퇴출이 자유로운 상태를 말합니다. 반면, 독점 · 과점 등 불완전경쟁(imperfect competitive)은 시장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소수의 생산자만 존재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완전경쟁 시장과 불완전경쟁 시장에서 주목해야 하는 차이는 '초과이윤이 존재하느냐(excess return)' 입니다[각주:8]. 완전경쟁 시장 속 생산자는 장기적으로 0의 이윤을 가지는 반면, 독과점 생산자는 양(+)의 이윤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가 발생하는 원인은 '생산자들의 진입과 퇴출이 자유롭냐 아니냐'에 있습니다. 


    완전경쟁 시장은 생산자들의 진입 · 퇴출이 자유롭습니다.


    현재 주어진 시장 가격이 장기 평균한계비용보다 높다면(P>LMC), 양(+)의 이윤을 기대하는 생산자들이 신규 진입하게 되고, 이로 인해 늘어난 생산량이 다시 가격을 하락시켜 장기적으로 0의 이윤(P=LMC)이 됩니다. 반대로 현재 주어진 시장 가격이 장기 평균한계비용보다 낮다면(P<LMC), 음(-)의 이윤을 기록하고 있는 생산자들이 차례대로 퇴출되고, 이로 인해 줄어든 생산량이 다시 가격을 상승시켜 장기적으로 0의 이윤(P=LMC)이 됩니다.


    즉, 자유로운 시장 진입과 퇴출의 과정을 통해, 완전경쟁시장의 장기균형은 0의 이윤이 됩니다.


    반면, 불완전경쟁 시장에서는 생산자들의 진입 · 퇴출, 정확히 말하면 진입이 자유롭지 않습니다


    대규모 고정비용 · 네트워크 효과와 같은 외부성 등으로 인해 아무나 진입하지 못합니다. 만약 진입을 한다고 해도 일정 수준의 생산량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음(-)의 이윤을 기록하기 때문에 곧바로 퇴출됩니다. 결국 이미 자리를 잡은 한 개 혹은 소수의 기업만이 시장에 존재하여 양(+)의 이윤을 누리게 됩니다.


    즉, 자유로운 진입이 불가능한 독점 · 과점 시장에서 기존 생산자들은 초과이윤(excess return) 다르게 말해 지대(rent)를 누립니다.


    ▶ 전략적 행위가 필요한 과점시장 (strategic behavior under oligopoly)


    이때 시장에 한 개의 기업만 존재하는 독점과 두 개 이상 소수의 기업만 있는 과점은 또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바로, '전략적 행위의 필요성' 입니다.


    독점 생산자는 말그대로 시장 안에 오직 자신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다른 생산자를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자신의 이윤극대화를 위한 독점가격과 생산량을 결정하면 됩니다. 


    이와 달리, 과점 생산자는 '다른 생산자의 선택을 고려하여 결정'을 내리는 전략적 행위(strategic behavior)가 필요합니다. 


    왜 그래야만 하냐면, 상대방의 선택을 고려치 않고 결정을 하면 이윤극대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과점 시장에서 시장 전체 총생산량 증가는 가격 하락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상대의 생산량을 고려하지 않고 독점 생산자처럼 자신의 생산량을 결정하면, 상품의 시장가격이 크게 하락하여 이윤이 극대화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소수 생산자 간에 상호 의존성이 존재하는 과점시장에서는 서로의 행동을 고려하는 전략적 선택이 필수 사항입니다.


    ▶ 두 생산자가 산출량을 동시에 결정하는 꾸르노 경쟁 모형 (cournot competition)


    과점시장 속 두 생산자는 전략적 고려를 통해 자신의 최적 생산량을 동시에 결정(simultaneous) 합니다. 동시결정은 '상대방의 선택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의 결정을 해야함'을 의미합니다.


    두 생산자가 동시에 산출량을 결정하는 과점 모형, 이른바 꾸르노 경쟁(Cournot Competiton)에서 생산량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이해하려면 말보다는 수식을 통한 설명이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이를 살펴봅시다.


    • 두 생산자가 산출량을 동시에 결정하는 꾸르노 경쟁 모형 (cournot competition)


    두 생산자의 목적은 이윤극대화 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두 생산자가 선택한 산출량의 합(q1+q2)이 시장 전체 산출량(Q)이 되고 시장 가격(P)을 결정합니다. 즉, 시장가격은 시장 전체 산출량에 관한 함수 P(Q)=P(q1+q2) 입니다. 이로 인해, 각 생산자들은 자신 이외에 다른 생산자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도 고려하여야 합니다. 


    따라서, 각 생산자의 산출량 결정은 다른 생산자의 산출량에 영향을 받는데, 임의의 상대방 산출량에 대하여 나에게 이윤극대화를 안겨다주는 산출량을 최적대응함수(Best Response Function)라 하며 'BR(상대방 산출량)'로 표기합니다. 상대방이 선택할 정확한 산출량은 알 수 없기 때문에, 말그대로 상대방 산출량 어떤 값에 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나의 산출량을 전략으로 고려하는 겁니다.


    생산자 1의 최적대응은 BR1(q2) 이며 생산자 2의 산출량 q2에 따라 달라지는데, 변수 q2는 음(-)의 계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생산자 2의 산출량이 증가할 때 생산자 1의 최적대응은 본인의 산출량을 줄이는 것임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생산자 2의 최적대응은 BR2(q1)이며, 마찬가지로 생산자 1의 산출량이 증가하면 생산자 2의 산출량은 감소해야 합니다.


    이렇게 상대방 산출량이 늘어날 때 자신의 산출량이 감소해야 하는 관계를 '전략적 대체관계'(Strategic Substitute)라고 합니다. 이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정된 시장 안에서 두 생산자가 점유율을 나눠야 하니까 나타나는 당연한 현상입니다.


    • 두 생산자의 최적대응함수가 교차하는 점이 각각의 이윤극대화 생산량 이다


    각 생산자들은 상대방이 자신을 의식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본인 또한 상대방의 선택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결과적으로, 각 생산자는 서로의 최적대응을 염두에 둔 이윤극대화 산출량을 결정하게 되는데, 그 값은 두 생산자의 최적대응함수를 연립방정식으로 푼 해이며 최적대응 그래프의 교점 입니다.


    생산자 1과 2의 이윤극대화 산출량은 각각 q1* q2* 로 표기합니다. 


    q1*는 본인의 한계비용 c1과는 음(-)의 관계이며 상대의 한계비용 c2와는 양(+)의 관계 입니다. q2* 또한 본인의 한계비용 c2와는 음(-)의 관계이며 상대의 한계비용 c1과는 양(+)의 관계 입니다.


    다르게 말해, q1*는 생산자 1의 한계비용 c1이 감소하면 늘어나는 반면, 생산자 2의 c2가 감소하면 줄어듭니다. q2*는 생산자 2의 한계비용 c2가 감소하면 늘어나고, 생산자 1의 한계비용 c1이 감소하면 줄어듭니다. 


    쉽게 풀어 말하면, 자국기업의 생산성 향상(=자신의 한계비용 감소)은 외국기업의 산출량을 줄이면서 자국기업의 산출량을 증가시킵니다. 반대로 외국기업의 생산성 향상(=자신의 한계비용 감소)은 자국기업의 산출량을 위축시키면서 외국기업의 산출량을 늘립니다.


    이는 꾸르노 과점 모형에서 생산자 1 · 2가 전략적 대체 관계에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결론 입니다. 


    • 생산자 1의 생산성이 향상되어 한계비용(c1)이 감소하면, 생산자 1은 더 많은 양을 생산하지만 생산자 2는 더 적은 양을 생산


    위의 그래프는 생산자 1의 생산성이 개선되어 한계비용 크기가 c1'로 줄어들었을 때 나타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생산자 1의 새로운 이윤극대화 산출량 q1*는 이전보다 증가하였고, 생산자 2의 새로운 이윤극대화 산출량 q2*는 이전보다 감소했습니다. 


    이렇게 꾸르노 경쟁모형은 과점 시장에서 더 많은 이윤을 획득하는 법을 알려줍니다. 자국기업이 외국기업보다 생산량을 많이 가져가기 위해서는 생산성 향상을 통한 한계비용 감소가 필요니다. 


    따라서, 정부의 지원 아래 생산성을 향상시켜 한계비용을 감소시키면, 외국기업의 몫을 빼앗아 자국기업의 이윤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함의로 이어집니다. 


    ▶ 자국기업이 먼저 생산량을 결정하는 스타겔버그 경쟁 모형 

    (stackelberg competiton)


    자국기업의 최적 생산량을 더 많이 가져가는 또 다른 방법은 '선도자'(leader)가 되어 외국기업 보다 먼저 생산량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꾸르노 모형은 두 생산자가 '상대방이 나의 영향을 받아 이런 선택을 할 것이다'라는 걸 인지하면서동시에(simultaneous)에 산출량을 결정했습니다. 반면, 스타겔버그 모형은 선도자(leader)와 추종자(follower)가 구분되고, 선도자가 먼저 산출량을 결정하는 순차적 형태(sequence)를 띄고 있습니다.


    그럼 꾸르노 모형과 스타겔버그 모형은 어떤점 때문에 서로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일까요? 바로 '정보'의 차이 입니다.


    꾸르노 모형에서 생산자들은 상대방의 산출량을 정확히 알지 못한채 자신의 최적대응을 세웠으나, 스타겔버그 모형에서 선도자는 '추종자가 선택한 산출량을 확실히 알고'있으며, '추종자가 선택할 산출량은 선도자의 전략에 의존'합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수식을 통해 명료하게 알아봅시다.


    • 선도자 생산자 1이 먼저 생산량을 결정하는 스타겔버그 경쟁 모형


    추종자인 생산2는 생산자 1이 어떤 결정을 할지 알지 못하며, 생산자 1이 선택할 임의의 산출량에 대한 최적대응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생산자 2의 최적대응함수 BR2(q1)은 이전의 꾸르노 모형과 동일합니다.


    반면, 선도자인 생산자 1은 자신이 먼저 임의의 생산량 q1을 선택하면, 생산자 2가 최적대응함수 BR2(q1)에 따라 행동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생산자 1의 손바닥 위에 생산자 2가 있는 꼴입니다. 그리하여 생산자 1이 고려하는 생산자 2의 산출량은 단순히 q2가 아닌 BR2(q1)으로 구체화 됩니다. 위의 선도자 생산자 1의 이윤함수에서 임의의 q2 대신 BR2(q1)이 들어간 이유입니다.


    그 결과, 선도자 생산자 1은 추종자 생산자 2의 산출량과 이윤을 낮추면서 자신의 산출량과 이윤은 높이는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스타겔버그 모형 결과는 꾸르노 모형의 결과와 비교하면 더 명확히 파악됩니다. 추종자 생산자 2의 이윤극대화 산출량은 감소하였고 이윤 또한 줄었습니다. 반면 선도자 생산자 1의 산출량은 증가하였고 이윤 또한 늘어났습니다.


    그렇다면 정부가 자국기업을 선도자(leader)가 되게끔 지원하거나 정부 자체가 선도자(first player)로 행위한다면, 외국기업의 생산량과 이윤을 희생시킴과 동시에 자국기업의 생산량과 이윤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함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를 실행시킬 수 있는지는 이번글을 계속 읽어나가면 알 수 있습니다.


    ▶ 최적대응함수에 따라 선택한다는 보장이 있나? - 맹약의 개념(commitment) 


    여기까지 읽어오신 분들은 "생산자들이 최적대응함수에 따라 선택한다는 보장이 있나?" 라는 물음을 던지실 수도 있습니다. 생산자 1이나 2의 최종 이윤극대화 산출량은 두 최적대응함수를 연립방정식의 해로 풀어낸 결과물인데, 생산자들이 최적대응함수를 벗어나는 결정을 한다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적대응함수는 말그대로 이윤극대화를 위한 최적대응(Best Response)을 나타내고 있으며, 생산자가 이에 어긋나는 결정을 하는 것은 비합리적인 선택입니다. 


    또한 상대방이 나에게 이로운 결정을 하지 않으면, 나는 비합리적인 선택으로 대응할거라는 협박은 '신빙성 없는 협박'(non-credible threat) 입니다. 합리적인 생산자라면 언제나 최적대응함수에 따라 선택을 할 것이 확실하며, 이는 '맹약'(commitment)이 작동한다고 보면 됩니다.


    기본적인 이론을 습득하였으니, 이제 다음 파트를 통해 본격적으로 전략적 무역 정책의 논리와 효과를 알아보도록 합시다.




    ※ 보호와 자국시장 효과 (Protection and Home Market Effect)


    우리는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시리즈를 통해 유치산업보호론([각주:9] · [각주:10])의 논리를 알아본 바 있습니다. 개발도상국이 수입보호정책을 선택한 전통적인 논리는 '이미 앞서있는 선진국 기업과의 치열한 경쟁을 일시적으로 피하자' 입니다.


    전략적 무역정책은 '신유치산업보호론'으로 불리우며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때 보호효과가 나타나는 경로는 조금 다릅니다. 단순히 자국기업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자국과 외국기업의 행위를 변경시켰기 때문입니다.


    이번 파트에서는 자국시장 보호를 통해 과점시장 속 자국 · 외국 기업의 전략적 행위를 변경시켜 자국기업을 돕는 경우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① 보호관세를 통해 외국기업의 초과이윤 탈취하고 자국기업 진입을 유도


    • 브랜더 & 스펜서, 1981, <잠재적 진입 하에서 관세를 통한 외국 독점이윤 탈취>


    기존 무역이론은 보호관세가 항상 긍정적인 결과물을 가져오는 건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관세부과는 교역조건을 개선시키지만, 시장을 왜곡시켜 후생이 감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임스 브랜더와 바바라 스펜서는  1981년 논문 <잠재적 진입 하에서 관세를 통한 외국 독점이윤 탈취>(<Tariffs and the Extraction of Foreign Monopoly Rents under Potential Entry>)를 통해, "보호관세를 통해 외국기업의 독점이윤을 탈취하고 자국기업 진입을 유도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른바 '관세를 통한 독점이윤 탈취'(the argument for using a tariff to extract rent) 이며,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국내 생산자가 잠재적으로 진입할 가능성'(potential entry) 입니다. 


    그 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개발도상국 내에는 아직 경쟁력 있는 자국기업이 없기 때문에 외국기업 수입상품이 국내시장을 장악하여 독점이윤을 누리고 있습니다. 개발도상국 정부 입장에서는 속 터지는 일입니다. 이렇다할 자국기업이 없다는 점도 속 터지고, 외국기업이 초과이윤(rent)을 가져가는 것도 울분 터지게 만듭니다. 


    이런 꼴을 보고 있는 개발도상국 정부로서는 '불완전경쟁이 만들어 낸 초과이윤을 관세를 통해 뺏어가고픈 유인'(under imperfect competition a country has an incentive to extract rent from foreign exporters by using tariffs)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다고 수입상품에 관세를 부과하자니, 수입양이 줄어들고 가격이 올라 소비자후생이 악화될 경우가 우려스럽습니다. 관세는 생산비용 증가를 유발하기 때문에, 독점 생산자는 생산량 감축을 통해 더 높은 상품가격을 설정하는 식으 맞대응 합니다. 정부는 세금을 통해 수입을 증가시키지만 소비자후생은 악화됩니다.


    이때, '자국 생산자가 잠재적으로 시장에 진입할 가능성'은 불완전경쟁 하에서 관세정책 사용을 쉽게 만들어 줍니다(potential entry has an implications for tariff policy in the presence of imperfect competition).


    자국기업은 국내시장에 진입하면 시장구조는 독점에서 과점으로 변합니다. 이때 자국기업은 추종자이기 때문에, 선도자인 외국기업이 결정해놓은 생산량을 고려하여서 자신의 생산량을 결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 외국 생산자는 자국 생산자의 시장진입을 억제하는 생산량(limit output)을 설정해놓은 상황입니다.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불완전경쟁 시장에서는 생존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생산량이 필요한데, 자국기업이 최소한의 생산량을 결정할 수 없게끔, 선도자인 외국이 선제적으로 대응해버린 겁니다. [선도자의 이익]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상황이 관세정책을 자국에게 이롭게 만들어 줍니다.  외국기업은 차라리 개발도상국 정부에 세금을 납부하는 편이 자국기업이 새로 시장에 진입하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정부가 관세를 부과하더라도, 자국기업의 잠재적 진입을 막아야하는 외국기업으로서는 생산량을 감축할 수 없기 때문에, 소비자후생 저하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관세정책은 부작용 없이 외국기업의 독점이윤을 그대로 뺏어올 수 있습니다.


    관세율이 계속해서 높아지고 어느 순간이 되면, 외국기업이 독점일 때 얻고 있는 이윤이 자국기업이 진입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과점 이윤보다 적어지게 됩니다. 외국 기업은 진입억제 전략을 포기하고 맙니다. 즉, 관세정책은 자국기업이 시장에 진입하게끔 유도하는 것까지 성공합니다(entry-inducing tariff). 이제 시장에 진입한 자국기업은 과점 이윤을 외국기업과 나누어 가지게 됩니다.


    그 결과, 외국기업만이 누리던 독점이윤을 ① 정부의 세금부과로 탈취 했으며 ② 자국기업의 국내시장 진입을 유도하여 뺏어오게 되었습니다. (Protective tariffs insure that domestic firms can enter and survive, and these firms earn rent from foreign operations.)


    ② 수출진흥을 만들어내는 수입보호 정책


    개발도상국 정부는 수입보호 정책을 통해 자국기업의 시장진입 유도를 넘어서서 이미 진입해있는 자국기업의 수출을 촉진할 수도 있습니다.


    폴 크루그먼은 1987년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수출진흥으로서 수입보호 : 과점과 규모의 경제 하에서 국제적 경쟁>(<Import Protection As Export Promotion: International Competition in the Presence of Oligopoly and Economics of Scale>)을 통해, 수입보호 정책이 수출진흥 정책의 역할을 함을 보여줍니다.


    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자국기업과 외국기업, 총 2개의 기업만이 존재하는 과점 상황이며 이들은 양국에서 모두 상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이들 기업이 속해있는 산업은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기 때문에, 생산량이 많은 기업일수록 소요되는 한계비용이 적습니다. 그렇다고해서 무작정 생산량을 증가시킬 수는 없고, 상대방의 생산량에 따라 자신의 생산량을 결정하는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합니다. [꾸르노 경쟁 모형]


    • 생산자 1의 생산성이 향상되어 한계비용(c1)이 감소하면, 생산자 1은 더 많은 양을 생산하지만 생산자 2는 더 적은 양을 생산


    이때 자국정부가 외국으로부터 수입을 막는 보호무역 정책을 채택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게 될까요?


    보호 속에서 자국기업은 국내에서 생산량을 늘리게 되고, 이에 따라 한계비용도 감소합니다. 앞서 꾸르노경쟁 모형 설명에서 배웠듯이, 줄어든 한계비용은 자국기업의 최적대응곡선을 바깥쪽으로 이동시키고, 이윤극대화 산출량은 이전에 비해 증가합니다. 반면, 외국기업의 산출량은 감소합니다. 


    이렇게 늘어난 산출량은 다시 한계비용을 감소시키고, 한계비용 감소는 다시 산출량을 늘립니다. 보호무역 정책이 자국기업의 생산량 증가 → 한계비용 감소 → 생산량 증가가 이어지는 선순환 인과관계를 만들어 낸겁니다(circular causation from output to marginal cost to output). 반대로 외국기업의 경우 악순환에 빠지고 맙니다.


    이때 주목해야 하는 사실은 수입보호 정책 덕분에 자국기업의 생산량이 국내시장 뿐 아니라 외국시장에서도 증가한다는 점입니다. 논문 제목처럼 수출진흥의 역할을 하고 있는 수입보호 (import protection as export promotion) 입니다.


    전통적인 국제무역이론이 보기엔 "국내시장 보호가 자국기업에게 성공적 수출을 위한 기반을 제공해준다"는 논리는 이단적 입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완전경쟁모형과 규모보수불변의 가정에서 벗어난 과점경쟁모형과 규모의 경제 작동 이라는 가정이 필요합니다. 폴 크루그먼의 연구는 이를 잘 수행하였습니다.




    ※ 이윤을 자국기업으로 이동시키는 보조금(Profit-Shifting Subsidies)


    이번 파트에서 소개할 전략적 무역 정책은 1980년대 미국을 휩쓸었던(?) 논리 입니다. 


    일본이 보호체제에 힘입어 반도체 · 전자 · 자동차 · 철강 등의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산업에 진입하는데 성공하고 수출을 증진시키자, 미국정부가 대응을 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특히 R&D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경제학연구[각주:11]가 많아지면서, R&D 투자비중이 높은 최첨단산업(high-tech)을 지원 · 육성하라는 주장이 힘을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미국행정부가 어떻게 자국기업을 도울 수 있을까요?


    • 제임스 브랜더 & 바바라 스펜서의 1983년 논문 <국제적 R&D 경쟁과 산업전략>

    • 제임스 브랜더 & 바바라 스펜서의 1985년 논문 <수출 보조금과 국제시장 점유율 경쟁>


    제임스 브랜더와 바바라 스펜서는 1983년 논문 <국제적 R&D 경쟁과 산업전략>(<International R&D Rivalry and Industrial Strategy>), 1985년 논문 <수출 보조금과 국제시장 점유율 경쟁>(<Export Subsidies and International Market Share Rivalry>)를 통해, 부의 R&D 보조금 지원으로 자국기업 R&D 투자수준이 증가하여 더 많은 이윤을 획득하는 논리를 제시했습니다.


    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정부의 R&D 보조금 지원으로 자국기업의 R&D 투자가 증가하여 더 많은 이윤 획득


    • 자국기업과 외국기업이 산출량을 동시에 결정하는 꾸르노 경쟁 모형

    • 주어진 R&D 투자 수준이 높은 기업일수록 한계비용이 낮아져, 상대기업에 비해 더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다


    세계시장은 자국기업과 외국기업 2개만 존재하는 과점 상황이며, 이들은 주어진 R&D 수준에서 산출량을 동시에 결정하는 꾸르노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R&D 투자는 기업의 한계비용을 낮추는 데 도움을 줍니다. 즉, R&D는 비용절감 혁신(cost-reducing)의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R&D 투자 수준이 높은 기업일수록 다른 기업보다 더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이 모습은 위의 그래프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R&D 투자 수준이 높아진 기업은 생산량 결정 단계에서 최적대응함수가 오른쪽으로 이동하고 그 결과 더 많은 양을 생산하게 됩니다. 상대방 기업의 생산량은 위축됩니다.


    결국 문제는 각 기업의 R&D 투자수준이 어떤 크기로 결정되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각 기업은 제품 생산에 앞서 R&D 투자수준을 동시에 결정합니다. 이때 기업들은 여기서 결정되는 R&D 투자수준이 추후 산출량을 결정함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기업들은 산출량 결정 단계에서 나타나게 될 결과를 염두에 두고, 이윤을 극대화 시켜줄 R&D 투자수준을 동시에 선택합니다. 


    그렇다면 자국기업과 외국기업은 서로 R&D 부문에 많은 투자를 하려고 하지 않을까요? 실제로 이들 기업은 비용 극소화를 위해 필요한 R&D 수준 보다는 조금 더 많은 양을 투자하게 됩니다. 


    하지만 기업이 R&D 부문에 무한정 많은 투자를 할 수는 없습니다. R&D 투자를 통해 얻게 될 이윤증대 크기가 투자에 소요되는 비용보다 적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R&D 투자수준은 결국 나중에 결정되는 산출량 및 이윤 크기에 의해 제약을 받고 있으며, 현재 R&D 투자수준은 이윤을 극대화 시켜주는 크기 입니다.


    • 자국기업과 외국기업이 산출량 결정에 앞서 R&D 투자수준을 동시에 결정하는 상황

    • 정부의 R&D 투자 보조금 지원은 자국기업의 R&D 투자수준을 증가시키게 돕는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싶은 자국기업은 어떻게 해야할까요? 기업 자체적인 R&D 투자 확대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현재 R&D 투자수준은 이윤극대화를 달성케해주는 크기이며, 이를 넘어선 투자는 오히려 이윤을 떨어뜨릴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자국기업이 R&D 투자수준을 높일 거라는 발표만 한다면, 이를 듣게 된 외국기업이 대응하기 위해 R&D 투자수준을 변경하게 되고, 이것이 자국기업에게 R&D 투자를 늘릴 여지를 안겨다주지 않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외국기업은 현재의 상황이 서로에게 최적의 투자수준임을 알고 있으며, 자국기업의 R&D 투자 확대 발표는 신빙성 없는 위협(non-credible threat) 이라고 여깁니다.


    바로 여기서 정부의 R&D 보조금 지원이 자국기업의 R&D 투자를 신빙성 있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일종의 '선제적 맹약'(pre-commit) 입니다.


    정부가 세액감면 혹은 직접적인 보조금 지원 정책을 시행하면, 자국기업은 R&D 투자에 들어가는 비용부담을 덜게 됩니다. 그럼 오직 생산량 증대가 가져오는 이윤증가 만을 고려하여 R&D 투자수준을 높일 수 있습니다. 그 결과, 균형 산출량도 증가하여 실제로 이윤과 점유율이 상승합니다.


    브랜더와 스펜서는 '정부의 R&D 보조금 지원 정책은 기업 간 꾸르노 경쟁을 (자국이 선도자인) 스타겔버그 경쟁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고 평가합니다. 


    자국정부는 기업간 게임에 참여하여 선도자(first-player) 역할을 수행합니다. 다음 단계에 결정될 외국기업의 산출량 · R&D 투자수준에 대한 정보를 확실히 인지하고, 이에 대응하여 R&D 보조금을 집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타겔버그 경쟁 모형에서 선도자가 더 많은 산출량 · 이윤을 가져가는 것과 같이, 정부의 개입은 초과이윤을 만들어내는 산업에서 외국기업을 희생시켜 자국기업의 세계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from obtaining a larger domestic share of internationally profitable industries.)




    ※ 교과서 버전으로 살펴보는 전략적 무역 정책의 원리와 문제점


    제임스 브랜더와 바바라 스펜서가 창안한 전략적 무역 정책은 꾸르노 · 스타겔버그 등등 어려워 보일 수 있는 개념을 담고 있기 때문에, 학부 국제무역론 교과서는 이를 단순한 내쉬균형 개념을 이용하여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이용하면 전략적 무역 정책이 가진 단점이 무엇인지도 명확히 인지할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어디선가 보았을 '미국 보잉'과 '유럽 에어버스' 간의 내쉬균형 입니다.


    ▶ 미국 보잉과 유럽 에어버스 중 어느 기업이 세계시장에서 생존할까


    • 유럽 에어버스가 생산할 때, 미국 보잉의 최적대응은 생산하지 않는 것

    • 미국 보잉이 생산할 때, 유럽 에어버스의 최적대응은 생산하지 않는 것

    • 누가 먼저 세계시장에 진입해 있느냐가 균형을 결정 (파란색 칸)


    항공산업은 생산에 막대한 고정비용과 R&D 투자가 수반되며 수요도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소수의 기업만이 생존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과점 시장 입니다. 


    이때 미국과 유럽이 항공산업 진입결정을 하는 상황을 가정해 봅시다. 위의 표는 상대방의 행동에 따른 나의 행동이 가져올 보수를 보여줍니다. 


    미국 보잉의 행동은 다음과 같습니다. 만약 유럽 에어버스가 먼저 생산을 하고 있을 때, 미국 보잉이 진입하면 -5 · 진입하지 않으면 0의 보수를 얻기 때문에, 미국 보잉은 진입을 하지 않습니다. 유럽 에어버스가 생산을 하지 않고 있다면, 미국 보잉이 진입하면 100 · 진입하지 않으면 0의 보수를 얻기 때문에, 미국 보잉은 진입을 합니다.


    유럽 에어버스의 행동도 이와 동일합니다. 만약 미국 보잉이 먼저 생산을 하고 있을 때, 유럽 에어버스가 진입하면 -5 · 진입하지 않으면 0의 보수를 얻기 때문에, 유럽 에어버스는 진입을 하지 않습니다. 미국 보잉이 생산을 하지 않고 있다면, 유럽 에어버스가 진입하면 100 · 진입하지 않고 있으면 0의 보수를 얻기 때문에, 유럽 에어버스는 진입을 합니다.


    결국 항공산업에서 어떤 기업이 생산하느냐는 '누가 먼저 진입해 있었는가 라는 역사적 우연성'이 결정합니다. 


    ▶ 미국 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게 될까


    • 미국정부가 보잉에 25의 보조금 지원
    • 유럽 에어버스가 생산을 하든 안하든 상관없이, 미국 보잉은 생산하는 게 이익
    • 이를 아는 유럽 에어버스는 아예 생산을 하지 않는 선택을 하게 되고, 미국 보잉이 독점이윤 125 획득 (균형은 파란색 칸)

    이런 애매한 상황을 타개하고 확실한 이익을 챙기기 위하여, 미국정부는 자국 항공사가 시장에 진입하면 25의 보조금을 지원하기로 결정합니다. 

    앞서와 달리, 유럽 에어버스가 생산을 하든 안하든 상관없이, 미국 보잉은 생산하는 게 무조건 이익 입니다. 왜냐하면 유럽 에어버스가 생산을 하고 있을 때 진입을 하면 20 · 진입하지 않으면 0의 보수를, 생산하지 않고 있을 때 진입을 하면 125 · 진입하지 않으면 0의 보수를 얻기 때문에, 어느경우든 진입하는 게 더 큰 보수를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유럽 에어버스는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하든 미국 보잉이 진입을 할거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미국 보잉이 생산할 때, 유럽 에어버스가 진입을 하면 -5 · 진입하지 않으면 0의 보수를 얻기 때문에, 유럽 에어버스는 아예 생산을 하지 않는 선택을 합니다.

    그 결과, 미국 보잉은 생산을 하고 유럽 에어버스는 생산을 하지 않는 균형이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미국 보잉은 독점이윤 125를 획득 합니다.

    즉, 이번글에서 살펴보았다시피, 미국정부의 보조금 지원은 유럽 에어버스의 전략적 선택을 변경시킴으로써 미국 보잉의 독점이윤을 발생시켰습니다


    ▶ 이를 본 유럽연합이 보조금 지원으로 보복을 한다면? (retaliation)


    • 미국정부의 정책에 맞서 유럽연합도 보조금 25 지원

    • 그 결과, 미국 보잉과 유럽 에어버스 모두 20의 이윤을 거두나, 이는 보조금 25보다 적다


    전략적 무역 정책은 근본적으로 외국기업을 희생시켜 자국기업을 돕는 '근린궁핍화 정책'(beggar-thy-neighbor) 입니다. 그리고 이는 외국의 보복(retaliation)을 초래하게 됩니다. 


    보다 못한 유럽연합이 보조금 25 지원으로 맞불을 놓습니다. 그 결과 미국 보잉과 유럽 에어버스 모두 시장에 진입하여 생산을 하고 각각 20의 이윤을 가집니다. 그런데 이는 정부가 지원한 보조금 25보다 적기 때문에, 사회 전체 이윤은 -5나 마찬가지 입니다. 즉, 미국의 전략적 무역정책은 유럽연합의 보복을 초래하여 사회적으로 더 나쁜 결과(socially worsen off)가 만들어집니다


    이러한 사례는 현실에서 전략적 무역 정책을 구사할 때 맞딱드리게 될 문제점을 보여줍니다. 


    ▶ 정부는 자국 · 외국기업의 보수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전략적 무역 정책의 본질적인 문제는 '자국기업 및 외국기업의 행동이 가져올 보수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현실에서 기업들이 얻게 될 이익이 표에 채워놓은 숫자일지 아닐지 알 수 없습니다. 표에 채워놓은 숫자를 조금만 바꾸면 전략적 무역 정책의 효과를 사라집니다. 


    하나의 사례로서, 만약 정부가 자국기업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외국기업의 능력을 과소평가할 경우, 보조금 지원정책은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합니다. 


    • 이런 보수구조에서 균형은 유럽 에어버스 만이 시장에서 생산하여 독점이윤 획득

    • 그런데 미국정부는 미국 보잉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유럽 에어버스의 능력을 과소평가 


    위와 같은 보수구조는 유럽 에어버스만이 시장에서 생산하는 균형을 만들어 냅니다.


    그런데 미국정부는 미국 보잉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유럽 에어버스의 능력을 과소평가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앞서의 경우처럼, 미국 보잉이 생산할 때 얻는 이윤이 -5 혹은 100으로 생각하며, 유럽 에어버스가 생산할 때 얻는 이윤도 -5 혹은 100 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정부는 현재 유럽 에어버스만이 시장에서 생산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유럽 에어버스가 먼저 시장에 진입한 역사적 우연성 덕분에 초과이윤을 누리고 있구나" 라고 오판하고 맙니다. 그리하여 보잉에 보조금을 지원하면 유리한 균형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미국정부가 보잉에 25의 보조금을 지원

    • 그러나 균형은 여전히 유럽 에어버스만 시장에 생존하여 독점이윤 150 획득


    미국정부는 호기롭게 보조금을 지원합니다.


    유럽 에어버스가 생산하고 있을 때 미국 보잉이 진입하면 -5의 보수를, 생산하지 않고 있을 때 진입하면 100의 보수를 얻습니다. 유럽 에어버스는 미국 보잉이 생산을 하든 안하든 상관없이 언제나 생산을 하는 게 이득입니다. 그런데 미국보잉은 유럽 에어버스가 생산을 하고 있으면 진입하지 않는 게 이득입니다.


    그 결과, 균형은 여전히 유럽 에어버스만 시장에 생존하여 독점이윤 150을 획득하게 것이 됩니다. 미국정부의 전략적 무역 정책은 균형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습니다.  


    이번글에서 소개한 전략적 무역 정책 논리 또한 동일한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꾸르노 모형 · 스타겔버그 모형 등등을 사용하여 전략적 무역 정책의 논리를 그럴싸하게 설명 하였으나, 정부는 개별 기업의 보수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혹시 어떤 행위를 선택할지는 안다고 하더라도, 정확히 어느 정도의 보조금을 지원해야 외국기업의 행동을 자국기업에게 유리하게 변경시킬지는 알지 못합니다


    결국 전략적 무역 정책은 책 속 이론에서만 타당한 정책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 전략적 무역 정책을 둘러싼 논쟁


    1970-80년대 들어 일반화된 '독과점을 통해 초과이윤을 얻는 산업'이 존재할 때의 무역정책의 효과를 설명해주는 전략적 무역 정책은 당시 '미국정부가 어떠한 무역정책을 선택해야 하느냐'를 두고 펼쳐진 논쟁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전략적 무역 정책의 효과를 믿었던 사람들은 일본의 보호체제를 무너뜨리는 방식 · R&D에 의존하는 미국 최첨단기업을 지원하는 방식을 통해, 미국의 이익을 높이려고 하였습니다. 일본의 보호체제는 미국기업을 희생시키는 문제를 초래하니 어서 빨리 대응해야했고, 미국 최첨단기업 지원은 일본기업을 희생시켜 미국에 독점이윤을 가져다 줄 수 있으니 바람직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자유무역 정책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전략적 무역 정책의 현실적 한계를 집중적으로 비판하였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전략적 무역 정책의 이론적 토대를 만든 제임스 브랜더 · 바바라 스펜서 · 폴 크루그먼 모두 실제 효과에 회의적이었다는 점 입니다.


    이제 다음글을 통해, 왜 미국은 '일본의 무역체제'를 문제 삼았으며, '전략적 무역 정책을 둘러싼 논쟁'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펼쳐졌는지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다음글 :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⑤] 닫혀있는 일본시장을 확실히 개방시키자 - Results rather than Rules


    1.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①]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다 (New Protectionism) http://joohyeon.com/273 [본문으로]
    2.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②] 마틴 펠드스타인,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은 국가경쟁력 상실이 아니라 재정적자 증가이다" http://joohyeon.com/274 [본문으로]
    3.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③]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을 수 없다 - 생산의 학습효과가 작동하는 동태적 비교우위 http://joohyeon.com/275 [본문으로]
    4.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③]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을 수 없다 - 생산의 학습효과가 작동하는 동태적 비교우위 http://joohyeon.com/275 [본문으로]
    5. [국제무역이론 ①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http://joohyeon.com/216 [본문으로]
    6. [국제무역이론 ②] 1세대 국제무역이론 - 헥셔&올린의 보유자원에 따른 무역 http://joohyeon.com/217 [본문으로]
    7. [국제무역이론 ④] 新무역이론(New Trade Theory) - 상품다양성 이익, 내부 규모의 경제 실현 http://joohyeon.com/219 [본문으로]
    8. 두 시장 간 본질적인 차이는 가격을 '주어진 것'(given)으로 받아들이느냐에 있지만, 여기에서는 '초과이윤 존재여부'에 주목합시다 [본문으로]
    9.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④] 유치산업보호론 Ⅰ -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대립(?) http://joohyeon.com/271 [본문으로]
    10.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 http://joohyeon.com/272 [본문으로]
    11. [경제성장이론 ⑧] 신성장이론 Ⅰ - P.로머,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다양한 종류의 투입요소가 끝없는 성장을 이끈다 (variety-based model) http://joohyeon.com/258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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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③]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을 수 없다 - 생산의 학습효과가 작동하는 동태적 비교우위[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③]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을 수 없다 - 생산의 학습효과가 작동하는 동태적 비교우위

    Posted at 2019. 1. 2. 12:56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국가경쟁력' 위기에 직면한 1980년대 초중반 미국

    - 기업가와 경제학자 간 국제무역을 바라보는 상이한 관념


    • 왼쪽 : 1968-1990년, 미국/일본 GDP 배율 추이
    • 오른쪽 : 1970-1990, 미국(노란선)과 일본(파란선)의 노동생산성 증가율 추이
    • 일본의 급속한 성장은 미국민들에게 '국가경쟁력'에 대한 우려를 키웠다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시리즈 시작[각주:1]에서 말했듯이, 1980년대 초중반 미국인들은 '국가경쟁력 악화'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했습니다. 


    일본은 급속한 성장을 기록하는데 반해 미국은 노동생산성 둔화를 겪었고, 1968년 일본에 비해 2.8배나 컸던 미국 GDP 규모는 1982년 2.0배로 격차가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미국인 입장에서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진 것은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 확대 였습니다. 1970년대 들어서 증가해온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는 1980년대 들어서 더 확대되었고, 1985년 GDP 대비 1.15% 수준으로까지 심화되었습니다.


    다른 국가들이 미국을 추월함에 따라 국가경쟁력이 하락하여 세계시장에서 미국산 상품을 팔지 못한다는 스토리는 미국인들에게 절망과 공포심을 심어주었습니다. 미국이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서 패배'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공포심은 미국 내에서 보호무역 정책을 구사하라는 압력을 키웠습니다. 1980년대 초중반, 미국인들의 머릿속을 지배한 건 '일본'(Japan) · '국가경쟁력'(national Competitiveness) · '하이테크 산업'(High-Tech Industry) · '보호주의'(Protectionism) · '산업정책'(Industrial Policy) 등 이었습니다.


    ▶ 경제학자가 바라보는 국제무역 : 비교우위 원리가 지배하는 세상


    이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반응은 냉정했습니다.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에 대해서, 1980년대 초반 대통령 경제자문위원장을 역임한 마틴 펠드스타인은 경쟁력 상실이 아닌 재정적자로 인한 총저축 감소가 무역적자를 초래했다고 주장했습니다.[각주:2] 


    "최근 10년동안 무역수지 흑자에서 무역수지 적자로의 전환은 경쟁력 상실의 징표로 잘못 해석 되곤 한다. 사실, 미국 국제수지 구조 변화는 느린 생산성 향상 때문이 아니라 미국 내 총저축과 총투자가 변화한 결과물이다." 라고 말하며, 사람들의 두려움이 잘못된 인식에 기반해 있음을 지적합니다.


    일본의 급속한 성장에 대비되는 미국 노동생산성 둔화에 대해서는 더욱 냉정한 반응을 보입니다. 그의 주장을 읽어봅시다.


    장기 경쟁력을 둘러싼 우려는 대부분 잘못된 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비록 최근의 달러가치 상승이 일시적 경쟁력 상실을 초래하긴 했으나, 미국이 세계시장에서 물건을 판매할 능력을 잃어버린 건 아니다.[각주:3] (...) 


    생산성 향상 둔화와 국제시장에서의 경쟁은 이렇다할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느린 생산성 향상이 실질임금 상승률 둔화에 의해 상쇄되지 않을 때에만 국제적 경쟁력에 문제가 발생한다.[각주:4]



    경제학자 마틴 펠드스타인이 미국의 국가경쟁력(competitiveness)이 영구히 손상된 것은 아니다 · 생산성 둔화와 국제시장 경쟁은 이렇다할 관계가 없다 라고 판단하는 이유는 '비교우위 원리'(comparative advantage)를 믿기 때문입니다.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각주:5]이 작동할 수 있게끔 하는 원천은 서로 다른 상대가격[각주:6] 입니다. 수입을 하는 이유는 ‘자급자족 국내 가격보다 세계시장 가격이 낮’기 때문이며, 수출을 하는 이유는 '자급자족 국내 가격보다 보다 세계시장 가격이 높' 때문입니다.


    비교우위를 가진 상품은 '상대생산성이 높아 기회비용이 낮기 때문에 자급자족 상대가격이 세계시장 상대가격보다 낮은 품목'을 의미하고, 비교열위를 가진 상품은 '상대생산성이 낮아 기회비용이 높기 때문에 자급자족 상대가격이 세계시장 상대가격보다 높은 품목'을 뜻합니다.


    따라서 (생산성 변동과 상관없이) 자국 통화가치가 상승하여 상품 가격이 비싸지면 일시적으로 비교우위를 상실할 수도 있으나, 무역수지 적자가 통화가치 하락을 유도하는 자기조정기제에 의해서 시간이 흐르면 비교우위를 다시 찾을 수 있습니다.


    절대생산성 수준이 뒤처지더라도 여전히 다른 국가와의 교역을 할 수 있습니다. 국제무역은 절대우위가 아닌 상대생산성에 따른 비교우위에 따라 이루어지며, 더군다나 절대생산성이 뒤처진 국가는 낮은 임금을 통해 상대생산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펠드스타인이 느린 생산성 향상 속도가 실질임금 상승률 둔화에 의해서 상쇄된다면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거라고 판단한 이유 입니다.


    (주 : 비교우위와 임금의 관계에 대해서 '[국제무역이론 ①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참고)


    그리고 경제학자로서 마틴 펠드스타인은 국가경제 · 거시경제 차원에서 국제무역을 바라보고 있습니다한 산업이 비교우위를 일시적으로 잃더라도 어디까지나 일시적이며, 다른 비교우위 산업이 존재하니, 그에게 큰 문제로 여겨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낮은 임금으로 절대생산성 열위에 대응하면 여전히 비교우위는 성립하고 무역을 이루어질테니, 이것 또한 그에게 걱정 사항이 아닙니다.  


    그럼 기업가와 근로자도 경제학자 마틴 펠드스타인처럼 국제무역을 바라볼까요?


    ▶ 기업가 · 근로자가 바라보는 국제무역 : 경쟁 원리가 지배하는 세상


    • 출처 : Douglas Irwin, 2017, <Clashing Over Commerce>, 575 · 595쪽

    • 왼쪽 : 1960~1990년, 미국 내 수입자동차 점유율 추이

    • 오른쪽 : 무역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 제조업 근로자 수


    위의 왼쪽 그래프는 1960~1990년 미국 내 수입자동차 점유율 추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970년대 오일쇼크는 연비가 좋은 일본산 자동차의 수요를 증대시켰고, 1970년대 후반부터 수입자동차 점유율이 대폭 늘어납니다. 이후로도 계속된 수입산 자동차의 미국시장 침투로 인해 치열한 경쟁에 직면하게 된 미국 자동차 기업들은 행정부에 수입제한 등 대책을 요구하기에 이릅니다


    오른쪽 표는 1990년 기준, 무역에 민감한 영향을 받는 미국 제조업 근로자 수와 비중을 나타냅니다. 수입에만 영향을 받는 제조업 근로자수는 약 130만 명이며, 대부분 중서부(Mid-West)와 남부(South) 등에 밀집되어 있었습니다. 러스트벨트 등을 지역기반으로 하는 정치인들은 이들을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했습니다(do something).


    미국 기업들이 정부를 상대로 대책을 요구한 이유는 한번 경쟁에서 뒤처지면 회복하기 힘들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경영자가 바라보는 국제무역 현장은 국가들의 대리전쟁이 벌어지는 곳이며 생존을 위해 경쟁력(competitiveness)이 필요한 곳 입니다.  


    통화가치 하락 · 임금 하락 등 거시경제의 자기조정기제에 의해 비교우위를 되찾을 수 있다는 경제학자의 말은 현실을 모르는 소리로 여깁니다. 왜냐하면 실제 현장에서는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입니다. 한번 1등으로 올라선 외국기업은 계속해서 독보적 지위를 유지하기 때문에, 본래의 비교우위를 회복할 수 있다는 주장은 책에서만 타당합니다. 


    또한, 기업가와 근로자에게 "한 산업이 비교우위를 일시적으로나마 잃더라도 다른 비교우위 산업이 존재하니 국제무역은 여전히 가능하다"는 논리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내가 경영하는 · 내가 종사해있는 산업이 비교우위에서 열위로 바뀌어서 피해를 보고 있는데, 다른 산업을 신경 쓸 여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자들은 "비교열위로 바뀌게 된 산업에 계속 종사하지 말고, 비교우위 산업으로 이동하라"고 충고할 수 있지만, 무역의 충격을 받은 기업가와 근로자가 다른 산업으로 이동하는 건 매우 고통스러운 조정과정(painful adjustment) 입니다.


    ▶ 경제학자와 기업가 · 근로자 간 국제무역을 바라보는 상이한 관념


    이처럼 경제학자와 기업가 · 근로자는 역할과 일하는 곳이 다르기 때문에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상이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경제학자가 보기엔 기업가와 근로자는 이동을 하지 않는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있을 뿐이며, 기업가와 근로자가 보기엔 경제학자는 세상 물정 모르는 좋은 소리만 하고 있습니다.


    •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신무역이론 및 신경제지리학을 만든 공로로 2008 노벨경제학상 수상

    • 크루그먼의 1994년 기고문 <경쟁력: 위험한 강박관념>(<Competitiveness: A Dangerous Obsession>)


    1980년대 미국 내 무역정책을 둘러싼 논쟁에서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 바로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입니다. 그는 1979년 신무역이론(New Trade Theory)[각주:7] · 1991년 신경제지리학(New Economic Geography)[각주:8]을 창안한 공로로 2008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크루그먼은 미국이 자유무역정책을 고수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논리적인 주장을 제기하였고, 비경제학자들의 잘못된 사고방식을 날카롭게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 그는 현실 속 경쟁에 직면해있는 기업가들이 국제무역을 바라보는 관점을 일부 수용하였고,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을 수 없는 동태적 비교우위 패턴을 제시했습니다. 


    이러한 통찰은 비교우위에 따른 특화가 '역사적 우연성'(historical accident)에 의해 결정됐을 수 있으며, 정부의 보호와 지원이 비교우위를 새로 창출(created)하고 국내기업에게 초과이윤을 안겨다줄 수 있다는 '전략적 무역정책'(strategic trade policy)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이제 이번글을 통해 폴 크루그먼이 전통적인 관점에서 국제무역과 비교우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기업가의 관점을 수용하여 만든 새로운 무역이론이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보도록 합시다.




    ※ 경쟁력 : 위험한 강박관념 (Competitiveness : A Dangerous Obsession)


    폴 크루그먼은 1994년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에 기고한 <경쟁력: 위험한 강박관념>(<Competitiveness : A Dangerous Obsession>)와 1991년 사이언스지(Science)에 기고한 <미국 경쟁력의 신화와 실체>(<Myths and Realities of U.S. Competitiveness>) 통해,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국가경쟁력에 대한 우려'가 잘못된 인식에 기반해 있음을 지적합니다. 


    그의 주장과 논리를 하나하나 살펴봅시다.


    (사족 : '국제무역을 둘러싼 잘못된 관념'을 바로잡기 위해 그가 여러 곳에 기고한 글들은 『Pop Internationalism』 라는 제목으로 묶어서 출판되었고, 한국에는 『폴 크루그먼 경제학의 진실』 이라는 제목으로 변역 되었습니다.)


    잘못된 가설 (The Hypothesis is Wrong)


    1993 년 6월 자크 들로르(Jacques Delors)가 코펜하겐에서 열린 유럽공동체 (EC) 회원국 지도지들 모임에서 점증하는 유럽의 실업문제를 주제로 특별 연설을 했다. 유럽 상황을 연구하는 경제학자들은 EC위원회의 의장인 들로르가 무슨 말을 할지 상당히 궁금해 했다. (…)


    어떻게 말했을까. 들로르는 복지국가나 EMS의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유럽 실업의 근본 이유는 미국과 일본에 대한 경쟁력 부족(a lack of competitiveness)이며, 그 해결책은 사회간접자본과 첨단기술에 대한 투자계획(investment in high technology)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들로르의 말은 실망스런 책임 회피였지만 놀라운 발언은 아니었다. 사실 경쟁력이라는 용어(the rhetoric of competitiveness)는 전세계 여론지도자들 사이에 유행어가 되었다. -클린턴에 따르면 “국가들은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대기업들과 같다’ 라는 견해-


    이 문제에 대해 스스로 정통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어떤 현대 국가라도 그 나라가 당면한 경제 문제는 본질적으로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문제로 생각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며-코카콜라와 펩시가 경쟁하듯, 마찬가지로 미국과 일본이 서로 경쟁한다는 것- 누군가가 이 명제에 진지하게 의문을 제기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


    대체로 들로르가 유럽의 문제에 대해 내린 것과 같은 식으로 미국의 경제 문제를 진단한 이런 사람들 중 대다수가 지금 미국의 경제 및 무역정책을 수립하는 클린턴 행정부의 고위층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들로르가 사용한 용어는 자신과 대서양 양안의 많은 청중들에게 편리할 뿐 아니라 편안한 것이기도 했다.


    불행하게도 그의 진단은 유럽을 괴롭히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는 매우 잘못된 것이었고 미국에서의 유사한 진단 역시 오진이었다. 한 나라의 경제적 운명이 주로 세계시장에서의 성공 여부에 따라 좌우된다는 생각은 하나의 가설이지 필연의 진리는 아니다. 그리고 현실의 경험적 문제로 보아도 이 가설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that hypothesis is flatly wrong).


    - 폴 크루그먼, 김광전 옮김, <폴 크루그먼 경제학의 진실> 제1장 경쟁력: 위험한 강박관념


     크루그먼은 글의 시작부터 정치인 · 언론인 · 대중적 인사들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인식, '그 나라가 당면한 경제 문제는 본질적으로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문제로 생각하는 것'을 직설적으로 비판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코카콜라와 펩시가 경쟁하듯 마찬가지로 미국과 일본이 서로 경쟁'하는 것처럼 생각하였고 첨단기술 부문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여 국가경쟁력을 키우고 무역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고 인식했습니다. 


    크루그먼은 "한 나라의 경제적 운명이 주로 세계시장에서의 성공 여부에 따라 좌우된다는 생각은 하나의 가설이지 필연의 진리는 아니다"라고 강하게 주장합니다. 그의 논리를 좀 더 들어보죠.


    어리석은 경쟁 (Mindless competition)


    경쟁력’(competitiveness)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깊은 생각 없이 그 말을 쓴다. 그들은 국가와 기업을 비슷하게 보는 것을 분명히 합리적 이라고 여긴다. 따라서 세계시장에서 미국이 경쟁력을 갖고 있느냐고 묻는 것이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 : GM)사가 북미 미니밴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었는지 묻는 것과 원칙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


    국가경제의 손익을 그 국가의 무역수지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는지도 모른다. 즉 경쟁력을, 해외에서 사들이는 것보다 더 많이 팔 수 있는 국가의 능력으로 측정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론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무역흑자가 국가의 취약함을 나타내고 적자가 오히려 국가의 힘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


    국가들은 기업처럼 서로 경쟁하지 않는다. 코카콜라와 펩시는 거의 완벽한 경쟁자다. 코카콜라 매출의 극히 일부만이 펩시 노동자틀에게 판매되고, 코카콜라 노동자들이 구입하는 상품 중 극히 일부만이 펩시의 제품이다. 그 부분은 무시해도 아무 지장이 없다. 그래서 펩시가 성공적이면 그것은 대체로 코카콜라의 희생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주요 산업국가들은 서로 경쟁하는 상품을 팔기도 하지만, 서로의 주요 수출시장이 되기도 하며 서로 유익한 수입품의 공급자이기도 하다. 만약 유럽 경제가 호황이라 해도 반드시 미국의 희생으로 그렇게 잘 나가는 것은 아니다. 


    사실 유럽 경제가 성공적이면 미국경제의 시장을 확대시켜 주고 우수한 제품을 낮은 값에 팔아줌으로써 미국경제에 도움을 줄 수 있다그래서 국제무역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International trade, then, is not a zero-sum game)


    - 폴 크루그먼, 김광전 옮김, <폴 크루그먼 경제학의 진실> 제1장 경쟁력: 위험한 강박관념


    → 크루그먼은 '경상수지 흑자가 국가의 부를 나타내는 게 아니다'[각주:9]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상호이익(mutual gain)을 안겨다준다'[각주:10]는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본 블로그를 통해 누차 말해왔듯이, 그리고 이전글에서 마틴 펠드스타인이 주장[각주:11]했듯이, 경상(무역)수지는 거시경제 총저축과 총투자가 결정지은 결과물일 뿐입니다. 총저축이 총투자보다 많으면 무역수지 흑자, 적으면 적자가 나타납니다. 여기에 세계시장에서의 경쟁은 중요한 요인이 아닙니다.


    게다가, 무역수지 적자는 본질적으로 좋은 것이며 역설적으로 국가의 강함을 드러내는 지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무역수지 적자는 금융·자본 계정 적자, 즉 순자본유입과 동의어이며 이는 대외로부터 계속 돈을 빌리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약한 국가라면 다른 국가에게 계속해서 돈을 빌릴 수 있을까요? 무역수지 적자가 지속된다는 것(sustained)은 그 국가의 힘을 드러내줍니다.[각주:12]


    (참고 : [경제학원론 거시편 ⑥] 외국의 저축을 이용하여 국내투자 증가시키기 -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은 것인가?)


    또한, 비교우위는 선진국이냐 후진국이냐 상관없이 모든 국가에게 '값싼 수입품의 이용'이라는 상호이익을 안겨다줍니다. 또한, 교역에 참여하는 국가들은 서로의 수출국이며 동시에 수입국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경제호황은 수출시장 확대를 가져다 줍니다. 


    그럼에도 우리와 비교되는 상대국의 가파른 성장은 무언가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인식'을 갖게끔 만듭니다. 이에 대해 크루그먼의 설명을 들어봅시다.


    ● 경쟁력의 신화 (Myth of Competition)


    먼저 전세계의 노동 생산성이 미국과 외국이 모두 연간 1 %씩 증가한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생활수준과 실질임금 등이 어느 곳에서나 연간 약 1%씩 상승한다는 생각은 합리적인 듯하다.


    그러면 미국의 생산성은 계속 연간 1%씩 증가하는 데 반해 다른 나라들의 생산성 증가는 빨라져서 예컨대 연간 4%씩 높아졌다고 가정하자. 이것은 미국국민의 복지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많은 사람들은 분명히 미국이 심각한 어려움에 처하게 되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경쟁자보다 생산성이 뒤지는 회사는 시장을 잃고, 종업원을 해고하지 않을 수 없고, 결국 문을 닫을 것이다. 이와 똑같은 일이 국가에서도 발생하지 않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아니오”다. 국제경쟁으로 인해 국가가 사업을 중단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국가에는 균형을 유지하게 하는 강력한 힘이 작용한다. 이 힘은 일반적으로 어떤 국가라도-비록 그 생산성과 기술 · 제품의 질이 다른 나라에 뒤진다고 하더라도-일정 범위의 상품을 계속해서 세계시장에 팔 수 있게 하고, 또 장기적으로는 무역수지의 균형을 유지하게 만든다. 그리고 무역 상대국들보다 생산성이 현저히 뒤지는 나라일지라도 일반적으로 국제무역에 의해 형편이 더 나아지지, 나빠지지는 않는다.


    - 폴 크루그먼, 김광전 옮김, <폴 크루그먼 경제학의 진실> 제6장 미국 경쟁력의 신화와 실체


    → 크루그먼은 '미국의 생산성이 연간 1%씩 증가하는데 반해 다른 나라가 연간 4%씩 높아진다고 하더라도, 국제경쟁으로 인해 국가가 교역을 중단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이번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듯, 1980년대 초중반 미국민들의 큰 우려는 '미국보다 빠르게 성장하는 일본 그리고 대일무역수지 적자 심화' 였습니다. 그러나 크루그먼 주장은 생산성 둔화와 무역수지 적자가 인과관계가 아님을 말해줍니다. 그 이유는 '균형을 유지하게 하는 강력한 힘'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200여년 전 금본위제 시대에 살았던 데이비드 흄(David Hume)은 "수출보다 수입이 많은 나라는 금과 은화의 지속적인 유출로 인해 물가와 임금이 하락하고 그 결과 적자 국가에서는 상품과 노동력의 가격이 저렴해져서 무역적자가 바로잡힌다" 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른바 '가격-정화 흐름 기제'(Price–specie flow mechanism) 입니다.


    오늘날 조정과정은 임금과 물가의 직접적인 변화 대신 환율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무역적자 국가는 통화가치가 하락하여 수출을 늘리고, 무역흑자 국가는 통화가치가 상승하여 수입이 늘어납니다. 따라서, 어느 나라의 절대생산성이 뒤처진다 하더라도, 환율 조정(혹은 임금 조정)을 통해 상대생산성 우위와 비교우위를 지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절대생산성이 뒤처진 국가도 여전히 '비교우위'(comparative advantage) 원리에 따라 수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의 생산성이 연간 4%씩 성장할 때 자국인 미국도 4% 아니 그 이상 성장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크루그먼이 다시 말합니다.


    ● 어리석은 경쟁 (Mindless competition)


    (경쟁력 상실) 문제를 조금이라도 걱정하는 대부분의 저자들은 경쟁력을 긍정적인 무역실적과 다른 요인의 복합적인 것으로 규정하려고 한다. 특히 오늘날 가장 인기 있는 경쟁력의 정의는 경제자문위원회 의장 로라 D. 타이슨의 저서 『누가 누구를 때려부수는가?』(『Who's Bashing Whom?』)에서 제시한 노선을 따른다.


    경쟁력은 "우리 시민들이 향상되고 있으며, 또 지속 가능한 생활수준을 누리면서 국제경쟁의 시련에 견디는 재화와 용역을 생산하는 능력이다"라는 것이다. 이 말은 합리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당신이 그것을 생각하고 현실에 적용해 본다면 이 정의가 현실과 부합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국제거래가 아주 적은 경제에서는 생활수준의 향상, 그리고 타이슨의 정의에 기초한 '경쟁력'이 거의 전적으로 국내 요인, 주로 생산성 증가율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즉 다른 나라에 대한 상대적 생산성 증가가 아니라 국내 생산성 증가가 바로 문제인 것이다(That's domestic productivity growth, not productivity growth relative to other countries)


    환언하면 국제거래가 아주 적은 경제에서는 '경쟁력'으로 '생산성'을 말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며 국제경쟁과 아무 관련이 없는 것이다. (...)


    물론 위상과 세력에 관한 경쟁은 언제나 존재한다. 빠르게 성장하는 나라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지위 상승을 겪게 될 것이다. 그래서 국가들을 서로 비교하는 것은 언제나 흥미롭다. 


    그러나 일본의 성장이 미국의 위상을 감소시킨다는 주장은, 미국의 생활수준을 떨어뜨린다고 말하는 것과는 아주 다른 것이다. 그런데도 경쟁력 이라는 용어가 주장하는 것은 바로 후자다.


    물론 단어의 의미를 자신의 마음에 맞게 정하는 입장을 취할 수는 있다. 원한다면 ‘경쟁력’ 이라는 용어를 생산성을 의미하는 시적 표현방법으로 시용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국제경쟁이 경쟁력과는 아무 관련이 없음을 실제로 밝혀야 한다. 그러나 경쟁력에 관해 글을 쓰는 사람 치고 이런 견해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별로 없다. 


    - 폴 크루그먼, 김광전 옮김, <폴 크루그먼 경제학의 진실> 제1장 경쟁력: 위험한 강박관념


    생활수준(standard of living)을 지속적으로 높이기 위해서는 생산성 향상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경제성장이론이 솔로우모형[각주:13]부터 P.로머의 R&D모형[각주:14]으로 발전할때까지, 모든 경제학자들이 부정하지 않는 진리 입니다. 


    그러나 크루그먼이 지적한 것처럼, "국내 생산성 증가율이 둔화되어 생활수준 향상이 더뎌지고 있다"와 "국내 생산성 증가율이 타국보다 느려서 국가경쟁력이 훼손되고 세계시장 속 경쟁에서 패배하고 있다"는 완전히 다릅니다. 


    1980년대 미국의 생산성 둔화는 그 자체로 미국인의 생활수준 향상을 더디게 만들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지, 일본의 생산성 증가율에 비해 낮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 아닙니다. 또한, 미국이 생산성을 높여야 하는 이유는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서이지, 다른 국가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미국인들이 걱정해야 할 건 '타국과의 경쟁에서의 패배'가 아니라 '미국 생산성 자체의 둔화'(productivity slowdown) 입니다. 이 둘의 구별은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 미국이 당면한 문제가 전자라고 판단한다면 각종 보호무역 조치로 일본제품의 수입을 막거나 국내 생산자에 보조금을 지원해주는 정책이 시행될 수 있지만, 후자라고 판단하면 자유무역체제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국내생산성 향상을 위한 R&D 지원 및 창조적파괴를 위한 시장경쟁체제 조성이 나오게 됩니다.  


    ▶ 신성장이론이 말하는 '생산성 향상' 방법 두 가지


    : 첫째, [경제성장이론 ⑧] 신성장이론 Ⅰ - P.로머,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다양한 종류의 투입요소가 끝없는 성장을 이끈다 (variety-based model)


    : 둘째, [경제성장이론 ⑨] 신성장이론 Ⅱ - 아기온 · 호위트, 기업간 경쟁은 창조적 파괴를 통해 혁신을 불러온다(quality-based model)




    보호주의 압력을 경계하는 경제학자들 그런데...


    당시 마틴 펠드스타인 · 폴 크루그먼 같은 일류 경제학자들이 무역수지 결정과정 · 경쟁력에 대한 개념 · 생산성 향상의 방법 등을 사람들에게 일일이 설명한 이유는, 미국의 경기침체와 일본의 경제성장이 보호주의 무역정책에 대한 요구를 키웠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상황 인식으로 미 행정부가 보호무역정책을 선택할 가능성을 경제학자들은 크게 염려했습니다.


    그런데... '무역수지' · '국가경쟁력' 등을 주제로 한 경제학자들의 설명이 와닿으시나요?


    머리로는 "그래 중요한 건 일본의 성장이 아니라 우리의 생산성 향상이지"라고 다짐해도, 상대적 위상이 하락하고 있는 걸 보는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머리로는 "무역수지 적자는 경쟁 패배의 산물이 아닌 총저축과 총투자의 결과물이지"라고 받아들여도, 수입경쟁부문(import-competing sector)에 종사하는 근로자와 경영자에게는 하나마나한 소리 입니다.  


    게다가, 생산성 향상을 위해 R&D가 중요하다면 정부가 첨단산업(high-tech)을 보호하고 육성하는 정책을 쓰면 안되냐는 물음을 던질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이런 논리로 로라 D. 타이슨은 전략적 무역 정책(strategic trade policy) 및 산업정책(industrial policy)을 주장했고, 경제학자들 간의 논쟁을 유발시킵니다. (주 : 이에 대해서는 다음글에서 살펴볼 계획 입니다.)


    결정적으로, 세계시장에서 상대기업 보다 더 많은 양의 물건을 팔아야 하는 '경쟁'에 노출되어 있는 기업가에게 '비교우위 · 열위에 따른 특화' 이야기는 멀게만 느껴집니다.

     

    왜 기업가들은 전통적인 경제학이론과는 다르게 무역현장을 바라볼 수 밖에 없을까요? 역설적이게도 이에 대한 답을 폴 크루그먼이 제시해 줍니다.




    ※ 생산의 학습효과 - 한번 성립되고 나면 자체적으로 강화되는 비교우위


    기업가들이 국제무역현장을 '경쟁력'(competitiveness)이 중요한 곳으로 인식한 이유는, 한번 외국기업에게 경쟁에 밀려 점유율을 내주면 다시 되찾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자들은 통화가치 하락 및 임금인하로 비교우위를 다시 되찾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 현실 속 기업가들은 '잘못된 선택이나 불운이 영구적인 시장점유율 손실로 이어진다'(a wrong decision or a piece of bad luck may result in a permanent loss of market share)고 생각합니다.


    그럼 왜 한번 잃어버린 시장점유율 혹은 비교우위를 다시 획득하기가 힘든 것일까요? 


    • 폴 크루그먼의 1987년 논문. 

    • 한번 성립된 비교우위가 학습효과에 의해 자체강화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폴 크루그먼은 1987년 논문 <The Narrow Moving Band, The Dutch Disease, and The Competitive Consequences of Mrs.Thatcher - Notes on Trade in the Presence of Dynamic Scale Economies>를 통해, 이를 설명합니다. 


    리카도헥셔-올린의 비교우위론은 '한 국가의 특화 패턴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상대생산성 혹은 부존자원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합니다. 


    상대생산성 우위에 있는 자국 상품 및 풍부한 부존자원이 집약된 자국 상품은 외국에 비해 더 싸기 때문에 특화와 수출을 합니다. 만약 일시적으로 비교우위 패턴에 충격이 발생하더라도, 통화가치와 임금 하락이라는 시장의 자기조정기제에 의해 원래의 비교우위로 돌아갑니다.


    여기서 폴 크루그먼은 일시적 충격 이후에 원래의 비교우위로 돌아가지 않을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바로, '생산의 학습효과'(Learning by Doing)의 존재 때문입니다. 


    생산의 학습효과란 말그대로 '생산을 통해 학습한다'는 의미 입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현재의 생산성은 과거 생산을 통해 학습한 지식이 만든 결과물이며, 미래의 생산성은 현재 생산과정을 통해 획득하게 된 노하우가 만들어낼 결과가 됩니다. 


    어려운 개념이 아닙니다. 오늘날 삼성전자가 최신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해낼 수 있는 이유는 30년 전부터 축적한 경험이 있은 덕분이며, 앞으로도 상당기간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예상되는 이유는 현재 독보적인 지위를 바탕으로 노하우를 계속 쌓고 있기 때문입니다.


    크루그먼은 '과거부터 누적된 생산량이 현재의 생산성을 결정하 동태적 규모의 경제' (dynamic economies of scale in which cumulative past output determines current productivity) 형태로 생산의 학습효과를 경제모형에 도입하였습니다. 


    일반적인 규모의 경제에서 '규모'가 현재 생산량 크기를 의미했다면, 여기서 '규모'는 과거부터 누적된 생산량 크기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생산량이 많은 기업이 규모의 경제를 달성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과거부터 많은 양을 생산하여 지식을 많이 축적한 기업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여 높은 생산성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이제 학습효과로 인하여 한번 고착된 특화 패턴은 자체적으로 강화됩니다. 어느날 갑자기 기존에 만들지도 않았던 상품을 뚝딱 만들 수는 없습니다. 아무런 경험도 지식도 노하우도 없기 때문입니다. 생산 가능한 상품은 예전부터 만들어와서 공정과정에 대한 학습이 되어있는 것들 입니다. 따라서 생산자는 예전부터 만들어오던 것을 생산하게 됩니다.  


    즉, 폴 크루그먼은 학습효과로 인하여 "일단 한번 만들어진 특화는 그 패턴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상대적 생산성 변화를 유도한다"(a pattern of specialization, once established, will induce relative productivity changes which strengthen the forces preserving that pattern.) 라고 말합니다.


    바로 이러한 특성이 '기업들이 외국 라이벌 기업에게 한번이라도 시장을 내주지 않으려는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습니다. 외국 기업은 독보적 지위를 바탕으로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은 경험을 쌓을테니, 시장을 다시 되찾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럼 외국 기업은 기존에 1위였던 미국 기업의 시장을 어떻게 탈취할 수 있었을까요? 바로 외국 정부의 보호정책 덕분입니다. 


    만약 외국 기업이 자국 정부의 보조금 지원에 힘입어 생산에 착수하고 관세라는 보호막에 힘입어 자국 내에서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다면, 이러한 보호 기간 중에 쌓은 지식과 노하우로 언젠가는 상대적 생산성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습니다.


    특히 폴 크루그먼은 일본기업의 성공 요인을 일본정부의 보호정책에서 찾습니다. "일본의 경제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정부의 산업정책, 특히 유치산업보호 정책 사용이 꼽혀진다. (...) 나의 모형은 이를 설명해준다. 일시적인 보호가 비교우위를 영구히 바꿔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It is possible in this model - within limits- for temporary protection to permanently shift comparative advantage.)


    미국 기업이 직면해 있는 상황이 이렇게 엄중한데, "시장의 자기조정기제에 의해 본래의 비교우위를 회복할 것이다"라거나 "미국은 자유무역 정책을 계속 고수해야 한다" 라는 학자들의 주장은 기업가가 보기엔 세상물정 모르는 태평한 소리에 불과했습니다.




    ※ '생산의 학습효과를 통해 비교우위가 자체 강화된다'는 통찰이 끼친 영향들


    '생산의 학습효과로 인해, 일단 한번 성립된 비교우위가 시간이 흐를수록 자체 강화된다'는 통찰은 또 다른 통찰을 낳았고, 보호무역 정책이 정당화 될 수 있는 논리로 이어졌습니다.


    첫째, 현재의 특화패턴은 '역사적 우연성'에 의해 임의로 성립된 것일 수도 있다


    리카도 및 헥셔-올린의 전통적인 비교우위론은 그 국가가 가지고 있는 특성(underlying characteristics of countries)으로 인해 자연적인 특화패턴(natural pattern of specialization)이 성립되었다고 말합니다. 특정 상품 생산에 필요한 기술수준을 갖춘 국가는 이를 특화하고, 특정 상품에 생산에 투입되는 부존자원을 많이 보유한 국가는 이를 특화합니다.


    그런데 생산의 학습효과가 비교우위 및 특화패턴을 자체 강화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현재 국가들의 비교우위와 특화는 단지 과거부터 많이 생산해온 덕분에 가진 결과물일 수 있습니다. 그럼 과거부터 많이 생산할 수 있게 된 연유는 무엇이냐 따지면, '역사적 우연성'(historical accident) 입니다. 


    본질적으로 어떤 국가가 현재 그 상품에 우위를 가지고 있을 이유는 하나도 없고, 단지 과거에 먼저 생산을 시작하여 많이 만들어왔다는 이유 뿐입니다.


    실 폴 크루그먼의 통찰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난 유치산업보호론을 소개한 글을 통해, "한 나라에 대한 다른 나라의 우위는 다만 먼저 시작했다는 데에 기인"했다는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의 통찰[각주:15]을 살펴본 바 있습니다. 


    존 스튜어트 밀은 1848년 『정치경제학 원리』를 통하여, "시도해보는 것보다 향상을 촉진하는 데 더욱 큰 요인은 없다"라고 말하며 '학습곡선'(learning curve) 개념을 추상적으로나마 도입하였고, '단지 먼저 시작한 덕분에 경험을 많이 축적'했다고 지적하며 역사적 우연성(historical accident)으로 현재의 비교우위가 형성 됐을 수 있다는 통찰을 제시했습니다.


    이러한 통찰은 '아직 시작을 하지 않은 국가가 시도와 경험을 축적하면, 단지 먼저 시작했을 뿐인 국가보다 생산에 더욱 잘 적응할 수도 있을 가능성'을 생각하게끔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만약 잠재적 능력을 갖춘 생산자가 외부성으로 인해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일시적인 유치산업보호 정책으로 효율적인 결과를 달성할 수 있다는 논리로 이어졌습니다.


    폴 크루그먼이 강조한 '생산의 학습효과'(learning by doing)도 유사한 함의와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바로, 전략적 무역정책 및 산업정책의 정당성 입니다.


    둘째, 미국정부는 '전략적 무역정책' 및 '산업정책'을 통해 미국기업을 지원해야 한다


    국제무역 패턴이 국가의 본질적 특성이 아닌 역사적 환경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라면, "정부가 일시적으로 개입하여 환경을 인위적으로 조성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때 정부가 영구히 개입할 필요도 없습니다. 일단 환경만 조성해주고 빠져도 무방합니다. 환경이 한번 조성되고 나면, 기업이 생산을 통해 얻게 된 지식으로 계속 생산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국가경쟁력 쇠퇴'를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매혹적인 논리였습니다. 일본기업과의 경쟁에서 패배하고 있는 미국기업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할 때 항상 제기되었던 반박은 "인위적인 정부 개입은 시장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였는데, 이에 대해 "정부가 처음에만 조금 도움을 주면, 그 후에는 경쟁력을 회복한 미국기업이 알아서 할 것이다"라고 대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생산을 통해 얻게 되는 '학습'(learning) · '지식'(knowledge)의 중요성은 전자 · 반도체 등 최첨단산업(high-tech industry)을 집중적으로 보호하고 지원할 필요를 정당화 해주었습니다. 


    최첨단산업은 대규모 R&D 투자가 수반되고, 그 결과로 얻게 될 노하우는 다른 산업에까지 파급영향(spillover)을 미칠 수 있습니다. (앞서 말했던'생산성 향상을 위한 R&D의 중요성'이 강조된 것에 더하여, 따라서 최첨단산업을 지원했을 때 돌아올 이익은 매우 크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로라 D. 타이슨은 미국 최첨단산업을 보호 · 지원하는 전략적 무역 정책(strategic trade policy) 및 산업정책(industrial policy) 주장했고, 1980년대 미국 무역정책을 둘러싼 논쟁은 한층 더 격화되었습니다.


    셋쩨, 일본 첨단산업의 부상을 막기 위해서 '공세적인 무역정책'이 요구된다


    전략적 무역정책 및 산업정책이 "미국정부가 미국기업을 도와야한다"는 주장이라면, "미국정부는 일본기업이 자국정부의 도움을 받지 못하도록 막아야한다"는 논리도 제기될 수 있습니다.


    크루그먼이 짚어주었듯이, 일본정부는 자국기업을 일시적으로 보호하여 비교우위를 영원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더 정확히 말해 비교우위를 창출(created) 했습니다. 통상산업성(MITI, Ministry of International Trade and Industry)으로 대표되는 일본 관료조직은 수입시장을 닫은 채 자국 자동차 · 철강 · 전자 · 반도체 산업을 집중 육성했습니다. 


    이는 자유무역 원칙에 어긋난 것일뿐더러 일본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행위였기 때문에, 미국기업들은 자국행정부를 대상으로 "일본의 불공정 무역관행(unfair trade practice)을 방관하지 마라"는 요구를 하게 됩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1980년대 미국 무역정책 목표는 외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에 공세적으로 대응하는 '공격적 일방주의'(aggressive unilateralism)를 통해 '평평한 경기장'(level playing field)을 만들어서 국가 간에 '공정한 무역'(fair trade)을 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 폴 크루그먼이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크루그먼은 1987년 논문과 기타 다른 연구를 통해 전략적 무역이론의 토대를 만들었으나, 전통적인 자유무역 원칙을 훼손하는 전략적 무역정책 · 산업정책 · 유치산업보호 정책 · 보호무역을 주장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1987년 논문 말미에서 "약탈적 무역 및 산업정책이 가능할 수 있으나 (...) 바람직한 정책임을 뜻하지는 않는다."라고 노파심을 표현했습니다. 정부의 일시적인 지원으로 비교우위가 창출되고 영구히 변화할 수 있지만, 이것이 이로운지 해로운지 여부는 소비자후생도 같이 고려하여 평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역사적 우연성이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지만, 미래 기대(expectation) 영향이 더 클 경우 과거부터 걸어온 경로의존성에서 벗어날 수도 있음을 짚어주었습니다. 


    크루그먼은 단지 기업가가 무역을 바라보는 관점을 수용하여 '영원히 시장을 뺏기게 될 이론적 가능성'을 이야기 하였을 뿐인데, 그의 의도와는 달리 전통적인 자유무역정책에 반하는 여러 대안들이 제시되고 실행되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이에 더하여 개입주의 무역정책의 근거가 된 또 다른 논리는 바로 '전략적 무역정책'(Strategic Trade Policy) 입니다. 이 글에서 몇번이나 언급했던, 전략적 무역정책은 "시장을 보호하면 국내 생산자가 학습을 할 것이다"는 소극적(?) 주장을 넘어서서 "관세나 보조금으로 외국 기업의 초과이윤을 뺏어와 국내 기업에게 줄 수 있다"는 적극적인 주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제 다음글을 통해 '전략적 무역정책'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합시다.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④] 전략적 무역정책 - 관세와 보조금으로 자국 및 외국 기업의 선택을 변경시켜, 자국기업의 초과이윤을 증가시킬 수 있다


    1.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①]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다 (New Protectionism) http://joohyeon.com/273 [본문으로]
    2.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②] 마틴 펠드스타인,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은 국가경쟁력 상실이 아니라 재정적자 증가이다" http://joohyeon.com/274 [본문으로]
    3. This wider approach reveals that much of the concern about long-run competitiveness is based on misperceptions. Although the recent appreciation of the dollar has created a temporary loss of competitiveness, the United States has not experienced a persistent loss of ability to sell its products on international markets; [본문으로]
    4. there is no necessary relation between productivity and competition in international markets. Slow growth in productivity only hampers a country's international competitiveness if it is not offset by correspondingly slow growth in real wages. [본문으로]
    5. [국제무역이론 ①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http://joohyeon.com/216 [본문으로]
    6.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④] 교역조건의 중요성 - 무역을 하는 이유 · 무역의 이익 발생 http://joohyeon.com/267 [본문으로]
    7. [국제무역이론 ④] 新무역이론(New Trade Theory) - 상품다양성 이익, 내부 규모의 경제 실현 http://joohyeon.com/219 [본문으로]
    8. [국제무역이론 ⑤] 신경제지리학 (New Economic Geography) http://joohyeon.com/220 [본문으로]
    9. [경제학원론 거시편 ⑥] 외국의 저축을 이용하여 국내투자 증가시키기 -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은 것인가? http://joohyeon.com/237 [본문으로]
    10.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③]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http://joohyeon.com/266 [본문으로]
    11.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②] 마틴 펠드스타인,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은 국가경쟁력 상실이 아니라 재정적자 증가이다" http://joohyeon.com/274 [본문으로]
    12. 물론, 대부분 금융 자본 계정 적자, 즉 순자본유입은 지속불가능 하기 때문에 문제를 일으킵니다. [본문으로]
    13. [경제성장이론 ①] 솔로우 모형 - 자본축적을 통한 경제성장 http://joohyeon.com/251 [본문으로]
    14. [경제성장이론 ⑧] 신성장이론 Ⅰ - P.로머,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다양한 종류의 투입요소가 끝없는 성장을 이끈다 (variety-based model) http://joohyeon.com/258 [본문으로]
    15.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 http://joohyeon.com/27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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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②] 마틴 펠드스타인,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은 국가경쟁력 상실이 아니라 재정적자 증가이다"[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②] 마틴 펠드스타인,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은 국가경쟁력 상실이 아니라 재정적자 증가이다"

    Posted at 2018. 12. 31. 19:30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무역수지 적자는 재정적자 때문이다 ?


    • 1960~1990년, 미국 GDP 대비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 비중 추이
    • 1970~80년대 중반까지 급격히 악화되다가,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반등하는 모습


    1980년대 초중반, 미국인들은 세계경제에서 미국이 누리고 있던 지위가 하락하고 있음을 우려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지난글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①]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다 (New Protectionism)'에서 보았듯이, 당시 미국경제는 세계GDP에서 차지하는 비중 감소 · 생산성 향상 둔화 · 실업률 폭등 등의 경제적 문제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이때 미국인들의 우려에 결정타를 날린 것이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 확대' 였습니다. 1980년 미국 GDP 대비 무역적자 비중은 0.7% 였으나, 1985년 2.8%, 1987년 3.1%로 대폭 증가하였는데, 이 중에서 대일본 무역적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 가까이에 달했습니다. 


    미국인들은 무역적자폭 확대를 '세계 상품시장에서 미국의 국가경쟁력이 악화됨(deterioration of competitiveness)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인식했으며, 특히 전자 · 반도체 등 하이테크 산업(high-tech) 및 제조업(manufacturing)에서 미국 기업이 일본 기업과의 경쟁에서 패배했다고 받아들였습니다.


    따라서, "국가경쟁력을 회복하고 일본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보호주의(protectionism) 및 산업정책(industrial policy)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정치인 · 관료 · 대중들에게 영향력 있는 학자들 사이에서 강하게 제기되었습니다. 이처럼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는 그 어느때보다 보호주의 압력이 증대되었고 자유무역 사상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 마틴 펠드스타인(Martin Feldstein), 1982년 10월 ~ 1984년 7월 대통령 경제자문위원장 역임

    • 1983년 대통령 경제 보고서 Ch3 - 재정적자가 강달러 및 무역적자를 초래한다는 지적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많은 사람들의 잘못된 사고방식(?) 때문에 보호주의 요구가 커지는 것을 우려한 경제학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마틴 펠드스타인(Martin Feldstein) 입니다. 


    레이건행정부 시기였던 1982년 10월~1984년 7월 동안 대통령 경제자문위원장(Chair of the Council of Economic Advisers)을 역임한 그는, 1983년 대통령 경제 보고서(Economic Report of the President)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생각치 못했던 무역적자의 원인를 지적합니다. 바로, '재정적자'(Budget Deficit) 입니다.


    그의 주장과 논리를 먼저 읽어보도록 합시다.




    ※ 1983년 2월 대통령 경제 보고서 요약문


    ● 미국 경쟁력의 장기적 추세 : 인식과 현실[각주:1]


    미국의 경쟁력을 둘러싼 우려가 그 어느때보다 높다. 미국 기업들이 세계시장에서 주도권을 잃었다는 주장이 빈번하게 나오고 있다. 형편없는 실적의 원인으로는 미국 기업들의 경영실패와 자국정부의 지원을 받는 외국 기업 등이 지목되고 있다. 미국의 경쟁력이 쇠락하고 있다는 인식은 제조업 상품 무역수지 적자가 지속됨에 따라 더 확산되고 있으며, 특히 일본과의 무역 불균형이 주요 우려 대상이다.[각주:2] (...)


    하지만 장기 경쟁력을 둘러싼 우려는 대부분 잘못된 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비록 최근의 달러가치 상승이 일시적 경쟁력 상실을 초래하긴 했으나, 미국이 세계시장에서 물건을 판매할 능력을 잃어버린 건 아니다.[각주:3] (...)


    생산성 향상 둔화와 국제시장에서의 경쟁은 이렇다할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느린 생산성 향상이 실질임금 상승률 둔화에 의해 상쇄되지 않을 때에만 경쟁력에 문제가 발생한다.[각주:4] (...)


    최근 10년동안 무역수지 흑자에서 무역수지 적자로의 전환은 경쟁력 상실의 징표로 잘못 해석 되곤 한다. 사실, 미국 국제수지 구조 변화는 느린 생산성 향상 때문이 아니라 미국 내 총저축과 총투자가 변화한 결과물이다(U.S. saving and investment position).[각주:5] 


    - 미국 무역수지 구조의 변화[각주:6] 


    1950~6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은 무역흑자를 유지했으며 다른 나라에 대규모 투자를 하였다. 그러나 1973년 이후, 미국은 무역적자로 전환되었으며 외국인의 미국내 투자가 미국인의 대외투자 규모를 넘어섰다. 이처럼 미국 무역수지 변화는 투자흐름 변화(shift in investment flow)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각주:7] (...) 미국 무역수지가 흑자에서 적자로 바뀐 것은 자본수지 계정에 의해 상쇄된다. (...) 


    1970년대가 되자 다른 산업국가들은 더 이상 새로운 자본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다. 동시기에, 미국 내 저축공급은 낮은 국민저축률(low national saving rate)에 의해 제약되었다. 이로 인해, 미국은 자본수출국이 아니라 자본유입국이 되었다.[각주:8]


    - Economic Report of the President, 1983, 51-55쪽



    ● 환율과 국제수지[각주:9]  


    1982년 달러가치는 주요국 통화에 비해 1973년 변동환율제 도입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상승했다.[각주:10] (...) 강달러는 미국 수출상품의 가격경쟁력을 훼손시켜 심각한 문제를 초래했다.[각주:11] (...) 


    - 달러가치 강세의 원인[각주:12]


    달러가치 상승은 미국 상품 수요가 아니라 미국 자산 수요를 반영하는 게 분명하다. 미국 내 투자 선호가 달러가치에 미치는 영향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외국인이 미국 자산을 사기 위해서는 달러를 획득해야 한다. 달러 수요 증가는 달러 가치를 상승시킨다.[각주:13] 


    미국 자산 수요를 증가시킨 중요한 요인은 미국의 높은 실질 금리이다. 실질 금리는 명목금리-기대 인플레이션율로 측정할 수 있다.[각주:14] (...) 최근 몇년동안 미국의 실질 금리는 다른 나라에 비해 상당히 높았다.[각주:15] (...) 


    - 강달러가 미국 무역에 미치는 영향[각주:16]


    달러가치 상승은 미국 기업의 생산비용을 증가시킨다. 1980년 3분기-1982년 2분기 동안, 미국 제조업의 단위노동비용은 다른 산업국가에 비해 32%나 증가하였다. 상대적 비용 증가는 일시적으로나마 미국 산업의 경쟁력을 훼손시킨다.[각주:17] (..) 강달러의 영향이 미국 무역에 계속 영향을 미친다면, 무역적자는 더 심화될 것이다.[각주:18] (...)


    무역 및 경상수지 적자가 지속될지 여부는 미국 거시경제정책, 특히 재정부문(fiscal side)에 달려있다. 만약 대규모 재정적자가 지속되어 미국 국민저축률을 억누른다면, 실질 금리는 다시 상승할 것이고, 달러가치는 계속해서 올라갈 것이다. 이 경우, 무역수지 적자는 향후 수년간 높은 수준을 기록할 것이다.[각주:19] (...)


    외국의 보호주의 무역정책이 세계무역 구성을 왜곡시키고 경제적 효율성을 감소시키긴 하였으나, 대규모 무역수지 적자는 외국의 불공정 경쟁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정부·기업가·노동단체는 명심해야 한다. 미국의 대규모 무역수지 적자는 거시경제 특히 대규모 재정적자가 초래한 결과이다. 미국 무역수지 적자의 원천은 파리나 도쿄가 아니라 워싱턴에서 찾아야 한다.[각주:20] (...)


    - 강달러에 대한 반응[각주:21]


    정부가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하여 환율에 영향을 줄 수는 없으나, 통화 및 재정정책은 간접적으로 환율에 영향을 미친다. 달러가치를 하락시키기 위한 정책은 느슨한 통화정책과 긴축 재정정책 이다. 이러한 정책들이 최소한 단기적으로나마 실질 금리를 낮추어 미국으로의 자산유입을 줄이고 달러가치를 하락시킬 수 있다.[각주:22] (...)


    고정환율제 하에서, 재정적자는 국내투자를 구축시킨다. 변동환율제 하에서, 재정적자는 (통화가치 상승을 통해) 수출부문을 구축시킨다. 따라서, 재정적자 감축은 국내투자 뿐 아니라 무역수지 개선을 불러올 것이다.[각주:23]  


    달러가치 상승은 자유무역을 고수하려는 미국의 결심에 압박을 준다.[각주:24] (...) 미국이 잘못된 국제무역 정책을 선택한다면, 다른 주요 교역국들의 연쇄적인 보복을 일으킬 것이다.[각주:25] (...)


    미국 기업의 경쟁력과 국제수지는 거시경제적 현상이다. 미시적개입은 거시경제 문제를 치유하지 못한다. 미국이 추구할 가장 효과적인 정책은 재정적자와 실질 금리를 통제하에 두는 것이다(budget deficits and real interest rates under control).[각주:26]  


    - Economic Report of the President, 1983, 61-69쪽


    1980년대 초반,  일본의 경제성장과 비교되는 미국의 생산성 둔화 및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 확대[각주:27]를 목격한 많은 미국인들이 보호주의 · 산업정책 · 외환시장 개입 등을 요구하고 있을 때, 마틴 펠드스타인은 이렇게 뜬금없이(?) 재정적자 감축을 이야기 했습니다. 


    경제학을 전공한 미국인들은 펠드스타인이 적은 문장 하나하나가 어떠한 의미를 담고 있는지 쉽게 이해했을 테지만, 다수의 미국인들과 정치인들에게는 뚱딴지 같은 소리였습니다. 


    이번글을 통해 마틴 펠드스타인이 무역적자 확대의 원인으로 왜 재정적자를 문제 삼았는지 차근차근 알아보도록 합시다.




    ※ 1980년부터 미국으로 자본유입 증대 → 달러가치 상승 → 무역적자


    • 파란선 : 주요국 통화 대비 달러가치 지수 (1973=100)

    • 노란선 : 미국 GDP 대비 무역수지 적자 비중 (축반전)

    • 1980년을 기점으로 달러가치가 상승하자, 시차를 두고 무역수지 적자가 심화


    1980년대 초중반, 미국 무역수지 적자 심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요인은 1980년부터 시작된 '달러가치 상승'(dollar's strength) 이었습니다. 위의 그래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달러가치 상승이 본격화되고 2년 후부터 무역수지 적자폭도 확대되었습니다.


    주요국 통화가치 대비 달러가치는 1980-1985년 동안 무려 40%나 상승했습니다. 마틴 펠드스타인이 보고서를 작성한 시점(1982-83년 2월)에도 달러가치는 1973년 변동환율제 도입 이후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었죠. 


    미국 무역수지 적자는 시차를 두고 심화되었습니다. 강달러는 초기에는 수입비용을 낮추는 이로움을 주다가 점점 수출경쟁력을 훼손시켰고, GDP 대비 무역수지 적자 비중은 1982년 -1.3%에서 1986년 -3.7%까지 확대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달러가치가 이토록 오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본래 수출이 줄고 수입이 증가하면 자기조정기제에 의해서 통화가치가 하락하여야 하는 게 정상적임에도, 인위적으로 달러가치를 하향시킨 플라자합의 이전까지 계속해서 상승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마틴 펠드스타인은 "달러가치 상승은 미국 상품 수요가 아니라 미국 자산 수요를 반영하는 게 분명" 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말의 함의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1971년 이후 달라진 세계경제를 알아야 합니다.


    ▶ 닉슨 쇼크 - 변동환율제 도입 이후 전세계적 자본이동 자유화


    1971년은 세계경제에 큰 변화를 안긴 사건이 일어났던 해 입니다. 바로, 닉슨 쇼크(Nixon Shock), 외국이 가져온 금 1온스를 35달러로 교환해주던 금태환제가 폐지되었습니다. 이후 미국을 포함한 주요국들은 고정환율제도에서 벗어나 1973년부터 변동환율제도로 이행[각주:28]하였고, 국가간 자본이동이 자유롭게 이루어졌습니다. 


    1971년 이전까지 외환시장은 주로 무역거래(trade transaction)를 목적으로 사용되었는데, 이후부터는 자본거래(capital transaction)가 외환시장을 지배하였고 통화가치도 자산의 수요에 따라 결정되었습니다. 


    외국인이 미국 내 자산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달러화가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달러화 자산 수요의 증가(increase in the demand for dollar assets), 다르게 말해 미국으로의 자본유입(capital inflow)은 달러가치를 상승시킵니다. 반대로 미국인이 외국의 자산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달러화를 팔고 외국의 통화를 구매해야 합니다. 따라서 외국 자산 수요의 증가 및 미국으로부터의 자본유출은 달러가치를 하락시킵니다.


    ▶ 일본의 외환거래 자유화 & 미국 실질금리 상승 - 미국으로의 자본유입 증대


    그렇다면 1980년부터 시작된 달러가치 상승은 동시기 미국 달러화 자산 수요가 증대된 결과물이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크게 두 가지 이유로 미국으로의 자본유입이 증대되었습니다. 첫째는 본의 외환통제 자유화(liberalization of foreign exchange controls). 둘째는 미국의 높은 실질금리(higher real interest rates) 입니다.


    • 출처 : Fukoa, 1990, <일본 외환통제 자유화와 국제수지 구조변화>[각주:29], BOJ 통화·경제 연구

    • 1980년 12월 자본유출 자유화가 실시된 이후, 일본 기관투자자들의 외국증권투자 잔액이 대폭 증가


    일본은 1973년 변동환율제로 전환한 이후에도 엄격한 외환통제를 실시했습니다. 외환시장은 통화당국에 의해 지도 받았기 때문에 사실상 고정환율제나 마찬가지였죠. 


    그런데 1980년 12월, 새로운 외환거래법이 시행 되었습니다. 이전의 법들과는 달리 새로운 법은 특정 경우를 제외하고 어떠한 외환거래도 허용토록 했습니다(freedom of transactions with exceptions). 생명보험사 · 신탁은행 등의 기관투자자들의 외국증권투자 제한도 없어졌습니다. 그 결과, 위에 첨부한 표에서 볼 수 있듯이, 일본에서 막대한 자본유출(capital outflow)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들 자본이 주로 향한 곳은 바로 미국 이었습니다.


    • 출처 : Economic Report of the President, 1983, 64쪽

    • 미국 실질금리와 주요 산업국 실질금리 간 차이


    1981년 당시 미국 실질금리는 주요 산업국가에 비해서 약 4%p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자본이동이 자유롭게 된 외국투자자들이 미국 달러화 자산에 투자하는 건 자연스런 행동이였습니다. 그리고 달러화 자산 수요 증가로 인해 달러가치가 상승하는 것도 자연스런 인과관계 였죠.


    ▶ 자본·금융수지와 경상수지(무역수지) 간 관계


    자본유입 증대는 달러가치 상승을 유발하여 수출경쟁력 및 무역수지 악화를 초래할 수도 있고, 자본유입 그 자체가 무역수지를 결정하기도 합니다. 바로, 자본·금융수지[각주:30]와 경상수지(무역수지)[각주:31] 간 관계를 통해서 입니다.


    • 1970~1990년, 미국 경상계정(current account) · 금융계정(financial account) 추이

    • 경상계정 적자는 상품·서비스 순수입을 의미하며, 금융계정 적자는 순자본유입을 의미


    [경제학원론 거시편] 시리즈의 글[각주:32]을 통해 소개하였듯이, '경상수지 흑자(순수출) = 자본·금융수지 흑자[각주:33](순자본유출)'이며, '경상수지 적자(순수입) = 자본·금융수지 적자(순자본유입)' 입니다. 


    마틴 펠드스타인이 보고서를 통해 "미국 무역수지 변화는 투자흐름 변화(shift in investment flow)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보고서 내용 다시 읽어보기


    이번 파트에서 살펴본 내용을 염두에 두고, 1983년 대통령 경제보고서에 담긴 관련 내용을 다시 읽어봅시다.


    ● 환율과 국제수지  


    1982년 달러가치는 주요국 통화에 비해 1973년 변동환율제 도입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상승했다. (...) 강달러는 미국 수출상품의 가격경쟁력을 훼손시켜 심각한 문제를 초래했다. (...) 


    - 달러가치 강세의 원인


    달러가치 상승은 미국 상품 수요가 아니라 미국 자산 수요를 반영하는 게 분명하다. 미국 내 투자 선호가 달러가치에 미치는 영향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외국인이 미국 자산을 사기 위해서는 달러를 획득해야 한다. 달러 수요 증가는 달러 가치를 상승시킨다. 


    미국 자산 수요를 증가시킨 중요한 요인은 미국의 높은 실질 금리이다. 실질 금리는 명목금리-기대 인플레이션율로 측정할 수 있다. (...) 최근 몇년동안 미국의 실질 금리는 다른 나라에 비해 상당히 높았다. (...) 


    ● 미국 경쟁력의 장기적 추세 : 인식과 현실


    - 미국 무역수지 구조의 변화 


    1950~6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은 무역흑자를 유지했으며 다른 나라에 대규모 투자를 하였다. 그러나 1973년 이후, 미국은 무역적자로 전환되었으며 외국인의 미국내 투자가 미국인의 대외투자 규모를 넘어섰다. 이처럼 미국 무역수지 변화는 투자흐름 변화(shift in investment flow)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 미국 무역수지가 흑자에서 적자로 바뀐 것은 자본수지 계정에 의해 상쇄된다. (...) 


    1970년대가 되자 다른 산업국가들은 더 이상 새로운 자본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다. 동시기에, 미국 내 저축공급은 낮은 국민저축률(low national saving rate)에 의해 제약되었다. 이로 인해, 미국은 자본수출국이 아니라 자본유입국이 되었다.


    ▶ 왜 미국에서 실질금리가 높았을까? · 왜 미국은 자본유입국이 되었을까?


    그렇다면 이제 던질 수 있는 물음은 "왜 미국에서 실질금리가 높았을까?" "왜 미국은 자본유입국이 되었을까?" 입니다. 만약 미국이 아닌 다른 국가에서 실질금리가 더 높았다면 미국으로의 자본유입은 없었을 것이고, 강달러 현상과 무역수지 적자는 발생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그 해답은 펠드스타인이 말한 "동시기에, 미국 내 저축공급은 낮은 국민저축률(low national saving rate)에 의해 제약되었다. 이로 인해, 미국은 자본수출국이 아니라 자본유입국이 되었다."에 들어있습니다.


    해답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배경지식인 '1979년-1982년 미국 연준의 통화정책과 거시경제 상황'을 먼저 파악해 봅시다.




    ※ 1980년대 초중반, 미국 연준의 통화정책

    - 1979-1982년, 볼커 연준 의장의 反인플레이션 정책 성공


    1970년대 미국 소비자들이 직면한 (생산성둔화 · 무역적자 이외에) 또 다른 문제는 바로 '높은 물가상승률' 이었습니다. 1970년대에 발생한 두 번의 오일쇼크는 10%가 넘는 인플레이션율을 초래했습니다.


    과거 경제학자들은 높은 인플레이션율을 바람직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율의 역관계를 나타내는 (단기) 필립스곡선을 생각하면, 높은 인플레이션율은 낮은 실업률 및 높은 생산량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일쇼크와 같은 공급충격에 의한 물가상승은 높은 실업률과 낮은 생산량을 동반시켜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을 초래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지식으로 무장한 경제학자들은 "경제의 자연실업률과 잠재생산량은 공급측면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율에 따라 변동하지 않으며, 장기적으로 높은 물가수준만 가지게 된다"[각주:34]고 주장했습니다. 


    이제 경제학자들은 인플레이션이 초래하는 장기적 비용을 명확하게 인식하게 되었고, 대중들은 강력한 反인플레이션 정책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인플레이션 감소를 위한 긴축정책은 단기적으로 높은 실업률을 불러올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동일한 자연실업률 · 잠재생산량일 때 이전보다 낮은 물가수준을 가져온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 1979년 8월 - 1987년 8월, 미 연준 의장을 역임한 폴 볼커(Paul Volcker)

    • 볼커 의장은 1979년 부임 이후 강력한 反인플레이션 정책을 구사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1979년 8월 연준 의장으로 부임한 폴 볼커(Paul Volcker)는 인플레이션율을 줄이기 위한 강력한 약속(strong commitment)을 다짐하며, 인플레이션율이 충분한 수준으로 하락하고 경제주체들의 기대인플레이션이 낮아질 때까지 긴축 통화정책을 운용할 것임을 시사했습니다.


    볼커의 연준은 통화공급 증가율을 감소시켜 단기 금리 상승을 용인[각주:35]했으며, 1980년 4월 연방기금금리는 17.61%까지 오릅니다. 1980년 대선을 앞두고 잠시 금리를 내린 연준은 대선이 끝나자 다시 대폭의 통화긴축을 단행합니다. 


    위의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1982년 전반기까지 계속된 긴축 통화정책은 1970년대 10%가 넘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1983년 2%대까지 내리는 데 성공시킵니다. 이후로도 오늘날까지 우리는 높은 인플레이션율을 경험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처럼 볼커의 연준은 경제주체들의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연준의 통화정책은 신뢰성을 획득하였고, "인플레이션 유발 요인이 발생하더라도 연준이 긴축 통화정책으로 대응할 것이다"라는 믿음이 경제주체들 사이에 공고화되자 실제 인플레이션율 또한 높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성공적인 연준의 反인플레이션 정책이 예기치 않은 부작용(?)을 초래했습니다. 




    ※ 1980년대 초중반, 레이건 행정부의 재정정책 

    - 레이건행정부 감세와 국방비지출 증가로 인한 재정적자 심화


    • 1960~1990년, 미국 GDP 대비 연방정부 재정수지 비중 추이

    • 1981년 레이건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재정적자가 심화되었다


    1979년-1982년 연준이 긴축 통화정책을 실시하던 시기에, 1981년 임기를 시작한 레이건행정부는 대폭적인 감세(tax cut)와 국방비지출 증가(defense spending rise)를 실시하여 재정적자(budget deficit)를 초래했습니다. 


    GDP 대비 정부수입은 1981년 18.7%에서 1985년 16.9%까지 하락했습니다. 반면 국방비지출 비중은 5.6%에서 6.9%로 증가했고, 순이자지출 비중도 1.8%에서 3.0%까지 늘어났습니다.


    그 결과 초래된 것이 재정적자(budget deficit) 및 정부부채 증가(government debt) 입니다. 위의 그래프에 나와있듯이, 1981년 -2.5%였던 재정적자 비중은 1985년 -4.9%로 심화 되었습니다.


    레이건행정부는 '작은 정부'를 추구했다고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하여 감세와 정부지출 감소를 동시에 추구하였는데, 세금인하 폭은 예상했던 것보다 컸던 반면 정부지출 감소액은 기대했던 것보다 적었습니다. 19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 이란 미대사관 억류 사태 · 소련과의 냉전 심화 등이 벌어진 상황에서, 국가적 분위기는 국방비 지출에 우호적이었기 때문입니다. 


    1982년 10월 대통령 경제자문위원장이 된 마틴 펠드스타인에게 재정적자는 심각한 우려사항 이었습니다. 그는 행정부 동료들에게 재정적자 감축의 필요성을 설득했고, 언론기고를 통해 분위기를 환기시키려 했습니다. 


    그러나 레이건행정부 인사들과 대중들에게 재정적자는 큰 문제가 아닌듯 보였습니다. 정치사상으로 '작은 정부'를 추구한 행정부 인사들에게 펠드스타인의 세금 인상 주장은 가당치도 않은 요구였습니다. 감세를 통해 경제가 성장하면 향후 세금 수입이 저절로 증대될거라는 믿음이 확고했습니다. 대중들에게 높은 실업률 · 높은 인플레이션율 문제에 비해 재정적자는 별다른 고민거리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국방비지출 감소가 미국의 패권을 위협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재정적자가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에는 앞서 살펴본 연준의 성공적인 정책도 기여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각국 정부는 재정적자를 만회하고 정부부채를 상환하기 위해 통화량 발행을 늘리는데, 이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발생합니다. 그러나 당시 미국은 연준의 긴축 통화정책으로 인플레이션율이 낮았으며, 향후 높은 인플레이션이 유발될 거라는 기대도 사라진 상황 이었습니다. 


    결정적으로, 마틴 펠드스타인이 재정적자를 우려한 두 가지 이유와 논리를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펠드스타인은 재정적자가 장기적으로 투자 위축을 통한 자본형성 및 경제성장 둔화 · 단기적으로 저축 위축을 통한 무역적자 심화를 가져온다고 주장했는데, 사람들이 듣기엔 뚱딴지 같은 소리였습니다. 


    이제 다음 파트에서 펠드스타인의 뚱딴지 같은 소리가 왜 논리적으로 타당한 주장인지 알아봅시다.




    ※ 재정적자가 무역적자를 초래하는 이유

    : 총저축 감소실질금리 상승자본유입 증대 및 강달러무역적자


    지금까지 다룬 내용을 한번 더 짚어봅시다. 미국 무역수지 적자를 초래한 직접적인 요인은 '자본유입'과 '강달러' 입니다. 자본유입은 그 자체로 경상계정 적자(금융계정 적자)를 초래하기도 하고, 달러가치를 상승을 불러와 수출경쟁력 감소 및 무역적자 확대를 만들어 냅니다. 


    결국 무역적자의 근본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왜 1980년대 초중반 미국 실질금리가 높아서 자본유입을 초래하였나"에 대한 해답을 알아야 하는데, 마틴 펠드스타인은 '재정적자'(budget deficit)를 답으로 꼽았습니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 거시경제 총저축과 총투자에 의해서 균형 실질 금리 r*가 결정된다

    • 총저축이 외생적으로 줄어들면 균형 실질 금리는 상승


    재정적자는 거시경제 총저축을 외생적으로 감소시킴으로써 실질금리를 상승시킵니다. 경제학원론에 나오는 아주 단순한 경제원리 입니다. 거시경제 실질 금리 r*는 총저축과 총투자가 결정하는데, 총저축이 외생적으로 줄어들면 균형 실질 금리는 상승합니다. 위의 그래프가 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  : 대부자금시장에서 거시경제 실질 금리가 결정되는 원리는 본 블로그 '[경제학원론 거시편 ⑤]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경제성장 달성하기 - 저축과 투자'를 통해서도 설명한 바 있습니다.)


    • 1970~1990년, 미국 순 국민저축률 · 개인저축률 · 정부저축률 추이

    • 1980년대 초반, 재정적자로 인해 순정부저축률이 줄어들면서 순국민저축률도 크게 감소


    1980년대 초반, 재정적자로 인해 총저축이 감소한 모습을 위의 그래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거시경제 총저축은 이른바 국민저축(national saving)으로 불리우며, 개인저축(private saving) + 정부저축(government saving) 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981년 레이건행정부 감세 및 국방비지출 증가로 재정적자가 증가하면서 순정부저축률이 감소하였고, 그 결과 순국민저축률이 급감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 출처 : Economic Report of the President, 1983, 64쪽

    • 미국 실질금리와 주요 산업국 실질금리 간 차이


    이로 인해 (앞서 살펴본 것처럼) 미국의 실질금리가 다른 주요 산업국가에 비해 높은 수준을 기록하게 되었고, 자본유입 증대 및 달러가치 강세에 이은 무역수지 적자가 초래된 것입니다.


    • 국민계정식(National Accounting)을 이용해 살펴본, 국민저축 · 투자 · 순수출의 관계


    '재정적자 → 총저축 감소 → 실질 금리 상승 → 자본유입 증대 → 달러가치 상승 → 무역적자 발생' 경로가 이해하기 힘들다면, 국민계정식을 통해 재정적자와 무역적자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본 블로그 '[경제학원론 거시편 ⑥] 외국의 저축을 이용하여 국내투자 증가시키기 -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은 것인가?'를 통해 설명한 바 있듯이, 순수출(NX) 크기는 국민저축(S)과 투자(I)가 결정 짓습니다. 기본적인 회계등식 관계일 뿐입니다. 따라서, 정부지출이 증가하여(G↑) 국민저축이 감소한다면(S↓), 당연히 순수출 크기도 줄어듭니다(NX↓)


    국민계정식을 다르게 바라보면, 무역적자가 발생했던 동시기에 자본유입이 증가하여 금융계정이 적자를 기록한 이유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증가한 정부지출로 국민저축이 줄어들면 이를 보충하는 방법은 '외국의 저축'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즉, 국민저축이 감소하면 외국으로부터 자본이 유입되고, 금융계정은 적자를 기록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말했듯이, 순수출과 순자본유입은 동일하게 움직일 수 밖에 없으며, 마틴 펠드스타인이 "미국 무역수지 변화는 투자흐름 변화(shift in investment flow)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제 무역수지 적자의 근본원인은 재정적자에 있다는 마틴 펠드스타인의 주장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의 분석을 다시 읽어보면 처음과는 다른 느낌을 받을 겁니다.


    ● 미국 경쟁력의 장기적 추세 : 인식과 현실


    미국의 경쟁력을 둘러싼 우려가 그 어느때보다 높다. 미국 기업들이 세계시장에서 주도권을 잃었다는 주장이 빈번하게 나오고 있다. 형편없는 실적의 원인으로는 미국 기업들의 경영실패와 자국정부의 지원을 받는 외국 기업 등이 지목되고 있다. 미국의 경쟁력이 쇠락하고 있다는 인식은 제조업 상품 무역수지 적자가 지속됨에 따라 더 확산되고 있으며, 특히 일본과의 무역 불균형이 주요 우려 대상이다. (...)


    하지만 장기 경쟁력을 둘러싼 우려는 대부분 잘못된 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비록 최근의 달러가치 상승이 일시적 경쟁력 상실을 초래하긴 했으나, 미국이 세계시장에서 물건을 판매할 능력을 잃어버린 건 아니다. (...)


    생산성 향상 둔화와 국제시장에서의 경쟁은 이렇다할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느린 생산성 향상이 실질임금 상승률 둔화에 의해 상쇄되지 않을 때에만 경쟁력에 문제가 발생한다. (...)


    최근 10년동안 무역수지 흑자에서 무역수지 적자로의 전환은 경쟁력 상실의 징표로 잘못 해석 되곤 한다. 사실, 미국 국제수지 구조 변화는 느린 생산성 향상 때문이 아니라 미국 내 총저축과 총투자가 변화한 결과물이다(U.S. saving and investment position).


    ● 환율과 국제수지


    - 강달러가 미국 무역에 미치는 영향


    달러가치 상승은 미국 기업의 생산비용을 증가시킨다. 1980년 3분기-1982년 2분기 동안, 미국 제조업의 단위노동비용은 다른 산업국가에 비해 32%나 증가하였다. 상대적 비용 증가는 일시적으로나마 미국 산업의 경쟁력을 훼손시킨다. (..) 강달러의 영향이 미국 무역에 계속 영향을 미친다면, 무역적자는 더 심화될 것이다. (...)


    무역 및 경상수지 적자가 지속될지 여부는 미국 거시경제정책, 특히 재정부문(fiscal side)에 달려있다. 만약 대규모 재정적자가 지속되어 미국 국민저축률을 억누른다면, 실질 금리는 다시 상승할 것이고, 달러가치는 계속해서 올라갈 것이다. 이 경우, 무역수지 적자는 향후 수년간 높은 수준을 기록할 것이다. (...)


    외국의 보호주의 무역정책이 세계무역 구성을 왜곡시키고 경제적 효율성을 감소시키긴 하였으나, 대규모 무역수지 적자는 외국의 불공정 경쟁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정부·기업가·노동단체는 명심해야 한다. 미국의 대규모 무역수지 적자는 거시경제 특히 대규모 재정적자가 초래한 결과이다. 미국 무역수지 적자의 원천은 파리나 도쿄가 아니라 워싱턴에서 찾아야 한다. (...)


    - 강달러에 대한 반응


    정부가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하여 환율에 영향을 줄 수는 없으나, 통화 및 재정정책은 간접적으로 환율에 영향을 미친다. 달러가치를 하락시키기 위한 정책은 느슨한 통화정책과 긴축 재정정책 이다. 이러한 정책들이 최소한 단기적으로나마 실질 금리를 낮추어 미국으로의 자산유입을 줄이고 달러가치를 하락시킬 수 있다. (...)


    고정환율제 하에서, 재정적자는 국내투자를 구축시킨다. 변동환율제 하에서, 재정적자는 (통화가치 상승을 통해) 수출부문을 구축시킨다. 따라서, 재정적자 감축은 국내투자 뿐 아니라 무역수지 개선을 불러올 것이다.


    달러가치 상승은 자유무역을 고수하려는 미국의 결심에 압박을 준다. (...) 미국이 잘못된 국제무역 정책을 선택한다면, 다른 주요 교역국들의 연쇄적인 보복을 일으킬 것이다. (...)


    미국 기업의 경쟁력과 국제수지는 거시경제적 현상이다. 미시적개입은 거시경제 문제를 치유하지 못한다. 미국이 추구할 가장 효과적인 정책은 재정적자와 실질 금리를 통제하에 두는 것이다(budget deficits and real interest rates under control).




    ※ 이해하기 어려운 마틴 펠드스타인의 주장


    이번글을 통해, 마틴 펠드스타인이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은 국가경쟁력 상실이 아니라 재정적자 증가이다" 라고 주장한 이유와 논리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그의 주장은 경제학원론 수준의 지식을 이용해서 차근차근 살펴보면 그다지 어렵지 않으나, 경제학을 접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는 직관적이지 않은 주장 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미국 제조업이 일본 제조업과의 '전쟁과 같은 경쟁'에서 밀렸기 때문에 무역수지 적자가 발생하는 거 같은데, 갑자기 재정적자와 총저축을 이야기하니 당혹스럽습니다. '작은 정부'를 신봉하던 레이건행정부 인사들은 더더욱 황당할 뿐입니다. 감세를 통해 기업을 도우면 경제가 좋아진다고 믿는데, 신임 대통령 경제자문위원장이 세금을 인상해야 무역적자가 줄어든다고 말합니다. 


    마틴 펠드스타인은 시간이 흐르고 난 후 논문을 통해 그때의 일을 이야기 합니다.


    ● 1980년대 달러와 무역적자에 관한 개인적 평가


    - 국민저축과 쌍둥이적자 (무역+재정 적자)


    경제학자들은 재정적자와 실질 금리 · 달러가치, 최종적으로 무역적자 간 연결고리를 이해하고 있으나, 비경제학자들은 이 논리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대통령 경제자문위원장(chair of CEA)을 역임했을 때, 내가 재정적자와 무역적자의 연결고리를 설명할 때마다 수많은 회의론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달러가치는 (외국으로부터의 자본유입이 아니라) 통화정책에 의해서만 결정된다는 통화주의자들도 있었고, 재정적자는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공급주의자들도 있었다.  (...)


    재정적자와 실질 금리 · 달러 가치 · 무역수지 간 관계를 비경제학자들에게 설득하는 건 어려웠기 때문에, 나는 보다 직접적인 설명을 강조했다. 한 나라의 무역수지는 저축과 투자의 차이와 같다. 국가가 저축을 투자보다 많이 한다면 순수출을 하고, 저축이 투자보다 적다면 순수입이 발생한다.  


    대규모 재정적자는 국민저축을 낮춤으로써 무역적자를 일으킨다. 1980년대 전반기, GDP 대비 순개인저축은 감소한 반면 순개인투자는 다소 증가하였다. 이런 조건에서, 무역적자가 발생하는 건 불가피한 일이다. 러한 설명은 경제이론도 아니고 실증분석도 아니라 기초적인 회계등식일 뿐이다. (...)


    그러나 모두를 설득할 수는 없었다. 1984년 초반, 재무부장관 돈 레이건은 상원예산위원 청문회에 나가서, 나의 보고서가 틀렸으며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 Martin Feldstein, 1993, The Dollar and the Trade Deficit in the 1980s: A Personal View


    ● 1980년대 정부지출과 재정적자에 관한 개인적 평가


    1982년 중반-1984년 중반, 대통령 경제자문위원장을 역임하던 2년간 재정적자는 나에게 주요한 문제였고, 레이건 행정부 내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 나는, 우리가 세금인상을 하거나 다른 지출을 줄여야 국방비지출 증대를 감당할 수 있음을 말해왔다. 높은 세금인상이 없다면 행정부의 국방비지출 증액 요구를 의회가 삭감해야 한다고 말했다. (...)


    실업률 및 인플레이션이 초래하는 문제와는 달리, 재정적자가 초래하는 문제는 대중들에게 잘 보이지 않는다. (...) 나는 나의 중요한 책무를 행정부 동료 뿐만 아니라 대중을 상대로 재정적자의 장기적 악영향을 설명하는 것으로 여겼다. (...) 


    만약 그들이 재정적자가 초래할 장기적 악영향을 이해하기만 하면, 그들은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단기비용을 감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 1980년대를 돌아보면,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너무나 적은 노력이 행해졌다. 재정적자를 줄였을 때 발생할 정치적 비용은 명확했다. (...)


    1982년 가을, 나는 상당한 시간을 행정부 내부나 대중들에게 최근의 적자 급증은 경기적 요인이긴 하지만, 경제가 회복되더라도 여전히 구조적 적자에 직면할 것이라고 설명하는데 할애했다. 구조적 적자가 지속된다면 필연코 투자를 줄여서 미래 소득을 줄일거라고 말했다. 


    단기적으로 투자 구축현상은 외국으로부터의 자본유입으로 상쇄되거나 달러가치 상승으로 인한 수출하락으로 상쇄되지만, 자본유입은 일시적이며 결국 재정적자는 국내저축을 줄여서 투자를 위축시킬것이라고 주장했다. (주 : 일명 Feldstein-Horioka Puzzle)


    재무부내 "공급중시론자"들은 일단 경기회복이 시작되고 나면, 세금인하에도 세금수입이 커서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추가적인 세금변경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들은 적자가 지속되더라도, 세금인상 보다는 적자가 지속되도록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세금인상은 유인을 훼손시키는 반면, 재정적자가 문제를 초래한다는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 이들은 재정적자가 실질금리를 인상시킨다는 논리를 부정했다. (...)

     

    재정적자가 초래할 장기적 악영향을 강조한 것, 대통령에게 세금인상 필요성을 요구한 것, 정부지출감소 등의 강조는 백악관 내에서 나를 인기없게 만들었다. 


    - Martin Feldstein, 1993, Government Spending and Budget Deficits in the 1980s: A Personal View 




    ※ 책상 위 경제학자와 경쟁 현실에 직면해 있는 경영자 간 사고방식 차이


    처럼 경제학적 사고방식은 직관적이지 않습니다. 경제학자들의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지식이 있어야하며, 동시대에 벌어진 거시경제적 사건들(닉슨쇼크 및 브레튼우즈체제 붕괴 · 일본의 외환거래 자유화 · 볼커 연준의 긴축 통화정책 · 레이건행정부의 감세정책)이 미친 영향에 대해서 생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경제학자들은 정치권 · 기업가 · 일반 대중들과 항상 충돌하며 논쟁을 일으킵니다. 


    그런데 이번글을 통해 제가 전하고 싶은 것은 "경제학자들은 국제무역을 이렇게 바라보기도 한다."이지, "경제학자들의 사고방식이 진리다"가 아닙니다.


    마틴 펠드스타인의 설명은 거시경제적 현상인 무역적자를 설명할 때는 타당하나, 미시적 세계에서 외국기업과의 치열한 경쟁에 노출되어 있는 경영자가 보기엔 매우 부족합니다. 지금 당장 일본 제조업 기업과의 경쟁때문에 힘든 미국 제조업 경영자에게 "재정적자를 줄여라"는 충고와 조언은 쓸모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경제학자와 기업경영자들이 국제무역을 바라보는 방식이 이토록 다를 수 밖에 없을까요? 이러한 사고방식의 차이는 1980년대 미국 무역정책 방향을 결정함에 있어 큰 논쟁을 유발시켰습니다. 


    바로 다음글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③]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을 수 없다 - 생산의 학습효과가 작동하는 동태적 비교우위 에서 이를 알아보도록 합시다.


    1. Long-Run Trends in U.S. Competitiveness: Perceptions and Realities [본문으로]
    2. Concern over the international competitiveness of the United States is as high as it has ever been. It is argued with increasing frequency that U.S. business has steadily lost ground in the international marketplace. This alleged poor performance is often attributed both to failures of management in the United States and to the support given to foreign businesses by their home governments. Feeding the perception of declining competitiveness is the persistent U.S. deficit in merchandise trade, especially the imbalance in trade with Japan. [본문으로]
    3. This wider approach reveals that much of the concern about long-run competitiveness is based on misperceptions. Although the recent appreciation of the dollar has created a temporary loss of competitiveness, the United States has not experienced a persistent loss of ability to sell its products on international markets; [본문으로]
    4. But there is no necessary relation between productivity and competition in international markets. Slow growth in productivity only hampers a country's international competitiveness if it is not offset by correspondingly slow growth in real wages. [본문으로]
    5. The overall performance of the United States, then, does not suggest a long-term problem of competitiveness. The shift from persistent trade surplus to persistent deficit which occurred over the last decade is, however, often misinterpreted as a sign of an inability to compete. In fact, changes in the structure of the U.S. balance of payments are more the result of changes in the U.S. saving and investment position than of slow productivity growth. [본문으로]
    6. The Changing Structure of the U.S. Balance of Payments [본문으로]
    7. In the 1950s and early 1960s the United States normally had a trade surplus and invested heavily in other countries. In the years after 1973, however, the United States normally had a trade deficit, and annual investment by foreigners in the United States began to approach annual U.S. investment abroad. The shift in the U.S. trade balance was closely connected with the shift in investment flows. [본문으로]
    8. By the 1970s the other industrial countries had narrowed or eliminated these differences in capital and labor costs. The result was that the demand for new capital abroad was no longer a great deal larger than it was in the United States. At the same time, the supply of savings in the United States was restricted by a low national saving rate (the lowest among the major industrial countries). Thus the United States ceased to be a major net exporter of capital, [본문으로]
    9. Exchange Rates and the Balance of Payments [본문으로]
    10. During 1982 the dollar rose against other major currencies to its highest level since the beginning of floating exchange rates in 1973. [본문으로]
    11. the strong dollar caused severe problems by decreasing the cost competitiveness of exported U.S. goods. [본문으로]
    12. Causes of the Dollar's Strength [본문으로]
    13. What the rise of the dollar seems clearly to reflect is a rise not in the demand for U.S. goods, but in the demand for U.S. assets. The reasons for the increased attractiveness of investment in the United States are somewhat controversial, but the effects are not. In order to buy U.S. assets, foreigners must first acquire dollars. The increased demand for dollars drives up the exchange rate. [본문으로]
    14. One important factor in the increased demand for U.S. assets was that real interest rates in the United States were high relative to real interest rates elsewhere. Real interest rates are not directly measurable, since they equal the nominal rate minus expected inflation. [본문으로]
    15. real interest rate in the United States was substantially higher than foreign rates in recent years. [본문으로]
    16. Effects of a Strong Dollar on U.S. Trade [본문으로]
    17. The rise of the dollar was associated with a large rise in the production costs of U.S. firms relative to those of foreign competitors. To take one measure, unit labor costs in U.S. manufacturing rose 32 percent relative to those of a weighted average of other industrial countries from their low point in the third quarter of 1980 to the second quarter of 1982. This rise in relative costs has at least temporarily reduced the international competitiveness of U.S. industry dramatically. Other U.S. exporting and import-competing sectors, especially agriculture, have also been squeezed. [본문으로]
    18. As the effects of the strong dollar are increasingly reflected in U.S. trade, the trade deficit will widen. [본문으로]
    19. Whether the trade and current account deficits persist will largely depend on U.S. macroeconomic policies, particularly on the fiscal side. If large budget deficits are allowed to continue to depress the U.S. national saving rate, real interest rates may rise again, sustaining or even increasing the high real exchange rate of the dollar. In this case the trade deficit could remain high for several years. [본문으로]
    20. Should this occur, government, business, and labor officials must bear in mind that even though protectionist foreign trade practices distort the composition of world trade and reduce economic efficiency both in the United States and abroad, large trade deficits are not the result of unfair foreign competition. Large projected U.S. trade deficits are a result of macroeconomic forces, particularly large budget deficits. The main sources of the U.S. trade deficit are to be found not in Paris or in Tokyo, but in Washington. [본문으로]
    21. Responses to the Strong Dollar [본문으로]
    22. Although the government cannot significantly affect exchange rates through direct intervention, monetary and fiscal policies do indirectly affect the exchange rate. A feasible strategy for bringing the dollar down would involve looser monetary policies and tighter fiscal policies. Both of these changes would tend to lower real interest rates (at least in the short run), making capital movement into the United States less attractive and thus driving down the value of the dollar. [본문으로]
    23. Under fixed exchange rates, budget deficits crowded out domestic investment. With a floating exchange rate they crowd out exporting and import-competing products as well. A reduction in deficits would lead—with some lag—to an improvement in the trade balance as well as higher investment. [본문으로]
    24. The strength of the dollar has put considerable strain on the resolve of the United States to remain committed to free trade. [본문으로]
    25. If there is special reason for concern about the international side, it is because of the danger that mistakes in U.S. policy could set off a spiral of retaliation among all the major trading nations. [본문으로]
    26. The competitiveness of U.S. business as a whole—as opposed to that of particular sectors—and the balance of payments are macroeconomic phenomena. Microeconomic interventions cannot cure macroeconomic problems; they can only make one sector better off by hurting other sectors even more. The most effective strategy the United States can pursue for its exporting and import-competing sectors is to get its overall economic house in order—above all, by bringing budget deficits and real interest rates under control. [본문으로]
    27.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①]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다 (New Protectionism) http://joohyeon.com/273 [본문으로]
    28. 달러지수 데이터가 1973년 100을 기준으로 오늘날까지 제공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본문으로]
    29. Liberalizatoin of Japan's Foreign Exchange Controls and Structural Changes in the Balance of Payments [본문으로]
    30. 요즘은 자본금융 수지라 하지 않고, 자본금융 계정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만... [본문으로]
    31. 경상수지는 상품 및 서비스 무역수지 이외에 본원소득 및 이전소득 수지도 포함하는 넓은 개념이지만, 후자의 크기는 전자에 비해 작기 때문에, 경상수지를 무역지로 받아들여도 큰 문제는 없습니다. [본문으로]
    32. [경제학원론 거시편 ⑥] 외국의 저축을 이용하여 국내투자 증가시키기 -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은 것인가? http://joohyeon.com/237 [본문으로]
    33. 2015년 12월 이전까지, 한국은행은 순자본유출을 자본금융수지에 음(-)의 값으로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혼동을 준다고 하여 2015년 12월부터 순자본유출이 자본금융수지에 양(+)의 값으로 기록되기 시작했습니다. [본문으로]
    34. [경제학으로 세상 바라보기] 자연실업률 - 단기와 장기 · 기대의 변화 · 총수요와 총공급 http://joohyeon.com/210 [본문으로]
    35.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연방기금금리를 직접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타겟인 총통화량 조절을 위해 금리를 조정 [본문으로]
    //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①]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다 (New Protectionism)[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①]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다 (New Protectionism)

    Posted at 2018. 12. 29. 19:35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2018년이 아니라... 1985년?


    "국제적인 무역 시스템이 작동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모든 국가들이 규칙(rules)을 준수하고 개방된 시장(open market)을 보장하도록 애써야 한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자유무역(free trade)은 말그대로 공정무역(fair trade)이 된다."[각주:1]


    "다른 나라의 국내시장이 닫혀있다면(closed) 이는 자유무역이 아니다(it is no longer free trade). 다른 나라 정부가 자국의 제조업 및 농업에게 보조금(subsidies)을 준다면 이는 자유무역이 아니다. 다른 나라 정부가 우리 상품을 베끼도록 놔둔다면(copying) 이는 우리의 미래를 뺏는 것이고 자유무역이 아니다. 다른 나라 정부가 국제법을 위반하고(violate international laws) 그들의 수출업자를 지원한다면 경기장은 평등하지 않은 셈(the playing field is no longer level)이 되며 이는 자유무역이 아니다. 다른 나라 정부가 상업적 이익을 위해 산업 보조금을 집행하여 경쟁국에게 불공정한 부담을 안긴다면(placing an unfair burden) 이는 자유무역이 아니다."[각주:2]


    "우리는 GATT 체제와 국내법 하에서 국제통상에 관련한 우리의 권리와 이익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할 것이다. 다른 국가들이 우리와 맺은 무역협정과 의무를 준수하는지 지켜볼 것이다. 만약 무역이 모두에게 불공정하다면, 자유무역은 이름 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외국의 불공정한 무역관행(unfair trading practices)으로 인해 우리의 기업인들이 실패(fail)하는 것을 가만히 옆에 서서 지켜보지 않을 것이다. 다른 나라들이 규칙에 따라 행동하지 않아서(do not play by the rules) 우리의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마는 사태(lose jobs)를 가만히 옆에 서서 지켜보지 않을 것이다."[각주:3]


    - Douglas Iriwn, 2017, Clashing Over Commerce: A History of US Trade Policy, 606쪽 재인용


    위의 인용문에 나타난 화자는 외국의 불공정한 무역관행으로 인해 자국의 이익이 침해되고 있는 상황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모든 국가들이 국제통상 규칙을 준수하고 개방된 시장을 유지한다면 자유무역이 상호이득을 안겨다줄텐데, 다른 국가들은 보조금 등을 집행함으로써 타국 생산자를 희생시켜 자국 생산자의 이익을 인위적으로 보호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러한 상황을 더 이상 방관하지 않고 자신의 기업인과 근로자를 지키겠다는 단호한 결의를 내비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국제무역논쟁] 시리즈 첫번째 글[각주:4]에 나타난 '화가 난 도널드 트럼프'가 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2018년 오늘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상대로 말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도대체 누가, 언제, 누구를 대상으로 한 발언일까요?


    • 왼쪽 : 미국 제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1981~1989)

    • 오른쪽 : 1985년 플라자합의에 이루어낸 G5 재무장관들


    윗 발언을 한 인물은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고, 시기는 플라자합의가 발표된 바로 다음날인 1985년 9월 23일 입니다[각주:5]. 당시 레이건 행정부는 플라자합의를 통해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의 통화가치를 높이고 달러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내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외국의 불공정 무역관행, 특히 '일본'과의 무역에 있어 보다 강경한 자세(a more aggressive stance)를 취할 것임을 위에 나오듯 공개적으로 천명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2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 첫째,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미국에서 자유무역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다


    금까지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시리즈를 통해 살펴본 바와 같이,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 논리를 비판해온 나라는 주로 개발도상국 이었습니다. 


    중상주의 사상을 비판하고 자유무역 사상을 퍼뜨린 애덤 스미스[각주:6]와 이윤율 저하를 막기 위해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고 비교우위 논리를 세상에 내놓은 데이비드 리카도[각주:7] 모두 제조업이 발달되어 있던 영국의 국민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자유무역 및 비교우위론은 이미 제조업에 비교우위를 가진 국가에만 유리한 이론 아니냐"는 비판이 줄곧 제기되어 왔습니다.


    1920-30년대 호주[각주:8]는 제조업이 아닌 1차 산업이 발달되어 있었기 때문에 "자유무역이 영국에게 이로웠던 것과 마찬가지로, 호주에게 이로운 것은 보호무역 정책이다." 라고 판단했습니다. 1950-70년대 중남미[각주:9]는 경제발전에 필수적인 자본재를 스스로 생산하는 민족자립경제를 달성하기 위하여 수입대체산업화 정책을 실시했습니다. 중남미의 참담한 실패와 한국의 경제발전 성공[각주:10]은 폐쇄적인 무역체제가 아닌 대외지향적 무역체제의 필요성을 부각시켜 주었으나, 특정 산업이 성장할 때까지 보호[각주:11]하는 정책이 효과를 볼 수 있음도 보여주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하여 비교우위론과 자유무역 사상은 보다 정교화 되었습니다. 


    비교우위에 따른 특화가 기술수준[각주:12] 혹은 부존자원[각주:13] 차이에 의해서 결정된다고는 하나, 단지 먼저 시작했다[각주:14]는 이유 즉 역사적 우연성 만으로도 비교우위를 가질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늦게 시작한 까닭으로 현재는 경쟁력이 없으나, 시간이 흐르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판단되는 산업을 일시적으로 보호하는 정책이 정당화 될 수도 있음을, 서구의 주류 경제학자들도 인정하게 됩니다. 


    그런데 1980년대가 되자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 내에서 자유무역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보호주의 압력이 증대되기 시작했습니다. 


    위에서 인용한 레이건 대통령의 발언은 마치 자유무역의 수호자 처럼 보입니다. 규칙을 어기는 외국에 대항하여 자유무역 체제를 지킬 것임을 선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이와 달랐습니다. 세계경제 내 미국의 위상이 줄어들고 일본 및 제3세계 국가들과의 경쟁이 심화되자, 미국 내에서는 보호주의 압력이 증대되었습니다. 외국상품 수입을 제한하고, 미국 기업을 지원하는 산업정책을 요구하고, 일본의 무역장벽을 위협을 통해 제거하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나타난 결과물이 바로 1985년 플라자합의1988년 종합무역법의 슈퍼301조 조항 입니다.


    ▶ 둘째, 오늘날이라고 해도 위화감이 없는 장면이 1980년대에 나타나다


    1980년대 미국의 모습은 오늘날에 비슷하게 재현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이라고 해도 위화감이 없는 장면이 1980년대에 나타났던 이유, 다르게 말해 1980년대와 유사한 대결 및 갈등이 오늘날에도 재현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때와 지금을 둘러싼 여러 상황이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대일본 무역적자가 문제였다면 현재는 대중국 무역적자가 보호무역 압력을 증대시키며, 일본 · 중국으로부터의 자본유입 증가도 논쟁을 일으킵니다. 또한, 미국 제조업은 80년대 일본 하이테크 산업의 발전 · 00년대 중국 저임금 일자리의 증가로 인해 극심한 경쟁에 노출되며, 제조업 쇠락 및 탈산업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낳았습니다. 


    결정적으로, 일본 특유의 경제체제와 사고방식을 미국은 이해하기 힘들어했고 오늘날 중국 특유의 정치 · 경제체제 및 사고방식은 갈등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미국과는 완전히 다른 일본의 부상에 두려움을 느꼈던 미국인들은 오늘날 마찬가지로 완전히 다른 중국의 성장에 위협을 느낍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각 시기에 활동하는 경제학자들은 일본 · 중국과의 무역이 미국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자유무역 사상에 반하는 새로운 무역이론 혹은 실증분석 결과를 제시하며 논쟁을 유발시킵니다.


    따라서,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시리즈를 통해 1980년대 미국 내에서 벌어진 국제무역논쟁을 살펴보고 나면, 오늘날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1980년대 미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큰 그림을 파악해야 합니다. 크게 3가지 측면에서 사건이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첫째, 미국의 지위 하락과 경기침체 그리고 무역적자의 '거시경제적 위기'. 둘째, 전자 · 반도체 등 첨단산업 경쟁 심화가 보여주는 '일본의 부상'. 셋째, 자유무역 정책이 최상의 정책이 아닐수도 있다는 함의를 전해주는 '경제학계의 변화' 입니다.  




    ※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 ① 거시경제적 위기 : 미국의 지위 하락과 생산성 둔화 그리고 무역적자


    • 1968~1990년, 전세계 GDP에서 미국 GDP가 차지하는 비중의 변화

    • 1970년대 일본 및 제3세계 경제가 고성장을 기록하며, 세계경제에서 미국의 지위가 하락


    미국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세계 최강대국의 지위를 누려왔습니다. 서유럽이 전쟁으로 쑥대밭이 되었고, 제3세계는 저발전 상태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의 지위는 하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서유럽이 다시 부흥하였고 한국 ·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고도성장을 기록하며 경제를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위의 그래프는 전세계 GDP에서 미국 GDP가 차지하는 비중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미국은 1968년 전세계 GDP 중 26.2%를 차지했으나, 점점 감소하여 1982년 23.0%를 기록합니다.  


    • 1960~1990년, 미국 실업률 추이

    • 1970년대 오일쇼크, 1980-82년 경기침체로 인해 실업률이 급등


    1982년은 미국경제가 바닥을 찍었던 해 입니다. 1970년대 중동발 오일쇼크 · 1980-82년 미 연준의 긴축 통화정책 때문에 미국 경기는 저점을 찍고 실업률은 대공황 이후 가장 높은 값을 보였습니다. 1969년 3.5%였던 실업률은 1982년 9.7%까지 급등합니다. 


    • 1950~1990년, 미국 총요소생산성 지수 추이 (2009년 100 기준)

    • 1970년대 들어서면서 미국 생산성 향상 속도가 둔화


    미국인들에게 더 큰 우려를 안겨준 것은 생산성 둔화 였습니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중반까지 총요소생산성 향상 속도가 둔화되자, 미국경제가 단순한 경기침체가 아닌 구조적 저성장에 빠진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었습니다. 


    • 1960~1990년, 미국 GDP 대비 무역적자 비중

    • 1970년대 오일쇼크, 1980년대 강달러 · 제조업 상품 경쟁력 약화로 인해 무역적자폭 심화


    여러가지 안 좋았던 경제상황 속에서, 미국인들 우려에 결정타를 안긴 것은 무역적자 확대 였습니다.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무역흑자에서 무역적자로 전환된 미국경제는 이후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다가, 1982년부터 무역적자폭이 심화되었습니다. 1980년 미국 GDP 대비 무역적자 비중은 0.7% 였으나, 1985년 2.8%, 1987년 3.1%로 대폭 증가했습니다.


    이처럼 1980년대 초중반 미국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감소 · 높아지는 실업률 · 생산성 둔화 · 무역적자 확대 등 거시경제적 측면에서 위기에 빠져 있었습니다. 미국경제가 둔화된 원인에 관한 논리적인 경제학적 분석 등은 미국인들에게 중요치 않았습니다. '미국의 지위가 하락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미국인들에게 우려와 공포를 안겨주었습니다.


    국제무역이론의 대가 자그디쉬 바그와티(Jagdish Bhagwati)는 저서 <보호주의>(<Protectionism>)와 여러 논문을 통하여, 당시 미국이 처하게 된 상황을 두 가지 단어로 설명합니다. 바로, '이중의 압박'(Double Squeeze)과 '왜소해지는 거인'(Diminished Giant) 입니다. 


    한국 · 대만 등 동아시아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은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미국기업들의 경쟁을 증대시켰습니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여 비교우위를 획득하였고, 비교열위가 된 미국기업들은 시장퇴출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그리고 서유럽의 부흥과 일본의 추격은 자본집약적 · 기술집약적 산업 내 미국기업들을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미국기업들은 최첨단 산업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가졌다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미국 노동집약 산업은 동아시아 개발도상국, 자본·기술집약 산업은 서유럽 · 일본으로부터의 압박에 이중으로 노출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초래된 지위의 하락 · 경쟁력 상실 · 실업의 증가 · 생산성 둔화 등은 미국이라는 거인이 왜소해짐을 보여주는 결과물이었습니다.  


    특히 미국인들은 무역적자폭 확대를 '세계 상품시장에서 미국의 국가경쟁력이 악화됨(deterioration of competitiveness)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인식했습니다. 다른 국가들이 미국을 추월함에 따라 국가경쟁력이 하락하여 세계시장에서 미국산 상품을 팔지 못한다는 스토리는 미국인들에게 절망과 공포심을 심어주었습니다. 미국이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서 패배'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1980년대 초중반 당시 미국인들은 어느 나라가 '미국과의 경쟁에서 승리'했다고 인식했었을까요? 그 대상은 바로 '일본'(Japan) 입니다.




    ※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 ② 일본의 부상 : 일본과의 경쟁에서 패배한(?) 미국


    늘날 미국인들이 중국의 부상에 경계심을 가지듯이, 1980년대 미국인들은 일본의 부흥을 두려워했습니다. 


    • 1968~1990년, 미국 GDP / 일본 GDP 배율 추이

    • 일본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함에 따라, 미국의 상대적 지위가 하락


    1970년대부터 80년대 초중반까지, 일본의 급속한 성장은 미국과 비교했을 때 더 대단해 보였습니다. 1968년 미국 GDP는 일본 GDP와 비교했을 때 2.6배나 컸으나, 1977년 2.3배 · 1982년 2.0배를 기록하며 상대적인 크기가 줄어들었습니다. 


    • 1960~1990년, 미국 GDP 대비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 비중 추이

    • 1970~80년대 중반까지 급격히 악화되다가,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반등하는 모습


    미국인 입장에서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진 것은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 확대 였습니다. 1970년대 들어서 증가해온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는 1980년대 들어서 더 확대되었고, 1985년 GDP 대비 1.15% 수준으로까지 심화되었습니다. 1980년대 초중반 미국의 총 무역수지 적자 비중이 GDP 대비 약 1.5%~3.0% 수준 이었음을 감안하면, 일본이 미국 무역수지 적자의 절반 가까이를 초래한 셈입니다.

    • 첫번째 : Laura Tyson, 1984년, 『누가 누구를 때리는가? - 하이테크 산업 내 무역분쟁』
    • 두번째 : Clyde V. Prestowitz, 1988년, 『무역현장 - 어떻게 우리가 일본에게 미래를 내주었으며 어떻게 되찾을 것인가』
    • 세번째 : Ezra Vogel, 1979년, 『세계최고의 일본 - 미국을 위한 교훈』
    • 네번째 : Chalmers Johnson, 1982년, 『통산성과 일본의 기적 - 1925-1975 산업정책』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에 맞추어, 일본을 경계 · 분석 & 학습하는 책이 쏟아졌습니다. 첫번째 부류의 책은 일본이 미국의 지위를 위협하고, 그 결과 미국의 경쟁력이 하락하고 있음을 경고하는 것들이며, 두번째 부류의 책은 일본의 성장 노하우를 배우고 미국이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것들 입니다. 이러한 양상은 중국의 부상을 경계하거나 이를 통해 교훈을 얻자는 도서가 오늘날에 많이 나오는 것과 똑같습니다

    위에 첨부한 사진 중, 첫번째 책은 로우라 타이슨(Laura Tyson)의 1984년작 『누가 누구를 때리는가? - 하이테크 산업 내 무역분쟁』(『Who's Bashing Whom? - Trade Conflict in High-Technology Industries』) 입니다. 타이슨은 이 책을 통해, 전자 ·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서 일본기업의 성장과 이로 인한 미국기업들의 몰락 가능성을 주장하며, 미국정부가 적극적으로 자국 첨단산업을 보호하고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두번째 책은 클라이드 V. 프레스토위츠(Clyde V. Prestowitz)의 1988년작 『위치 바꾸기 - 어떻게 우리가 일본에게 미래를 내주었으며 어떻게 되찾을 것인가』(『Trading Places - How We Are Giving Our Future to Japan and How to Reclaim It』) 입니다. 그는 미국의 경쟁력 악화가 세계시장에서의 패배를 불러왔으며, 국가경쟁력을 회복하는데에 힘을 집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세번째 책은 에즈라 보겔(Ezra Vogel)의 1979년작 『세계최고의 일본 - 미국을 위한 교훈』(『Japan as Number One - Lessons for America) 입니다.  네번째 책은 찰머 존슨의 1982년작 『통산성과 일본의 기적 - 1925-1975 산업정책』(『MITI and the Japanese Miracle - the Growth of Industrial Policy, 1925-1975) 입니다. 이들은 일본의 성공을 관료주도의 산업정책 덕분으로 보고 있으며, 이를 미국 정부가 배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1980년대 초중반, 미국인들의 머릿속을 지배한 건 '일본'(Japan) · '국가경쟁력'(national Competitiveness) · '하이테크 산업'(High-Tech Industry) · '보호주의'(Protectionism) · '산업정책'(Industrial Policy) 등이었습니다.



    ※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 ③ 경제학계의 변화 : 보호주의 논리를 뒷받침해준 새로운 이론들


    "일본은 정부의 보호 속에 하이테크 산업 부문의 국가경쟁력을 키워왔으며, 일본기업과의 경쟁에서 패배한 미국은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보호주의 및 산업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미국 대중들에게 상당히 매혹적인 주장으로 들리지만, 전통적인 이론을 습득한 경제학자들은 동의를 하지 않는 게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기본적으로 한 국가의 생활수준은 자체적인 생산성 향상(productivity)에 달려있습니다. 일본이 미국에 비해 빠르게 성장했더라도, 미국의 생활수준은 일본의 성장속도가 아닌 미국의 생산성 향상에 의존할 뿐입니다. 일본이 5% 성장하는 것과 상관없이, 미국이 3%로 성장했다면 미국인들의 생활수준은 -2%가 아니라 3% 향상된 것입니다. 경제성장을 달리기 경주처럼 생각하여, 다른 국가가 더 빠르게 성장하면 우리의 삶의 수준이 악화된다고 여기는 것은 잘못된 사고방식 입니다.   


    그리고 자유무역은 '국가경쟁력'(competitiveness)이 아니라 '비교우위'(comparative advantage)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만약 일본기업의 절대적 생산성 수준이 미국기업보다 높아졌다고 가정하더라도, 다르게말해 미국기업의 국가경쟁력이 일본에게 뒤쳐져 있더라도, 미국은 여전히 일본과 교역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비교우위 원리에 따라, 상대적 생산성 우위를 가진 품목을 수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무역수지 적자(trade deficit)를 세계시장에서의 패배의 결과물로 대중들이 인식하는 것을, 경제학자들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무역수지는 거시경제 저축과 투자가 결정하는 항등식의 결과물이지, 국가경쟁의 산물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일본이 보호무역체제를 운영한다고 해서 미국 또한 보호주의 정책을 채택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자유무역이 이로움을 주는 이유는 '외국이 비교우위를 가진 상품을 값싸게 수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외국의 보호무역에 대응하여 (보복)관세를 부과한다면,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수입을 하는 미련한 행위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 


    다른 나라가 관세를 부과한다고 해서 우리도 관세를 높이는 행위는 "다른 나라가 암석 해안(rocky coasts)을 가졌으니 우리의 항구에 돌을 가져다 놓자(drop rocks into our harbors)"[각주:15]는 말과 같습니다.  곡물법 폐지를 통해 자유무역을 처음 실시한 영국은, 외국의 무역체제에 상관없이 스스로 무역장벽을 낮추었습니다. 이렇게 외국이 자유무역을 하든 보호무역을 하든 상관없이, 나의 수입장벽을 철폐하는 것이 이롭기 때문에, 자유무역 원리는 일방주의(unilateralism) 성격을 띄고 있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가 되자 전통적인 무역이론을 보완하는 새로운 이론이 등장하였고, 보호주의 무역정책이 어느정도 타당할 수 있다는 함의를 전해주기 시작했습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 경제학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는 제 블로그를 통해 살펴본적이 있습니다. 다시 한번 이를 알아봅시다.

    ▶ 불완전경쟁시장 가정의 도입 (imperfect competitive market)

    가장 큰 변화는 '완전경쟁시장'(perfect competitive market) 가정에서 탈피한 '불완전경쟁시장'(imperfect competitive market)의 도입 입니다. 

    완전경쟁시장 하에서는 상품가격이 한계비용과 일치한 'P=MC'가 성립해야 하기 때문에, 생산자는 초과이윤을 획득할 수 없습니다. 만약 초과이윤이 일시적으로 존재한다면, 새로운 시장참가자가 진입하게 되고 공급증가로 가격은 하락하여 다시 P=MC가 됩니다.

    이때 상품생산에 고정비용(fixed costs)이나 초기 연구투자비용(R&D costs)이 존재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이미 시장에 진입해있는 생산자가 한계비용보다 높은 가격을 설정하더라도(P>MC), 잠재적 생산자는 재빨리 시장에 진입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장 진입을 위해서는 고정비용 혹은 초기 연구투자비용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신규 진입으로 인해 가격이 더 하락할 것으로 예상한다면, 초기에 지불해야 하는 고정비용 등을 회수하지 못할 것이라 판단하여 아예 시장진입을 하지 않게 됩니다. 

    이로써 상품가격이 한계비용보다 높게 유지되고, 기존 생산자는 초과이윤을 누릴 수 있습니다.

    ▶ 기존 경제학이론과 시장구조 및 R&D의 결합 (market structure)

     

    시장구조가 불완전경쟁시장 이라는 점이 경제학 연구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1970년대 후반-1980년대, 국제무역이론에 불완전경쟁시장 가정이 도입된 이후 '신무역이론'(New Trade Theory)[각주:16]이 탄생했으며, 경제성장이론에서는 '신성장이론'(New Growth Theory)[각주:17]이 등장했습니다. 


    신무역이론은 "고정비용의 존재로 인해 국내시장 진입자의 숫자가 제한되고 그 결과 상품다양성에도 제약이 생긴다. 이때 국제무역을 한다면 외국의 다양한 상품을 소비할 수 있기 때문에, 무역은 다양성의 이익(variety gain)을 안겨준다."는 함의를 전해줍니다. 국제무역은 고정비용의 제약에서 벗어나 시장을 확대하는 결과를 가져다 줍니다.


    신성장이론은 아예 시장진입자의 독점이윤을 특허권 등으로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만약 독점이윤을 얻을 수 없다면, 아무도 R&D 투자를 하지 않을 것이고, 그 결과는 생산성 감소와 경제성장 저하 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국제무역 이론가들은 '시장구조'(market structure)가 무역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깨달았고, 경제성장 연구로부터 'R&D'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장구조와 R&D는 무역이론을 또 다른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었습니다. 


    ▶ 시장구조가 과점인 상황에서 초과이윤 획득하기 (oligopoly & rent) 

    ▶ R&D 외부효과를 낳는 첨단산업 육성하기 (R&D spillover and high-tech industry)


    고정비용이 존재하는 불완전경쟁 시장 하에서는 신규 생산자의 진입이 제한되기 때문에, 기존 생산자는 초과이윤(rent)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를 다른 시각으로 생각하면, "외국 기업의 국내시장 진입을 저지한다면 국내 생산자의 초과이윤을 더 증가시킬 수 있다" "국내와 외국에서 각각 생산자 하나씩만 존재하는 과점(oligopoly) 상황에서, 보호를 통해 국내 생산자의 생산량을 좀 더 증가시키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여 외국보다 더 많은 이윤을 얻을 수 있다." 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또한,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한 R&D 투자의 중요성은 "R&D 연구를 통하여 최첨단 기술을 만들어내고 지식학습으로 외부성을 가져오는 첨단산업(high-tech)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으로 이어집니다. 


    • 맨 위 : Brander, Spencer의 1983년 논문 <국제적 R&D 경쟁과 산업전략>

    • 아래 왼쪽 : Krugman이 편집한 1986년 단행본 <전략적 무역정책과 신국제경제학>

    • 아래 오른쪽 : Helpman과 Krugman이 편집한 1989년 단행본 <무역정책과 시장구조>


    이렇게 1980년대에 등장한 '전략적 무역정책'(Strategic Trade Policy)은 기존의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 논리에서 탈피하여, 국내 최첨단 산업을 외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보호할 '이론적' 필요성 및 정당성을 전해주었습니다. 

    전략적 무역이론을 주도한 경제학자는 제임스 브랜더(James Brander)바바라 스펜서(Barbara Spencer) 였습니다. 맨 위에 나오는 사진은 이들의 1983년 논문 <국제적 R&D 경쟁과 산업전략>(<International R&D Rivalry and Industrial Strategy>)이며, 이외에도 1981년 논문 <잠재적진입 하에서 관세를 통한 외국 독점이윤 탈취>(<Tariffs and the Extraction of Foreign Monopoly Rents under Potential Entry>), 1985년 논문 <수출 보조금과 국제시장 점유율 경쟁>(<Export Subsidies and International Market Share Rivalry>) 등을 통해 무역정책의 전략적 함의를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 엘하난 헬프먼(Eelhanan Helpman) · 진 그로스먼(Gene Grossman) 등도 무역이론과 산업조직론 · 시장구조 등을 결합하여, 비교우위에 입각한 전통 무역이론이 말하지 못하는 현실을 설명했습니다.

    ▶ 1980년대 미국 무역정책 방향을 둘러싼 경제학자들 간의 논쟁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전략적 무역이론을 만들어나간 경제학자들이 보호주의를 옹호한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들은 시장구조가 과점인 경우 혹은 불완전경쟁시장인 경우에 외국 생산자의 이윤을 희생시켜 국내 생산자의 이윤을 높일 수 있다는 '이론적 가능성(theoretical possibility)을 설명했을 뿐이지, 전략적 무역이론을 정책으로 구현할 때에는 현실 속 다양한 요인을 고려하거나 소비자후생도 평가해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언론 · 정치인 · 정책기획가 그리고 몇몇 경제학자들은 전략적 무역이론을 보호주의 및 산업정책 필요성을 정당화하는 논거로 이용했습니다. 새로운 이론을 인용하여 "하이테크 산업에서 미국 기업이 일본 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나갔고, 이에 따라 보호주의 압력과 산업정책 입안 요구가 증대되었습니다.

     전략적 무역이론을 발전시킨 경제학자들은 보호주의 및 광범위한 산업정책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이에 따라, 1980년대 미국 무역정책 방향을 둘러싸고 대중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사들과 주류 경제학자들 간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게 됩니다. 



    ※ 1980년대 초중반, 미국 내 국제무역정책을 둘러싼 논쟁이 만들어낸 결과물


    경제학자들 간의 논쟁을 거쳐 나온 결과물이 '1985년 플라자합의' · '1988년 종합무역법 슈퍼301조 조항' · '1995년 WTO 창설' 입니다. 이러한 세 가지 결과물은 1980년대 미국이 처한 무역환경과 처방을 둘러싼 서로 다른 생각들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앞으로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시리즈를 통해, 1980년대 초중반 무역정책을 두고 어떠한 논쟁이 오고 갔으며, 어떻게 플라자합의 · 슈퍼301조 · WTO 창설 등으로 이어졌는지 알아보도록 합시다.




    ※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시리즈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②] 마틴 펠드스타인,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은 국가경쟁력 상실이 아니라 재정적자 증가이다"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③] 외국 기업에게 한번 시장을 내주면 되찾을 수 없다 - 생산의 학습효과가 작동하는 동태적 비교우위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④] 전략적 무역정책 - 관세와 보조금으로 자국 및 외국 기업의 선택을 변경시켜, 자국기업의 초과이윤을 증가시킬 수 있다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⑤] 닫혀있는 일본시장을 확실히 개방시키자 - Results rather than Rules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⑥] 공정무역을 달성하기 위해 경기장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한다 - 미일 반도체 분쟁과 전략적 무역 정책 논쟁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⑦] '공격적 일방주의' 무역정책 -다자주의 세계무역시스템을 무시한채, 미국이 판단하고 미국이 해결한다

    1. to make the international trading system work, all must abide by the rules. All must work to guarantee open markets. Above all else, free trade is, by definition, fair trade. [본문으로]
    2. When domestic markets are closed to the exports of others, it is no longer free trade. When governments subsidize their manufacturers and farmers so that they can dump goods in other markets, it is no longer free trade. When governments permit counterfeiting or copying of American products, it is stealing our future, and it is no longer free trade. When governments assist their exporters in ways that violate international laws, then the playing field is no longer level, and there is no longer free trade. When governments subsidize industries for commercial advantage and underwrite costs, placing an unfair burden on competitors, that is not free trade. [본문으로]
    3. we will take all the action that is necessary to pursue our rights and interests in international commerce under our laws and the GATT to see that other nations live up to their obligations and their trade agreements with us. I believe that if trade is not fair for all, then trade is free in name only. I will not stand by and watch American businesses fail because of unfair trading practices abroad. I will not stand by and watch American workers lose their jobs because other nations do not play by the rules. [본문으로]
    4. [국제무역논쟁 시리즈] 과거 개발도상국이 비난했던 자유무역, 오늘날 선진국이 두려워하다 http://joohyeon.com/263 [본문으로]
    5. 원출처, Public Papers of the President 1985 [본문으로]
    6.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 http://joohyeon.com/264 [본문으로]
    7.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http://joohyeon.com/265 [본문으로]
    8.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①] 1920~30년대 호주 보호무역 - 수입관세를 부과하여 수확체감과 교역조건 악화에서 벗어나자 http://joohyeon.com/268 [본문으로]
    9.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 http://joohyeon.com/269 [본문으로]
    10.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③] 한국은 '어떤 무역체제' 덕분에 경제발전을 이루었나 -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애매모호함 http://joohyeon.com/270 [본문으로]
    11.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 http://joohyeon.com/272 [본문으로]
    12. [국제무역이론 ①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http://joohyeon.com/216 [본문으로]
    13. [국제무역이론 ②] 1세대 국제무역이론 - 헥셔&올린의 보유자원에 따른 무역 http://joohyeon.com/217 [본문으로]
    14.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 http://joohyeon.com/272 [본문으로]
    15. Joan Robinson, 1947, Essays in the Theory of Employment [본문으로]
    16. [국제무역이론 ④] 新무역이론(New Trade Theory) - 상품다양성 이익, 내부 규모의 경제 실현 http://joohyeon.com/219 [본문으로]
    17. [경제성장이론 ⑦] 신성장이론(New Growth Theory) 탄생 배경 http://joohyeon.com/25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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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

    Posted at 2018. 12. 7. 17:28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유치산업보호의 타당성을 '역사적 발전단계'에서 찾을 수 있을까?


    지난글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④] 유치산업보호론 Ⅰ -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대립(?)'을 통해, 애덤 스미스의 자유주의 및 자유무역 사상을 반박하는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애덤 스미스의 '자유주의 사상'(liberalism)[각주:1]은 오늘날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 필수적인 사고방식 입니다. 국가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으며, 이익을 쫓는 개인의 행위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공공의 이익을 불러오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comparative advantage)[각주:2]은 여러 국가가 서로의 상품을 자유롭게 교환하여 전세계적인 후생을 극대화하는 '자유무역'(free trade)을 퍼뜨렸습니다.


    그러나 자유무역론은 "자유무역 및 비교우위론은 이미 제조업에 비교우위를 가진 국가에만 유리한 이론 아니냐"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리카도가 살았던 시대상황[각주:3] · 보호무역을 추구했던 1920-30년대 호주[각주:4] · 수입대체산업화를 추진한 1950-70년대 중남미[각주:5]에서 누차 짚었듯이...)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똑같은 물음을 던지며, "제조업 육성을 위해 일시적으로 유치산업을 보호하자(temporary protection for infant industry)"는 주장으로 애덤 스미스를 정면 공격했습니다. 


    스미스는 개별 국가들이 비교우위 특화 및 분업을 통해 각자 상품을 생산하는지 여부는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은데 반하여, 리스트는 민족경제 발전을 위해 제조업 육성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농업 발전에 성공한 국가는 다음 단계인 제조업 발전을 위해 보호체제가 이로운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리스트의 보호론은 산업발전 단계(stages of development)에 따른 일시적인 조치(temporary)이며, 궁극적으로 제조업 발전 이후에는 자유무역으로 회귀할 필요가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보호체제는 오직 민족의 산업적 육성 목적하에서만 정당화(only for the purpose of the industrial development of the nation) 될 수 있을 뿐입니다. 대외 경쟁을 완전히 배제하면 나태와 무감각이 조장되어 민족에 해만 끼치게 됩니다.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론을 설파한 애덤 스미스 · 데이비드 리카도, 그리고 이에 대항하여 유치산업보호론의 정당성을 주장한 프리드리히 리스트. 이들의 논쟁을 살펴보면 "자유무역이 옳다! vs. 보호무역이 옳다!"와 같은 1차원적 접근 보다는, 좀 더 깊이 있는 물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 그렇다면 '언제' 자유무역 정책을 쓰고, '언제' 보호무역 정책을 써야하나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접근 방식은 무역정책을 집행할 '상황'(circumstances)의 중요성을 일깨워 줍니다. 리스트는 '산업발전 단계(stages of development)'를 상황의 구분으로 제시했으나, 거대한 단계의 구분보다는 좀 더 타당한 상황 구분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제조업 발전 단계에 있는 개발도상국이 유치산업보호 정책을 구사하더라도 항상 올바른 결과를 달성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성숙된 농업을 가진채 제조업 단계로 넘어가는 상황은 유치산업보호 성공의 충분조건이 아닙니다. 


    리스트는 영국 · 프랑스 등의 역사적 사례 분석(historical analysis)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전개했습니다. 


    여러 국가들을 살펴보니, 성숙된 농업과 함께 "제조업 역량을 배양하고 이를 통해 최고도의 문명과 교양, 물질적 복지와 정치력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모든 정신적 ∙ 물질적 특성과 수단을 보유"[각주:6]한 민족이 단지 "이미 더 선진화된 해외 제조업 역량의 경쟁에 의해 진보가 정체"[각주:7]되어 있을 때, 유치산업보호 정책을 구사하면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다는 사례를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리스트의 접근방식은 '편향적 표본선택'(sample selection bias)' 문제가 있으며, '반사실적 검정'(counter-factual test)이 불가능 합니다. 


    쉽게 말해, 리스트는 제조업 육성에 성공한 국가들이 채택했던 정책을 되돌아 봤을 뿐이지, 비슷한 조건에 있는 다른 국가들이 유치산업 정책을 채택했을 때 똑같은 성공을 안겨다줄 수 있는지는 따져보지 않았습니다. 또한, 만약 영국 · 프랑스 등이 다른 정책을 채택했더라면 어떠한 결과가 나왔을지도 검증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유치산업보호가 아닌 자유무역을 했더라도 제조업이 발전할 수 있었다면, "유치산업보호가 제조업 육성을 가져왔다"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현재를 희생하여 제조업을 육성하면 미래의 이익을 얻는다는 걸 아는 국가 · 민족 · 사업가라면, 보호조치가 없더라도 자연스레 이를 수행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리스트는 "어린이나 소년이 힘이 센 사나이와의 결투에서 이기기 어렵거나 단지 저항만 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의 원리로 이미 앞선 외국 제조업과의 경쟁을 견딜 수 없고, 따라서 "'자연스런 사물의 흐름'(the natural course of things)에 따라 국내 제조업이 육성되는 건 전혀 불가능하며 어리석다"[각주:8]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가 말한 바와 같이 "각 개인은 자본이 가장 유리하게 사용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각주:9]합니다. 현재는 경쟁력이 다소 떨어지지만 미래에는 외국보다 낮은 가격에 상품을 제조할 수 있다고 믿는 사업가라면, 현재의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기꺼이 제조업 분야에 투자를 했을 겁니다. 


    리스트는 비교우위론을 정태적(static)으로만 받아들여 "비교우위에 따른 특화는 평생토록 변화하지 않는다"라고 간주했고, 유치산업보호 없이는 평생토록 농업 생산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염려했습니다. 하지만 미래를 내다본 사업가에 의해 국가경제의 생산성 · 부존자원 등이 시간이 흐른 후 바뀐다면, 비교우위도 자연스레 변화하는 '동태적 비교우위'(Dynamic Comparative Advantage) 양상을 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부의 인위적인 개입 및 유치산업 보호는 굳이 필요가 없습니다.


    이는 리스트의 주장에 대응하는 자유주의의 반격으로 볼 수 있으며, 유치산업보호론의 타당성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다른 상황 및 조건이 필요함을 알려줍니다.

        

    ▶ 자유무역과 보호무역 중 무엇이 '중심'을 이루어야 하나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을 둘러싼 대립은 이처럼 학자들 간의 논쟁을 통해 이전보다 정교화된 논점을 도출해내고 있습니다. 


    과거 만연해있던 중상주의 사상에 대항하기 위해 제시된 자유무역사상은, 시간이 흘러 유치산업보호론의 비판을 받게 되었고, 이후 다시 자유주의 논리로 유치산업보호론의 허점을 찌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100% 자유무역이 옳다" 라거나 "100% 보호무역이 옳다" 라는 극단적인 생각은 배제되고, 어떤 상황에서 자유무역 혹은 보호무역 정책을 채택해야 하며 평상시에는 어떠한 정책이 '중심'을 이루어야 하느냐 라는 깊이 있는 물음을 던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유주의 관점으로 유치산업보호론을 평가하면, 특수한 상황 및 조건(specific condition)을 필요로 하는 주장입니다. 따라서 평상시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가 중심인 가운데 '어떤 경우'에는 때때로 정부의 산업정책 및 보호무역정책이 정당화 될 수 있다" 라는 생각을 갖게 만듭니다.


    그럼 도대체 유치산업보호론이 타당할 수 있는 특수한 상황 및 조건이 무엇일까요?


    ▶ 새로운 학자와 새로운 주장의 등장 

     

    •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

    • 1848년 작품 『정치경제학 원리』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이를 처음 제시해준 학자가 바로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입니다. 『자유론』(『On Liberty』) · 『공리주의』(『Utilitarianism』)로 유명한 그 철학자 입니다. 밀은 1848년 작품 『정치경제학 원리』(『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를 통해 뛰어난 통찰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존 스튜어트 밀, '일시적 보호가 정당화 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을 제시


    ● 제10장 잘못된 이론에 근거한 정부개입

    (Of Interferences of Government grounded on Erroneous Theories)


    정치경제학의 단순한 원리로부터 보호관세가 옹호될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그 자체의 본질상 그 나라의 여건에 완벽하게 알맞은 외국의 산업을 도입해서 (특히 신생 발전도상국에서) 토착화하는 동안 일시적으로 부과하는 경우뿐이다.[각주:10]


    생산의 한 분야에서 한 나라에 대한 다른 나라의 우위는 다만 먼저 시작했다는 데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습득된 기술과 경험이 현재 우월하다는 점 말고는 한쪽이 유리할 것도 다른 쪽이 불리할 것도 본원적으로는 전혀 없을 수도 있다. 아직 이러한 기술과 경험을 습득하지 못한 나라지만, 그 분야에 먼저 착수한 나라들보다 다른 측면에서는 그 생산에 더욱 잘 적응할 수도 있다.[각주:11] 


    아울러 레이(Rae)가 적확하게 지적하였듯이 어떤 분야의 생산이든 새로운 여건 아래 시도해보는 것보다 향상을 촉진하는 데 더욱 큰 요인은 없다. 그렇지만 개인들이 스스로 위험부담을 무릅쓰면서, 또는 사실을 말하자면 손해가 분명한데도 새로운 제조방식을 도입해서, 그 방식이 전통적으로 손에 익은 생산자들과 수준이 대등할 정도로 기술자들의 역량이 발전할 때까지 꾸려나가는 부담을 감수하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다


    합당한 시간까지 보호관세가 지속된다면, 그런 실험을 지원하기 위해서 한 나라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 가운데 불편을 가장 줄이는 방법이 때로는 될 수도 있다.[각주:12] 


    다만 그로써 양성되는 산업이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관세 없이도 진행할 수 있으리라고 보장할 수 있는 근거가 충분한 사례에만 국한되어야 한다는 단서가 필수적이다. 또한 국내 생산자들에게는 자기들이 무엇을 달성할 수 있는지를 보여줄 수 있는 공정한 기회에 필요한 기간 이상으로까지 관세가 지속되리라고 기대할 여지를 남겨주면 안될 것이다.[각주:13]


    (...)


    생산비는 언제나 처음에 가장 크기 때문에 실지로는 국내생산이 가장 유리한 경우라도 일정한 기간 동안 금전적으로 손실을 겪는 후가 아니면 이익으로 나타나지 못할 수가 있다. 자기들이 망한 다음에 그 대신 들어오는 투자자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개인투자자들이 그와 같은 손실을 감수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각주:14]


    그래서 나는 신생국에서 일시적 보호관세는 때때로 경제적으로 옹호할 수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 기간이 엄격하게 제한되어야 하고, 종료시한이 가까워질수록 점점 낮아져야 한다는 단서가 붙어야 한다. 그와 같은 일시적 보호는 일종의 특허와 본질이 같을 것이므로 비슷한 조건 아래서 시행되어야 한다.[각주:15] 


    - 존 스튜어트 밀, 박동천 옮김, 『정치경제학 원리 4』, 제5편 제10장, 339-341쪽

    - 영어 원문은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존 스튜어트 밀이 1848년 『정치경제학 원리』(『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를 통해 제시한 논리는 유치산업보호를 바라보는 관점을 완전히 새로 정립시켰습니다. 위에 인용한 구절은 유치산업보호를 주제로 한 경제학 논문들이 오늘날에도 인용하고 있습니다. 


    밀은 두 쪽 가량의 짧은 문단을 통해 '일시적 보호가 정당화 될 수 있는 유일한 조건'(The only case in which protecting duties can be defensible)을 논리적으로 제시했습니다. 이것들을 하나하나 살펴봅시다.


    ① 한 나라에 대한 다른 나라의 우위는 다만 먼저 시작했다는 데에 기인


    19세기 당시 영국이 제조업에 비교우위를 가지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요? 영국 민족이 태생적으로 물려받은 기술 · 기질 · 지리적위치 등이 다른 민족에 비해 제조업 생산에 유리해서 일까요?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그저 산업혁명을 가장 먼저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존 스튜어트 밀의 통찰처럼 (부존자원이 아닌 생산성에 의해 결정되는) 비교우위는 '역사적 우연성'(historical accident)이 먼저 시작하게끔 만들어주어서 획득하게 된 경우가 대부분 입니다.  


    그럼 먼저 시작했다는 것이 비교우위 결정에 있어 왜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일까요?


    ② 시도해보는 것보다 향상을 촉진하는 데 더욱 큰 요인은 없다


    공부를 잘하는 방법은 공부를 많이 하기 이며 다른 왕도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생산기술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생산경험 축적 입니다. 상품을 처음 제조할때는 미숙한 점이 많아 불량도 생기고 시간도 오래걸리지만, 점점 경험을 축적해나가면 문제를 개선할 수 있습니다. 


    즉, 밀의 발언처럼 "시도해보는 것보다 향상을 촉진하는 데 더욱 큰 요인은 없"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통한 학습을 거치면서 생산 경험을 쌓아가면(cumulative learning experience) 더 낮은 비용으로 상품을 제조할 수 있습니다. 


    남들보다 먼저 시작한 국가·민족이 비교우위 결정에 유리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단지 먼저 시작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나라보다 많은 경험을 쌓게 되었고, 그 결과 낮은 비용으로 값싼 상품을 제조할 수 있게 되어 비교우위를 획득하게 된겁니다.


    (주 : 무역을 만들어내는 것은 '서로 다른 상대가격'[각주:16]이며, 비교우위란 높은 기술수준[각주:17] · 풍부한 부존자원[각주:18] 덕분에 '상대적으로 값싼 상품을 생산하는 능력'을 뜻한다는 것을 기억)


    존 스튜어트 밀은 '단지 먼저 시작하여 경험을 축적' 했다는 이유만으로도 비교우위가 형성될 수 있다는 통찰을 제시하며 국제무역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혔습니다. 


    ③ 아직 이러한 기술과 경험을 습득하지 못한 나라지만, 그 분야에 먼저 착수한 나라들보다 다른 측면에서는 그 생산에 더욱 잘 적응할 수도 있다


    그런데... 어떠한 나라가 '역사적 우연성' 덕분에 먼저 생산을 시작하고 이후 '학습과 경험'을 통해 비교우위를 가지게 되는 원리는 문제를 초래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다른 나라가 먼저 생산을 시작했더라면, 현시점에서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는 나라보다 더 우월한 생산능력을 가진채 더 낮은 가격으로 상품을 공급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잠재적인 비교우위는 뒤늦게 생산한 국가 혹은 아직 생산을 시작하지 못한 국가가 가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현재 보여지고 있는 비교우위 및 무역패턴은 가장 효율적인 결과물이 아닐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잠재적 비교우위를 가진 국가가 국내 산업 · 기업 등을 지원하여서 앞선 외국을 따라잡거나 혹은 생산을 시작하게끔 만들면, 보다 효율적인 무역패턴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자유주의 논리에 따라 문제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뒤처진 국가 및 사업가가 스스로의 능력을 파악하고 있다면, 미래의 이익 달성을 바라보고 현재의 손실을 감수하면서 생산에 착수하지 않을까?" 입니다. 이번글 서두에서 말한바와 같이, 미래 이익을 쫓는 개인이 스스로 판단하여 행위할 것이기 때문에, 정부의 인위적인 개입 및 보호조치는 굳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존 스튜어트 밀의 또 다른 통찰이 후대 경제학자들에게 영향을 줍니다. 무엇인지 한번 살펴봅시다.


    ④ 개인들이 스스로 위험부담을 무릅쓰면서, 또는 사실을 말하자면 손해가 분명한데도 새로운 제조방식을 도입해서, 그 방식이 전통적으로 손에 익은 생산자들과 수준이 대등할 정도로 기술자들의 역량이 발전할 때까지 꾸려나가는 부담을 감수하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다. (...)

    자기들이 망한 다음에 그 대신 들어오는 투자자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개인투자자들이 그와 같은 손실을 감수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개인들이 장기 이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기 손실을 부담하지 않으려고 할 가능성'을 포착했습니다. 자유시장 체제가 작동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국가 및 사업가가 스스로 판단하여 생산에 착수할 겁니다. 문제는 자유시장이 올바르게 작동하지 않을 때 벌어집니다.


    만약 장기이익을 바라본 사업가가 단기 손실을 감수해가며 생산경험을 축적하였는데, 이때 획득한 경험이 같은 나라의 다른 사업가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이럴 경우, 후발 사업가는 단기 손실을 보지 않고 바로 이익을 챙길 수 있으며, 단기 손실을 부담한 선발 사업가에게 돌아가는 이익은 줄어듭니다. 


    이러한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걸 모두가 안다면, 아무도 먼저 사업에 착수하지 않으려 할테고, 결과적으로 그 국가 내에서 생산은 이루어지지 않게 됩니다. 밀의 표현처럼 "자기들이 망한 다음에 그 대신 들어오는 투자자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개인투자자들이 그와 같은 손실을 감수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 입니다. 


    이를 현대 경제학 용어로 표현하면 '외부성의 존재'입니다. (외부성이라는 용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존 스튜어트 밀은 '외부성'(externality)으로 인하여 비효율적인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문제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참고 : 외부성 및 생산의 학습효과가 만들어내는 비교우위 패턴, 그리고 그 결과 초래될지도 모르는 잠재적 비효율성 문제에 대해서는 '[국제무역이론 ③] 외부 규모의 경제 - 특정 산업의 생산이 한 국가에 집중되어야' 참고)


    ⑤ 합당한 시간까지 보호관세가 지속된다면 그런 실험을 지원 (...)

    그래서 나는 신생국에서 일시적 보호관세는 때때로 경제적으로 옹호할 수 있음을 인정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하여 국내 기업 · 산업을 지원하는 유치산업보호론의 필요성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만약 정부가 외국과의 경쟁에 노출되지 않게끔 보호한다면, 개별 기업들은 경쟁에 대한 부담을 덜고 단기 손실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겁니다. 또한 관세부과로 외국 상품가격이 오르게 되면 국내 생산자도 가격을 높게 책정할 수 있습니다. 이는 매출 및 이윤의 증가를 불러와 단기 손실 크기를 줄일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존 스튜어트 밀은 외부성이 존재하는 경우에 한해서 "합당한 시간까지 보호관세가 지속된다면 그런 실험을 지원"할 수 있다고 말하였고, "신생국에서 일시적 보호관세는 때때로 경제적으로 옹호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고도 밝힙니다. 


    ⑥ 다만 그로써 양성되는 산업이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관세 없이도 진행할 수 있으리라고 보장할 수 있는 근거가 충분한 사례에만 국한되어야 한다 (...)

    일시적 보호관세는 그 기간이 엄격하게 제한되어야 하고, 종료시한이 가까워질수록 점점 낮아져야 한다는 단서가 붙어야 한다

     

    그런데 위의 논리를 다르게 보면, 장기 이익이 단기 손실을 초과함에도 불구하고, 외부성의 존재로 인해 개인이 단기 손실을 부담하지 않으려 할때에만, 일시적인 보호조치가 정당화 될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유치산업보호가 때때로 타당할 수 있다는 자신의 주장이 마치 무조건적인 보호무역 · 영구적인 보호체제를 옹호하는 것처럼 비춰질까 염려하여, 밀은 '잠재적 성장 가능성이 있는 유치산업에 대한 일시적 보호'(Temporary Protection) 라는 점을 재차 강조합니다. 


    유치산업보호론은 현재 비교열위에 있는 산업을 외국과의 경쟁에서 살아남도록 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이 아닙니다. 그리고 평생토록 지원하는 정책도 아닙니다. '현재는 경쟁력이 없으냐 정부가 일시적인 지원을 하면 향후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다고 판단되는 산업'을 보호 · 육성하는 정책입니다. 


    결론 : 정치경제학의 단순한 원리로부터 보호관세가 옹호될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그 자체의 본질상 그 나라의 여건에 완벽하게 알맞은 외국의 산업을 도입해서 (특히 신생 발전도상국에서) 토착화하는 동안 일시적으로 부과하는 경우뿐이다.  

    (The only case in which, on mere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protecting duties can be defensible, is when they are imposed temporarily (especially in a young and rising nation) in hopes of naturalizing a foreign industry, in itself perfectly suitable to the circumstances of the country.)


    자, 이제 존 스튜어트 밀이 남긴 첫 문장이 어떠한 함의를 가지고 있는지 완벽하게 체감할 수 있습니다.


    평상시 보호주의 정책은 옳지 않으며 '옹호될 수 있는 유일한 경우'가 있을 뿐입니다. 그 경우란 단지 외국 산업에 비해 늦게 시작한 까닭으로 현재 경쟁력이 없으나, '본질상 그 나라의 여건에 완벽하게 알맞는' 산업이어서 시간이 흐르면 학습된 경험 축적 덕분에 비교우위를 찾을 수 있는 때 입니다. 오직 이때에만 '토착화되는 동안 일시적으로 보호관세를 부과'하는 유치산업보호 정책이 정당화 될 수 있습니다.   


    존 스튜어트 밀의 통찰은 유치산업보호론 논쟁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변화시켰습니다. 


    이제 프리드리히 리스트가 수행했던 역사적 사례분석에 의존하지 않은채 유치산업 보호가 정당화 될 수 있는 명확한 조건을 설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자유주의 이념을 가진 당시 경제학자들도 '특정한 경우에는 자유무역 원리에서 이탈하여 수입관세를 이용한 일시적 보호가 필요함'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 로버트 발드윈, "무차별적 관세보호 보다는 직접적인 지원이 낫다"


    시간이 흘러 존 스튜어트 밀의 주장에 의문을 품는 다른 학자가 등장했습니다. 이 학자는 "외부성 존재는 효율적 생산을 위해 정부가 개입할 필요를 제기해주지만, 과연 관세 보호 의도했던 결과를 달성할 수 있을까?"(What I will question is the effectiveness of tariffs in accomplishing this result.)라는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 로버트 발드윈 (Robert E. Baldwin), 1924~2011

    • 1969년 논문 <유치산업 관세보호에 反하는 경우>


    그 인물이 바로 로버트 발드윈(Robert Baldwin)이며, 해당 주장이 실린 논문은 1969년 <유치산업 관세보호에 反하는 경우>(<the Case Against Infant-Industry Tariff Protection>) 입니다.  


    존 스튜어트 밀의 어깨 위에 올라선 로버트 발드윈은 외부성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효율적인 자원 이용이 불가능 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가 문제 삼은 것은 정부개입의 수단(means of government intervention) 이었습니다. 


    발드윈이 보기에 산업 내 전체 기업들에 무차별적으로 적용되는 보호관세는 외부성 제거의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기 때문에, 외부성 문제를 겪고 있는 개별 기업만 선별적으로 직접적인 지원을 해야 할 필요(much more direct and selective policy measure than non-discriminatory import duties)가 있었습니.


    발드윈은 크게 2가지 경우를 제시하며 각각의 사례에서 보호관세의 무용성(ineffectiveness of protective duty) 및 직접적인 지원(direct subsidy)의 필요성을 설파합니다. 이번 파트를 통해 그의 주장과 논리를 알아봅시다.


    ● 개별 기업이 창출해낸 지식이 다른 기업에게 대가 없이 전파되는 경우


    첫번째는 '개별 기업이 창출해낸 지식이 다른 기업에게 대가 없이 전파되는 경우' 입니다. 


    로버트 발드윈은 "단순히 초기 생산비용이 외국보다 높다는 이유만으로 국내 기업을 보호해서는 안되며, 유치산업보호를 정당화 하기 위해서는 '학습 프로세스와 연결된 기술적 외부성'(technological externalities frequently associated with the learning process)이 존재해야 한다." 라고 진단합니다.


    왜냐하면 생산의 학습효과를 통해 미래에 외국기업보다 더 낮은 가격에 상품을 판매할 수 있다는 걸 국내 생산자가 알고 있더라도 기술적 외부성이 존재하면 아예 시장에 진입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은 생산 방식을 발견하기 위해 비용을 투자하는 사업가가 직면하는 문제는 잠재적인 경쟁자가 정보를 거리낌없이 쓸 가능성", 즉 기술적 외부성 이며, 이로인해 "개별 사업가가 지식 획득을 위한 투자를 꺼리게" 됩니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아무도 기술진보를 위한 투자를 하지 않으려 할 것이고, 그 결과 그 나라의 지식수준은 사회적 최적 수준에 미달하게 됩니다. 


    이는 앞서 소개한 존 스튜어트 밀의 논리와 동일합니다. 그리고 밀은 보호 관세 부과로 외부성이 초래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만약 외국과의 경쟁에 노출되지 않게끔 보호한다면, 지식획득에 수반되는 초기 비용투자 부담이 덜어지게 되어 단기 손실에 대한 두려움을 줄일 수 있습니다. 또한 수입관세 부과 이후 올라간 상품가격으로 이윤증대를 누리면서 단기 손실을 메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로버트 발드윈이 보기엔 국내 전체 기업에게 적용되는 무차별적인 관세(non-discriminatory import duty)는 외부성으로부터 초래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국내의 잠재적인 경쟁자가 나의 지식을 무단으로 사용하는 행위'가 수입관세 부과 이후로도 교정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발드윈은 기술을 무단으로 차용하는 국내 잠재적 경쟁자가 상품가격 인상 덕분에 더 높은 이윤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시장에 진입하기 시작하면, 선도적인 기업의 이윤은 국내 경쟁 증대로 인해 줄어들고 결국 지식투자 비용을 회수하지 못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심한 경우 기술개발에 투자한 기업들은 모두 퇴출되고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기업만 생존할 수도 있습니다.


    로버트 발드윈이 진단한 사회적 비효율성이 초래되는 근본원인은 '지식투자로 인한 단기 손실' 그 자체가 아니라 '한 기업이 전유할 수 없는 지식으로 인해 초래되는 사회적 비용과 사적 비용의 차이'(knowledge is not appropriable by individual firm) 였습니다. 


    단기 손실을 보전해주려는 보호관세는 지식에 투자한 기업의 단기 손실도 줄어주지만, 지식에 투자하지 않는 잠재적 진입자의 이윤도 증가시켜 줍니다. 따라서, 발드윈은 든 기업에게 적용되는 무차별적 보호관세가 아니라 지식을 발견한 기업에게만 주어지는 보조금(a subsidy to the initial entrants into the industry for discovering better productive techniques)이 필요하다 라고 강하게 주장합니다. 


    ● 금융시장 정보 불완전성으로 자금조달이 힘든 경우


    두번째는 '금융시장 정보 불완전성으로 자금조달이 힘든 경우' 입니다.


    국내에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산업으로 국내 기업 한 곳이 신규진입 하는 상황을 가정해봅시다. 이 기업은 기술개발 및 기반시설 건설을 위해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borrow funds from investors) 받아야 합니다.


    문제는 국내에서 이 산업에 대해 아는 투자자가 없다는 겁니다. 투자자들은 기업가치를 올바르게 측정할 수 없기 때문에 더 높은 이자를 요구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규 진입기업은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스스로 시장조사(market study)를 하여 투자자에게 상세한 정보(detailed market analysis)를 제공해줄 유인이 있습니다.


    여기서 첫번째 경우와 유사한 문제가 초래됩니다. 


    만약 시장조사를 하기 위한 비용이 발생하는 데 반하여, 이를 통해 얻게 된 정보를 다른 기업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면, 어느 기업도 새로운 산업에 먼저 진입하지 않을 겁니다. 내가 아닌 누군가가 먼저 진입하여 시장조사를 하기만을 바라겠죠. 그것을 못 견디고 먼저 진입하는 기업은 상대적으로 높은 이자를 지불하면서 자금을 조달하거나 아예 빌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금융시장 정보 불완전성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유익한 산업이 수립되지 않는 경우가 초래되고 맙니다.(under these circumstances the firm will not finance the cost of the study, and a socially beneficial industry will not be established.)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 역시 무차별적인 보호 관세가 아니라 지식획득을 지원하는 직접적인 보조금(direct subsidies to pay for the costs of knowledge acquisition) 입니다.


    ● 유치산업보호론을 둘러싼 논쟁에 로버트 발드윈이 기여한 것


    번 파트에서 소개한 로버트 발드윈의 1969년 논문은 "유치산업보호를 위해 수입관세 부과 등으로 보호장벽을 높여야 한다"라는 주장을 반박하는 대표적인 참고문헌 입니다.


    로버트 발드윈의 첫번째 공헌은 '현재에는 생산비용이 높지만 학습효과에 의해 잠재적 비교우위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유치산업 보호조치가 항상 정당화 되는 것은 아니다'는 것을 현대 경제학 프레임 내에서 논리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입니다.


    지식획득 과정에서 발생하는 외부성이 없다면, 기업은 단기 손실과 장기 이익을 스스로 비교 평가하여 시장에 진입할 겁니다. 또한 금융시장이 완벽하게 작동한다면, 투자자들은 장기 이익을 내다보고 자금을 빌려줄 것이고, 기업은 단기 손실이 주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유치산업 보호조치가 정당화 되기 위해서는 '지식획득이 초래하는 외부성'(technological externality) 및 '금융시장 불완전성'(capital market imperfection) 이라는 조건이 필요합니다.  


    로버트 발드윈의 두번째 공헌은 '비록 지식획득 외부성 및 금융시장 불완전성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필요한 산업을 보유하지 못하더라도, 수입장벽을 높이는 보호조치가 타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일깨워 주었다는 점입니다.


    수입관세 부과는 외부성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채, 지식투자에 기여하지 않는 잠재적 진입자들의 시장진입만 되려 부추길 수 있습니다. 또한 금융시장 정보 부재로 인한 문제는 무역보호 조치로 해소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유치산업보호를 위한 무역정책을 구사할 생각보다는 구체적인 시장실패를 직접 해결하려는 방안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이러한 사고를 기반으로 오늘날 주류 경제학자들은 '특정한 경우에 자유무역이 사회적으로 최적의 결과를 도출해내지 못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수입관세 부과 등 보호무역 보다는 시장실패를 초래하는 문제를 직접적으로 시정하는 구체적인 정부개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보호무역 정책은 최선이 아닌 차선의 정책(Second-Best)입니다.




    ※ 유치산업보호론 논쟁을 통해 보다 정교화된 자유무역 사상


    애덤 스미스의 1776년 작품 『국부론』을 통해 세상에 나온 '자유무역 사상'은 이렇게 여러 학자들 간의 논쟁, 특히 유치산업보호 정책의 타당성을 둘러싼 논쟁을 거치면서 보다 정교화 되어 왔습니다. 


    지금까지의 [국제무역논쟁] 시리즈와 이번글을 통해 알아본 '자유무역 사상의 진화과정'을 짧게나마 한번 정리해봅시다.


    '무역수지 흑자'를 중요시 했던 중상주의 시대[각주:19]

    - 토마스 먼, 『잉글랜드의 재보와 무역』, 1664년


    "우호적인 무역수지가 필요하다"


    '값싼 외국 상품 수입' 높게 평가하는 자유무역 사상의 등장[각주:20]

    - 애덤 스미스,  『국부론』, 1776년 


    - "거의 모든 무역규제의 근거가 되고 있는 무역차액 학설보다 더 불합리한 것은 없다", "금은을 살 수단[예: 포도주]을 가진 나라는 결코 금은의 부족을 겪지 않을 것이다.", "무역의 자유에 의해 우리는 우리 상품을 유통시키거나 다른 용도에 사용할 금은을 언제나 공급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마찬가지로 안심하고 믿어도 된다.


    - "나는 이익이나 이득이라는 것은 금은량의 증가가 아니라 그 나라의 토지 · 노동의 연간생산물의 교환가치 증가나 주민들의 연간소득 증대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한 나라가 이러한 우위를 가지고 다른 나라가 그것을 가지지 못하는 한, 후자는 스스로 생각하기보다 전자로부터 구입하는 것이 항상 더 유리하다."


    '서로 다른 상대가격이 무역을 만들어낸다'는 비교우위론의 등장[각주:21]원리[각주:22]

    - 데이비드 리카도, 『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리』, 1817년


    - "그 나라가 식량의 수입을 자유롭게 허용한다면, 이윤율의 큰 하락 없이, 또는 지대의 큰 증가 없이 자본의 자재를 크게 축적할 수 있을 것이다."


    - "한 나라에서 상품의 상대 가치를 규제하는 것과 동일한 규칙이 둘 또는 그 이상의 나라들 사이에서 교환되는 상품의 상대 가치를 규제하지는 않는다."


    - "포르투갈이 수입하는 상품이 잉글랜드에서보다 포르투갈에서 더 적은 노동으로 생산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교환은 일어날 것이다. (...) 왜냐하면 포르투갈은, 그 자본의 일부를 포도 재배에서 직물 제조로 전환시켜서 생산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직물을, 잉글랜드에서 획득하게 해주는 포도주 생산에 그 자본을 투입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 "직물이 포르투갈에 수입되려면, 그것을 수출하는 나라에서 치르는 값보다 포르투갈에서 더 많은 금을 받고 팔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포도주가 [포르투갈에서] 잉글랜드로 수입되려면, 그것이 포르투갈에서 치르는 값보다 잉글랜드에서 더 많이 받고 팔릴 수 있어야 한다."


    '비교우위론은 수확체증에 특화하는 영국에게만 이롭다'반박이 등장[각주:23]

    - 제임스 브릭던, <호주 관세와 생활수준>, 1925년 논문


    - "경제이론은 합리적추론의 기반이지만 일반적인 지침의 역할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엄밀하면서 비교할 수 있는 결과물은 항상 시간 및 공간의 상황에 달려있다. 고전 국제무역이론은 영국의 상황으로부터 도출된 것이다."


    - "이러한 시각에서 보았을 때, 자유무역이 영국에게 이로웠던 것과 마찬가지로, 호주에게 이로운 것은 보호무역 정책이다."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개발도상국을 선진국에 종속시킨다'주장이 등장[각주:24]

    - 라울 프레비쉬, 『라틴 아메리카의 경제발전과 주요 문제들』, 1950년


    - "종속은 특정한 국가집단이 다른 경제의 발전과 확산에 의해 제약받는 경제를 가지고 있는 상황", "제조업을 통해 산업화에 성공한 지배국가는 팽창하고 스스로의 발전에 자극을 가할 수 있는 반면, 1차상품 수출에 의존하는 종속국가는 이러한 팽창의 반사로써밖에 발전할 수 없을 때 종속의 형태"


    - "비교우위에 입각한 무역을 하면, 기술진보의 혜택은 중심부-주변부 간에 공평하게 배분되지 않는다"


    '대외지향 무역체제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한국의 경제발전[각주:25]


    - "정부는 증산과 더불어 수출을 대지표로 삼았읍니다. 공업원료의 수입의존도가 높은 나라에서 수출은 경제의 생명입니다. 2차대전직후, 영국의 「처어칠」수상의 『수출 아니면 죽음』이란 호소가 결코 과장이 아닐 것입니다."


    - "80년대에 가서 우리가 100억 달러 수출, 중화학 공업의 육성 등등 이러한 목표 달성을 위해서 ... 정부는 지금부터 철강,조선,기계,석유화학 등 중화학 공업 육성에 박차를 가해서 이 분야의 제품 수출을 목적으로 강화하려고 추진하고 있읍니다."


    '민족경제 발전을 위해 인위적인 제조업 육성이 필요하다'유치산업보호론 등장[각주:26]

    - 프리드리히 리스트,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1841년


    - "필자가 영국인이었다면, 애덤 스미스 이론의 근본 원리를 의문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 오늘도 이 글을 가지고 나설 용기를 준 것은 주로 독일의 이익이다."


    - "투박한 농사에서는 정신적 활력 · 신체적 둔함, 옛 개념 ·관습, ·습관 · 행위 방식에 대한 고수, 교양 · 복지 · 그리고 자유의 부족이 지배한다. 반면에 정신적, 물질적 재화의 끊임없는 증식을 향한 노력, 경쟁심, 자유의 정신은 제조업 국가 및 상업 국가의 특징이 된다."


    - "상공업 패권을 쥔 (영국의) 공장들은 다른 민족들의 신생 혹은 반밖에 장성하지 못한 공장들보다 앞서는 천 가지 장점을 가진다. (…) 그러한 세력에 맞서 자유경쟁을 하면서 사물의 자연스런 흐름에 대해 희망을 품는 것이 어리석다는 점을 확신하게 된다.


    - "부와 생산 역량의 최고도에 도달한 이후, 자유무역과 자유경쟁의 원리로 점진적으로 회귀하여, 농부들 제조업자들 상인들을 게으름에 빠지지 않게하고 이들이 달성한 우위를 유지하도록 자극을 주어야 한다."


    ▶ '유치산업보호 정책이 정당화 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을 제시'자유주의[각주:27]

    - 존 스튜어트 밀, 『정치경제학 원리』, 1848년


    - "보호관세가 옹호될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그 자체의 본질상 그 나라의 여건에 완벽하게 알맞은 외국의 산업을 도입해서 (특히 신생 발전도상국에서) 토착화하는 동안 일시적으로 부과하는 경우뿐이다."


    - "그래서 나는 신생국에서 일시적 보호관세는 때때로 경제적으로 옹호할 수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 기간이 엄격하게 제한되어야 하고, 종료시한이 가까워질수록 점점 낮아져야 한다는 단서가 붙어야 한다."


    '보호무역 보다는 시장실패를 교정하는 정부개입이 필요하다'현대경제학의 반격[각주:28]

    - 로버트 발드윈, <유치산업 관세보호에 反하는 경우>, 1969년 논문


    - "생산 효율성을 달성하기 위해 정부의 시장개입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묻고 싶은 것은 관세부과를 통해 이를 달성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 "수입관세 부과를 통한 일시적 보호조치는 효율적 생산을 달성케 할 수 없다.", "수입관세는 외부성의 문제를 교정할 수 없다."


    - "필요한 것은 지식획득을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보조금이다.", "유치산업이 직면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차별적인 보호관세가 아니라 보다 직접적이고 선별적인 정책이다."




    ※ 한국에서 유치산업보호 정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


    이제 우리는 유치산업 보호조치가 성공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조건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① 육성하고 싶은 국내산업 중 아무거나 보호한다고 해서 성공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② 현재 비교열위에 처한 이유는 단지 외국에 비해 늦게 시작했기 때문이며, 

     생산의 학습효과(learning by doing)를 통해 향후 더 낮은 가격에 상품을 생산할 잠재적 비교우위가 있으며, 

     장기 이익을 내다보는 국내 생산자가 외부성 및 금융시장 불완전성 때문에 생산에 착수하지 못하고 있고, 

     시장실패를 직접적으로 교정하는 정책 대신 보호무역 조치가 더 확실한 효과를 불러올 수 있을 때, 

    ⑥ 유치산업보호 정책은 정당화되고 또 의도했던 결과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경제발전 과정에서 한국이 유치산업보호 정책을 통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위의 조건들이 충족됐던 덕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난글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③] 한국은 '어떤 무역체제' 덕분에 경제발전을 이루었나 -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애매모호함'에서 소개했듯이, 한국정부는 기계 · 조선 · 철강 · 화학 · 전자 등의 중화학 업종 육성하기 위하여, 수입장벽을 세워 외국과의 경쟁에 노출시키지 않았고 보조금을 통한 직접 지원도 시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중화학 공업화로 가는 과정은 험난했습니다. 당시 한국정부가 제철소 · 조선소 등을 건립하려고 했을 때, 외국 정부 및 학자들은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지 않는 산업을 왜 키우려고 하느냐. 현재의 비교우위를 가진 분야에 충실해라" 라는 충고를 했습니다.


    (지난글에서도 소개했던) 아래의 기사가 당시 정부가 마주했던 어려움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번 다시 읽어봅시다.


    <AID가 본 한국공업건설 (上 제철소의 경우)>

    (주 : AID란 원조를 지원해주는 미국국제개발처(USAID)를 의미한다)


    경제5개년계획을 특징지으고 있는 제철소와 비료공장을 건설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거니와 그러기에 기자는 워싱턴에 닿자마자 AID가 제철소와 비료공장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타진해보기 위하여 AID의 문을 두드렸다. (...)


    기자가 AID 당국자들과 만나서 얻은 결론은 제철소는 사무적으로는 절대로 무망한 것으로 느껴졌으나 정치적으로 배려를 한다고 하면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며, 비료공장은 AID가 주장하는 바 과인산질소 배합비료 공장을 세우는 데 한국측이 동의한다고 하면 될 수 있는 것이지만 이를 거부하교 요소 25만톤 용량을 만든다는 종래의 주장을 견지한다면 이 역시 AID에서 돈을 꾸지 못할 것이라 것이다.


    AID는 대체로 한국에서의 제철소 건설에 대해서 비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① 한국은 철광석과 코크스 탄 6천 칼로리 이상나는 역청회 등 제철에 필요한 자연자원이 극히 빈곤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50% 이상의 철분을 가지고 있는 철광석의 매장량은 지난번 탐광에 의해서도 겨우 5백만톤에 불과한 것으로 추산이 나왔으니, 그처럼 빈약한 자원을 상대로해서 연간 25만톤의 제철소를 만든다는 것은 무모한 것이라는 것이다. (...)


    ② 그러니까 한국서 제철을 하자면 외국에서 철광석과 석탄을 사오지 않을 수 없는데 철광석을 100만톤, 석탄을 150만톤을 사오자면 적어도 3,500만불의 외화를 매년 지출하여야만 할 것이니 4,200만불의 수출실적 밖에는 못 가지 한국의 외화사정 아래서는 이 역시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된다는 것이다. 물론 철광석과 석탄도 연불 등 상업차관방식으로 조달할 수 있기도 하나 AID 규정은 미국 이외의 나라에서 차관을 받는다는지 원조를 받는다는 것은 허용하지 않기로 되어있으므로 상업차관에 의한 원료 공급도 안된다는 것이다. (...)


    ③ 설령 한국에 제철소를 지어준다고 해도 철의 시장경쟁은 지금도 치열하지만 장차 더욱 더 백열전을 전개할 것이니 과연 한국이 이웃나라인 일본과의 경쟁에서나마 견딜 수 있겠느냐 하는데는 의문이 짙다는 것이다. 일본도 비록 철광석도 석탄도 사다가 쇠를 녹이고 있다고 하나 경영기술에 있어서나 작업기술에 있어서나 70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을 지니고 있는 일본과 같은 생산비로서 제철을 한다고 하는 것은 거의 기적에 속할 것이라는 것이다. (...)


    ⑤ 그러니까 한국에서 제련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철을 외국에서 수입해다 쓰는 편이 더 이롭다고 그들은 생각하는 것이다. 제철소를 만들려면 적어도 1억 5천만불을 들여야 할터이니 그 돈을 다른 산업들 한국서 능히 감당할 수 있는 것들을 세우는데 쓰는 것이 더 현명한 것이라고 결론 짓고 있는 것 같다. 


    - 이동욱, 1962년 10월 20일, 동아일보 칼럼/논단

    - 네이버 옛날신문 라이브러리에서 발췌


    현재의 포항 제철소는 1965년 한일협정의 산물인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건설되어 1973년 가동을 시작 하였는데, 박정희 군사정부는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당시부터 종합제철소 건립을 꿈꾸었습니다. 


    꿈과 달리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미국국제개발처(USAID)는 '한국에서 제련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철을 외국에서 수입해다 쓰는 편이 더 이롭다'라는 견해를 내비쳤습니다. 이들의 주된 논거는 '한국의 제철소 건설 시도가 비교우위 원리에 벗어난다' 입니다. 


    ① 제철소는 원자재인 철광석과 석탄 등을 제련하여서 철판을 만드는 곳인데, 한국은 원자재를 풍부하게 가진 국가가 아닙니다. 헥셔-올린의 무역이론[각주:29]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풍부한 자원(relative abundant resource)을 가진 국가가 그 자원이 집약된 산업(resource-intensive)에 비교우위를 가지는데, 한국은 이에 해당하지 않았습니다. 


    ② 또한 어찌어지 철판을 생산한다고 해도 과연 일본에 비해 우위를 가질 수 있겠냐는 물음을 제기했습니다. 일본은 70년전부터 제철소를 운영하며 획득한 기술수준으로 낮은 생산비를 유지하는데, 이를 한국이 수년내에 따라잡기 힘들거라는 전망이죠.


    그러나 다들 아시다시피, 오늘날 한국은 세계 1위 제철소로 평가받는 POSCO(구 포항제철)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당시 외국 기관 · 학자들이 충고했던 자유무역 논리를 그대로 따랐더라면 오늘날 한국에 제철소는 없었을 겁니다.


    한국이 유치산업보호 정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을, 한국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비관했던 미국제개발처의 발언에서 역설적으로 찾을 수 있습니다. 


    기사를 통해 드러나듯이, 미국제개발처(USAID)는 '70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을 보유한 일본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겠느냐'는 물음을 던졌습니다. 우리는 이 물음에 의문을 품고 다르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당시 일본의 철강산업 우위는 '역사적 우연성'에 의한 것일지도...


    1960년대 당시 일본이 한국에 비해서 철강산업에 경쟁력을 가지게 된 연유는 선천적으로 제철기술이 뛰어나거나 철광석 등 부존자원이 풍부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저 일본이 한국보다 70년 일찍 철강업을 시작한 역사적 배경 덕분(historical accident) 입니다. 반대로 한국이 일본보다 일찍 제철소를 건립했더라면 1960년대 당시의 비교우위는 한국이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정부가 철강산업을 보호하면서 육성하면서 70년이라는 시간을 따라잡으면, 장기적으로는 일본보다 경쟁력 있는 제철소를 보유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일본을 따라잡는 동안에 한국 제철소는 큰 손실을 보겠지만, 정부보조를 받아서 버틴다면 언젠가는 우위를 누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지금 제철산업에 비교우위가 있느냐"를 따지기 보다는 "향후 제철산업에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느냐"(Dynamic Comparative Advantage)라는 물음을 던져야 마땅합니다. 한국정부는 후자의 물음을 던진 뒤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 외부 규모의 경제


    제철 · 조선 · 자동차 · 전자 산업 등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공장 하나를 짓고 기계설비만 도입하는 걸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철광석 · 기계부품 등을 외국에서 조달해오기 위한 판로가 필요하고, 여러 하청 업체들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이 산업에 맞는 기술을 가진 근로자 집단도 존재해야 합니다. 


    이처럼 '같은 산업에 속한 여러 기업 · 근로자들이 한 곳에 모인 결과'로 집적의 이익을 향유하는 것을 '외부 규모의 경제'(external scale of economy)라 부릅니다. 이들은 노하우공유, 부품 공동구매, 근로자 채용의 용이함 등 덕분에,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평균비용을 감소시킬 수 있습니다.


    외부 규모의 경제 또한 외부성과 동일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만약 제철 산업을 하고 싶은 산업가 한 명이 혼자 공장을 건설한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 사업가가 동시에 산업에 진입하지 않는한 생산과정이 매끄럽게 돌아갈리가 없고, 그 결과 아무도 먼저 사업에 착수하지 않게 됩니다. 


    따라서, 정부가 국영기업을 설립하여 직접 사업에 착수하거나 여러 사업가가 동시에 진입하도록 강제(?)하는 정책이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 미발달된 금융시장


    미발달된 금융시장 또한 정부개입의 필요성을 확인시켜 줍니다. 만약 사업가가 금융시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 받을 수 있다면, 단기 손실에 대한 부담이 덜어집니다. 그러나 당시 한국은 금융시장이 미발달한 상태였고 형성된 자본 크기도 크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정부는 국내자본과 차관 형태로 들여온 외국자본을 선별된 기업에 몰아주는 금융지원 정책[각주:30]을 구사했습니다. 


    이처럼 외부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제철 · 조선 산업의 특징, 부족했던 자본, 금융시장의 미발달 등은 일시적 무역보호체제와 정부의 직접적인 지원에 정당성을 부여했습니다.  




    ※ (보론) 장하준이 주류 경제학자들에게 비판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 첫번째 : 장하준, 2004, 『사다리 걷어차기』
    • 두번째 : 장하준, 2007, 『나쁜 사마리아인들』
    • 세번째 : 서강대 교수진, 2012, 『한국경제를 위한 국제무역 · 금융 현상의 올바른 이해
    • 네번째 : 더글라스 어윈(Douglas Irwin), 2012 번역, 『공격받는 자유무역』


    한국의 중화학공업화는 유치산업보호론을 옹호하는 학자들이 내세우는 성공 스토리 입니다. 유치산업 보호를 통해 경제발전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서 자유무역사상을 비판하는 단골 메뉴로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정부주도 산업정책의 효과를 직접 경험한 한국인들은 유치산업보호 논리에 친숙하며, 특히 대중적으로 유명한 한 학자로 인해 '문제가 있는 자유무역과 이득을 불러오는 보호무역'을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학자는 바로 장하준 입니다.


    장하준은 2004년 『사다리 걷어차기』 · 2007년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을 통해 '선진국의 경제발전은 보호무역 덕분이며, 개발도상국에게 자유무역을 강요하고 있다'는 식의 논지를 반복해서 주장해왔습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수많은 주류 경제학자들은 비판해오고 있습니다. 국제무역 정책 및 역사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긴 더글라스 어윈(Douglas Irwin)은 서평을 통해 장하준 주장의 문제점을 지적[각주:31]하였고, 한국 학자들도 단행본 『한국경제를 위한 국제무역 · 금융 현상의 올바른 이해』를 통해 장하준을 비판하였습니다.


    주류 경제학자들의 주된 비판 요지는 크게 2가지 입니다. 


    첫째, 편향적 표본선택 및 반사실적 검정의 부재


    이는 이번글 서두에서 이야기한, 리스트가 학자들에게 비판받은 지점과 동일합니다. 


    장하준은 오늘날 선진국인 미국 · 독일 등의 역사적 분석(historical analysis)을 통해, 과거에 이들이 보호무역 정책을 채택했고 이것이 경제발전으로 이어졌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과거에 이들과 같은 조건에 있었던 국가들이 보호무역을 구사했을 때, 어떤 결과가 오늘날 나타나고 있는지는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이른바 편향적 표본선택(sample selection bias) 문제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미국 · 독일 등이 보호무역이 아닌 정책을 구사했더라면 오늘날 어떤 모습을 띄고 있을지, 반사실적 검정(counterfactual test)을 실시하지 않았습니다. (장하준은 이들이 과거에 보호무역을 실시하였다고 보는데) 만약 이들이 과거에 자유무역을 실시하였고 그 결과 오늘날 더 높은 경제수준을 누릴 수 있었더라면, 되려 과거의 보호무역은 악영향만 끼친 꼴이 됩니다.


    둘째, '시장중심 자유무역 체제가 중심 vs. 국가주도 보호무역 체제가 중심' 구분의 부재

     

    자유무역론을 믿는 주류 경제학자라고 해서 100% 자유무역 정책을 지지하는 건 아닙니다. 이번글에서 누차 설명했듯이, 특정한 경우에는 시장실패를 교정하는 정부개입이 정당화 되고, 더 나아가 유치산업을 위한 일시적 보호가 필요할수도 있다고 믿습니다. 단, 어디까지나 중심이 되는 것은 자유무역 이며, 보호는 특정한 경우에 일시적으로 시행되어야 할 뿐입니다.


    하지만 장하준은 시대적 상황 · 국가의 경제수준에 상관없이 어느때든 보호주의 정책이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과거 한국에서 유치산업 보호 정책이 좋은 결과를 낳았다고 해서, 오늘날 한국에도 똑같은 결과를 만들어낼 거라고 믿을 수는 없는데 말이죠


    앞으로 쓰고 싶은 [실증분석을 위한 계량] 시리즈를 통해 장하준 주장이 가지는 문제를 좀 더 본격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1980년대 미국, 국내산업 보호를 위한 적극적 무역정책 필요성이 제기되다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시리즈를 통해 봐왔듯이, 유치산업보호론 혹은 보호무역주의는 주로 개발도상국 내에서 자유무역론에 대항하여 제기된 사상 입니다.   


    그런데... 1980년대 미국 내에서, 외국과의 경쟁에서 국내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적극적 무역정책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외국은 주로 '일본'을 의미했으며, 보호하기 위한 국내산업은 주로 철강 · 자동차 등 '제조업'과 반도체 · 전자 등 '최첨단 하이테크 산업'을 뜻했습니다. 


    이는 오늘날 트럼프행정부가 '중국'으로부터 '제조업 및 IT 지식재산권'을 지키기 위해 보호주의를 채택하려는 것과 똑같은 양상입니다.


    1980년대 미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리고 오늘날 미국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길래,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는 것일까요? 


    앞으로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과 [국제무역논쟁 10's 미국]을 통해, 미국 및 선진국 내의 무역논쟁을 알아봅시다.


    다음글 : [국제무역논쟁 80's 미국 ①]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보호주의 압력이 거세지다 (New Protectionism)


    1.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 http://joohyeon.com/264 [본문으로]
    2.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http://joohyeon.com/265 [본문으로]
    3.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http://joohyeon.com/265 [본문으로]
    4.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①] 1920~30년대 호주 보호무역 - 수입관세를 부과하여 수확체감과 교역조건 악화에서 벗어나자 http://joohyeon.com/268 [본문으로]
    5.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 http://joohyeon.com/269 [본문으로]
    6. 리스트,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제15장 민족 정체성과 민족의 경제학, 259쪽 [본문으로]
    7. 리스트,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제15장 민족 정체성과 민족의 경제학, 259쪽 [본문으로]
    8. 프리드리히 리스트,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제24장 제조업 역량과 항구성 및 작업 계속의 원리, 412-413쪽 [본문으로]
    9. 애덤 스미스, 국부론, 제4편 제2장, 548쪽 [본문으로]
    10. (The only case in which, on mere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protecting duties can be defensible, is when they are imposed temporarily (especially in a young and rising nation) in hopes of naturalizing a foreign industry, in itself perfectly suitable to the circumstances of the country.) [본문으로]
    11. (The superiority of one country over another in a branch of production, often arises only from having begun it sooner. There may be no inherent advantage on one part, or disadvantage on the other, but only a present superiority of acquired skill and experience. A country which has this skill and experience yet to acquire, may in other respects be better adapted to the production than those which were earlier in the field:) [본문으로]
    12. (and besides, it is a just remark of Mr. Rae, that nothing has a greater tendency to promote improvements in any branch of production, than its trial under a new set of conditions. But it cannot be expected that individuals should, at their own risk, or rather to their certain loss, introduce a new manufacture, and bear the burthen of carrying it on until the producers have been educated up to the level of those with whom the processes are traditional. A protecting duty, continued for a reasonable time, might sometimes be the least inconvenient mode in which the nation can tax itself for the support of such an experiment.) [본문으로]
    13. (But it is essential that the protection should be confined to cases in which there is good ground of assurance that the industry which it fosters will after a time be able to dispense with it; nor should the domestic producers ever be allowed to expect that it will be continued to them beyond the time necessary for a fair trial of what they are capable of accomplishing.) [본문으로]
    14. (The expenses of production being always greatest at first, it may happen that the home production, though really the most advantageous, may not become so until after a certain duration of pecuniary loss, which it is not to be expected that private speculators should incur in order that their successors may be benefited by their ruin.) [본문으로]
    15. (I have therefore conceded that in a new country a temporary protecting duty may sometimes be economically defensible; on condition, however, that it be strictly limited in point of time, and provision be made that during the latter part of its existence it be on a gradually decreasing scale. Such temporary protection is of the same nature as a patent, and should be governed by similar conditions.) [본문으로]
    16.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④] 교역조건의 중요성 - 무역을 하는 이유 · 무역의 이익 발생 http://joohyeon.com/267 [본문으로]
    17. [국제무역이론 ① 개정판]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http://joohyeon.com/216 [본문으로]
    18. [국제무역이론 ②] 1세대 국제무역이론 - 헥셔&올린의 보유자원에 따른 무역 http://joohyeon.com/217 [본문으로]
    19.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 http://joohyeon.com/264 [본문으로]
    20.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 http://joohyeon.com/264 [본문으로]
    21.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http://joohyeon.com/265 [본문으로]
    22.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③]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http://joohyeon.com/266 [본문으로]
    23.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①] 1920~30년대 호주 보호무역 - 수입관세를 부과하여 수확체감과 교역조건 악화에서 벗어나자 http://joohyeon.com/268 [본문으로]
    24.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 http://joohyeon.com/269 [본문으로]
    25.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③] 한국은 '어떤 무역체제' 덕분에 경제발전을 이루었나 -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애매모호함 http://joohyeon.com/270 [본문으로]
    26.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④] 유치산업보호론 Ⅰ -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대립(?) http://joohyeon.com/271 [본문으로]
    27.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 http://joohyeon.com/272 [본문으로]
    28.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 http://joohyeon.com/272 [본문으로]
    29. [국제무역이론 ②] 1세대 국제무역이론 - 헥셔&올린의 보유자원에 따른 무역http://joohyeon.com/217 [본문으로]
    30. 개발시대의 금융억압 Financial Repression 정책이 초래한 한국경제의 모습 http://joohyeon.com/157 [본문으로]
    31. 세계경제사학회(Economic History Association), 2004.04. Book Review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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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③]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어떻게 작동하는가[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③]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Posted at 2018. 8. 5. 22:33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비교우위론 (Comparative Advantage)

    - 사실이면서 하찮지 않은 명제 (both True and Non-Trivial)

    - 리카도의 어려운 아이디어 (Ricardo's Difficult Idea)


    (저명한 수학자인 동료) Ulam은 과거에 종종 이런 말을 하면서 나를 놀리곤 했다. "사회과학 분야에서 사실이면서 하찮지 않은(both true and non-trivial) 명제를 하나 말해봐." 나는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 적절한 답이 떠올랐다. '리카도의 비교우위론'(The Ricardian theory of comparative advantage). 이 이론은 '한 국가가 절대적으로 생산성이 높든 낮든 무역을 통해 상호이득을 볼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해준다. 


    비교우위론은 논리적으로 사실이기 때문에, 굳이 수학자 앞에서 논쟁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하찮지 않다는 점은 이를 이해하지 못하며 설명을 해주어도 믿지 않는 수많은 지식인들에 의해 증명된다.[각주:1]    


    - 폴 새뮤얼슨, 1969, 'The Way of an Economist'


    무역이 양 국가의 실질소득을 모두 증가시킬 수 있다는 함의를 전해주는 비교우위론은 이를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간단하고 흥미로운 사고방식(simple and compelling concept)이다. 그러나 경제학자 이외의 부류들과 토론을 하게 되면 재빨리 깨닫게 될 거다. 아 (일반사람에게) 비교우위론은 매우 어려운 사고방식이구나. (...)


    나를 포함한 많은 경제학자들은 비교우위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정중함을 갖추려고 노력한다. 비판자들이 시도하려고 하는 것은 비교우위가 현실에서 실패하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주의를 끄는 것이다. 결국 경제학자들은 간단한 리카도모형이 현실에서 무역의 이익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수많은 이유를 듣게 된다. (...)


    공공토론에서 경제학자의 무용성은 잘못된 가정에서 오는 거 같다. 우리는 무역에 관해 글을 쓰고 말하는 똑똑한 사람들이 비교우위를 이해하고 있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매우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그들은 비교우위를 이해하지 않으며, 이에 대해 듣기를 희망하지도 않는다. 대체 왜?[각주:2]


    - 폴 크루그먼, 1998, Ricardo's Difficult Idea


    폴 새뮤얼슨(Paul Samuelson)이 말했듯이, 경제학자에게 있어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은 '사실이면서 하찮지 않은 명제'(both true and non-trivial) 이며, 경제학에서 제일 중요한 이론으로 꼽는 학자들도 많습니다.


    이렇게 높게 평가되는 이론은, 그러나,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매우 어려운 아이디어'(difficult idea)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틀린 아이디어 라는 비판도 듣습니다. 신무역이론(New Trade Theory)[각주:3]으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은 "매우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그들은 비교우위를 이해하지 않으며, 이에 대해 듣기를 희망하지도 않는다. 대체 왜?" 라고 말하며 답답함을 표시합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 '비교우위론'은 과거와 오늘날 벌어진 자유무역을 둘러싼 논쟁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과거 개발도상국과 오늘날 선진국의 정책결정권자들은 '비교우위론에 입각한 자유무역'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며 보호무역 카드를 꺼내들고, 경제학자들은 '비교우위와 자유무역을 거스르려는 행동'을 보며 못마땅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있습니다.


    도대체 19세기 데이비드 리카도가 세상에 내놓은 '비교우위론'(Comparative Advantage)이 무엇이길래, 이를 둘러싼 논쟁이 수백년간 지속되는 것일까요? 경제학자들과 비전공자들이 바라보는 비교우위론이 얼마나 다르길래 서로 답답해 하는 것일까요?


    이제 이번글을 통해, 경제학자들이 이해하는 비교우위론을 알아본 뒤, 이론의 어떠한 점이 대립과 갈등을 불러오는 지를 살펴봅시다.




    ※ (복습) 리카도가 외국과의 자유무역을 주장한 배경


    ● 제6장 이윤에 대하여


    한 나라가 아무리 넓어도 토질이 메마르고 식량 수입이 금지되어 있으면, 최소한의 자본의 축적이라도 이윤율의 커다란 하락과 지대의 급속한 상승을 가져올 것이다. 반면에, 작지만 비옥한 나라는, 특히 그 나라가 식량의 수입을 자유롭게 허용한다면, 이윤율의 큰 하락 없이, 또는 지대의 큰 증가 없이 자본의 자재를 크게 축적할 수 있을 것이다. 


    - 데이비드 리카도, 권기철 역, 1817, 『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리에 대하여』, 136~137쪽 


    지난글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에서 설명하였듯이, 데이비드 리카도가 뜬금없이 '(비교우위에 입각한) 외국과의 자유무역'을 주장한 것이 아닙니다. 


    19세기 영국인으로서 리카도가 우려하던 것은 '토지의 수확체감이 초래하는 임금 상승과 이윤율 하락' 이었습니다. 


    토지가 양적으로 무한하지 않고 질적으로 균일하지 않기 때문에, 경작 면적을 확대할수록 열등한 토지가 개간되고 수확량은 감소합니다. 이로 인해 곡물 한 단위 생산에 더 많은 노동이 투입되어 곡물 가치가 상승하게 되고, 노동자의 생계비 수준으로 지급해야 하는 임금 또한 오르게 됩니다. 그 결과, 영농자본가와 산업자본가의 이윤이 감소하여 경제성장을 위한 자본축적이 저해됩니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모든 문제의 근원은 '토지의 수확체감성'(diminishing returns)에 있습니다. 만약 토지의 생산성이 균일하다면 지대도 발생하지 않을 뿐더러 임금도 상승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토지가 가지고 있는 원천적인 속성을 인간이 고칠 수는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리카도가 주목한 것은 '외국과의 무역' 입니다. 만약 국내의 곡물 수요를 외국 곡물의 수입으로 충당할 수 있다면, 국내에서 경작 면적을 넓히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열등한 토지를 개간할 일도 없고, 지대와 임금도 상승하지 않을 겁니다. 그 결과 자본가의 이윤은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시장의 발견'과 '식량의 자유로운 수입' 그리고 이를 통한 '자본가의 높은 이윤 유지', 리카도가 곡물법을 폐지하고 '자유무역'(Free Trade)을 옹호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였습니다.




    ※ 국제무역을 대표하는 경제학자로 리카도를 떠올리는 이유는?

    - 『원리』 제7장 외국무역에 대하여 (On Foreign Trade)

    - 절대우위론을 보완한 비교우위론

    - 무역을 통해 모든 국가가 상호이득을 볼 수 있다 (Mutual Gain)


    리카도가 전개한 '무역이 경제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은 새로운 게 아니었습니다. 리카도보다 앞서 애덤 스미스 또한[각주:4] '무역을 통한 시장확대는 분업의 고도화와 생산력 발전을 이끈다'는 논리로 무역의 동태적이익(Dynamic Gain)을 말하였습니다


    스미스는 '무역이 효율성을 증대시킨다'는 주장도 하였습니다[각주:5]. 우리가 직접 제조하는 것보다 외국에서 구입하는 게 더 싸다면, 그것을 사는 게 이득이라는 논리입니다. 그는 "직접 제조하는 것보다 더 싸게 구매할 수 있는 상품으로 한 나라의 총노동이 향한다면, 총노동이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 사용되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라고 말하며, 무역의 정태적이익(Static Gain)을 설명했습니다.


    리고 국가의 무역통제를 금지하고 수입제한을 없애자는 자유무역 논리도 처음 나온 게 아닙니다. 이 또한 애덤 스미스[각주:6]가 '보이지 않는 손'을 말하며, "자유무역은 공공의 이익을 증대시키는 반면, 중상주의적 규제는 소비자를 희생하고 제조업 생산자의 이익만을 고려한다"고 분명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국제무역 혹은 자유무역에 관한 대표적인 경제학자를 연상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사람은 애덤 스미스가 아니라 '데이비드 리카도' 입니다. 왜 일까요? 바로 '비교우위'(Comparative Advantage) 때문입니다. 


    리카도가 내놓은 비교우위론은 단순히 '중상주의보다 자유무역이 좋구나' 라는 사고를 넘어서서 '무역을 통해 모든 국가가 상호이득을 볼 수 있구나(mutual gain)' 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애덤 스미스의 중상주의 비판 및 자유무역론도 사람들의 사고를 완전히 뒤바뀌게끔 공헌을 하였으나, 리카도는 절대적으로 생산성이 높은 국가도 자유무역이 필요하다는 점 절대적으로 생산성이 낮은 국가도 강대국과 무역을 하면서 이득을 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자유무역의 확산에 기여하였습니다.


    우선 애덤 스미스의 절대우위론(Absolute Advantage)을 살펴본 이후, 리카도의 비교우위론(Comparative Advantage)를 알아보도록 합시다.


    ▶ 애덤 스미스의 절대우위론 (Absolute Advantage)


    : 애덤 스미스가 '자유무역을 해야하는 이유'로 여러 논거(경제성장, 자유주의적 사고, 중상주의 폐해 등)를 들었는데, 그 중 하나는 "직접 제조하는 것보다 더 싸게 구매할 수 있다" 입니다. 지난글[각주:7]에서 보았던 『국부론』 일부를 다시 읽어봅시다.


    ● 제4편 정치경제학의 학설체계 - 제2장 국내에서 생산될 수 있는 재화를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에 대한 제한


    국내의 특정한 수공업 · 제조업 제품에 대해 국내시장의 독점권을 부여하는 것은 어느 정도 각 개인에게 그들의 자본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를 지시하는 것으로, 거의 모든 경우, 쓸모 없거나 유해한 규제임에 틀림없다. 만약 국산품이 외래품만큼 싸게 공급될 수 있다면 이러한 규제는 명백히 쓸모 없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렇나 규정은 일반적으로 유해하다. 현명한 가장(家長)의 좌우명은, 구입하는 것보다 만드는 것이 더욱 비싸다면 집안에서 만들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


    모든 개별 가구에 대해서 현명한 행동이 대국에 대해서는 어리석은 행동이 될 수는 없다. 만약 외국이 우리가 스스로 제조할 때보다 더욱 값싸게 상품을 공급할 수 있다면, 우리가 비교우위를 가진 국산품의 일부로 그것을 사는 것이 유리하다. 


    이렇게 하더라도, 한 나라의 총 노동은 그것을 고용하는 자본과 일정한 비례관계에 있기 때문에, 위에서 설명한 각종 수공업자들의 노동이 감소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 나라의 총노동도 감소하지는 않을 것이고, 다만 가장 유리하게 이동될 수 있는 방도를 찾게 될 것이다. 직접 제조하는 것보다 더 싸게 구매할 수 있는 상품으로 한 나라의 총노동이 향한다면, 총노동이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 사용되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특정 상품의 생산에서 다른 나라가 누리고 있는 자연적 이점이 한 나라에 비해 너무나도 크다면, 그 상품과 경쟁하는 것이 헛수고라는 것은 세상 사람들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바이다. (...) 


    수요되는 같은 양의 상품을 얻기 위해서 외국으로부터 살 때 필요한 것보다 30배나 많은 자국의 자본 · 노동을 들여서 그것을 국내에서 생산하려는 것이 얼빠진 짓이라면, 1/30 또는 심지어 1/300 정도 더 많은 자본 · 노동을 들여서 그것을 국내에서 생산하려는 것 역시 앞에서처럼 뚜렷하지는 않아도 얼빠진 짓이란 점에서는 완전히 똑같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대해 누리는 우위(advantage)가 천부적인 것이건 후천적으로 획득된 것이건, 그것은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 한 나라가 이러한 우위를 가지고 다른 나라가 그것을 가지지 못하는 한, 후자는 스스로 생산하기보다 전자로부터 구입하는 것이 항상 더 유리하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상)』, 비봉출판사, 553~556쪽


    애덤 스미스가 말했듯이 무역을 하는 국가가 이익을 얻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자국에서 생산하는 것보다 더 싼 가격에 물건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계속 반복하자면, "외국이 우리가 스스로 제조할 때보다 더욱 값싸게 상품을 공급할 수 있다면, 우리가 비교우위를 가진 국산품의 일부로 그것을 사는 것이 유리" 합니다.


    (주 : 국내에서 번역된 『국부론』은 '비교우위'로 번역 하였으나, 원문은 'some advantage' 입니다. 따라서 리카도의 비교우위(comparative advantage)와 혼동하지 않으려면, '(다른 나라에 비해 절대) 우위를 가진 국산품의 일부'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 합니다.)


    경제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은 국제무역을 '서로 다른 국가 간의 전쟁터'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약소국이 강대국과의 무역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라고 잘못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통념과는 반대로, 오히려 국제무역은 생산성이 낮은 약소국에게 큰 이익을 안겨줄 수 있습니다. 생산성이 높은 강대국이 만들어낸 값싼 상품을 수입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스미스의 절대우위론은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그럼 생산성이 절대적으로 우위인 강대국은 왜 절대열위인 약소국과 무역을 해야 하나요? 


    스미스의 논리에 따르면, 절대우위에 놓인 국가는 스스로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제일 싸기 때문에, 어느 국가와의 무역에서도 더 값싼 상품을 구입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역을 해야하는 이유도 없습니다.


    애덤 스미스의 절대우위론은 무역을 전쟁터로 바라보는 일반인의 통념을 깨뜨리는 데 공헌하긴 하였으나, 절대우위를 가진 국가가 무역을 통해 어떠한 이익을 볼 수 있는지를 말하지는 못했습니다. 따라서,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에 빈번히 벌어지고 있는 무역이 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설명하지 못하였고, 강대국이 무역을 해야하는 이유도 설득시키지 못했습니다.




    ※ 마법의 네 숫자 (Four Magic Numbers)

    - 옷(cloth)에 비교우위를 가진 영국

    - 포도주(wine)에 비교우위를 가진 포르투갈

    - 영국, 포도주 수입을 위해 옷을 생산하자 (Cloth for Wine)


  • 2017년 12월, 리카도 비교우위론 등장 200주년 기념
  • Cloth에 비교우위를 가진 영국과 Wine에 비교우위를 가진 포르투갈
  • 영국은 Wine을 얻기 위해서 Cloth 생산에만 전념해도 된다! (Cloth for Wine!)

  • 데이비드 리카도가 1817년 출판한 『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리에 대하여』(『On the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and Taxation』)에는 애덤 스미스가 41년 전 말했던 절대우위론을 보완하는 무역이론, '비교우위론'(Comparative Advantage)이 담겨져 있습니다. 


    리카도는 마치 사소한(trivial) 논리를 설명하듯이 가볍게 이야기 했으나, 비교우위론이 세상에 나온 이후 경제학자들이 자유무역을 바라보는 사고방식은 한층 더 넓어지고 깊어졌습니다. 『원리』에 나온 그 부분을 한번 읽어봅시다.


    ● 제7장 외국무역에 대하여


    잉글랜드직물을 생산하는 데 연간 100명의 노동이 필요한 상황에 있으며, 잉글랜드가 포도주를 생산하려고 할 경우 동일한 기간 동안 120명의 노동이 필요하다고 해보자. 그러면 잉글랜드는 포도주를 수입하고, 또 직물을 수출해 포도주를 구매하는 것이 이익임을 알게 될 것이다.


    포르투갈에서 포도주를 생산하는 데는 연간 80명의 노동만이 필요하며, 같은 나라에서 직물을 생산하는 데는 연간 90명의 노동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면 포르투갈은 포도주를 수출하여 직물과 교환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 데이비드 리카도, 권기철 역, 1817, 『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리에 대하여』, 149~150쪽 


    짧은 문단 속에 등장한 '잉글랜드'와 '포르투갈', 그리고 '옷(직물)'과 '포도주', 마지막으로 '마법의 네 숫자'(Four Magic Numbers)[각주:8]라 불리우는 네 가지 숫자가 국제무역이론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경제학을 전공하신 분들은 학교에서 배운대로 '두 상품을 생산하는데 들어가는 기회비용'을 구한 뒤 비교우위 및 열위 여부를 판단하겠지만, 리카도가 책을 출간할 당시에는 기회비용(opportunity cost) 이라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우선, 우리는 교과서 버전(textbook edition)의 비교우위론이 아니라 리카도의 가치 이론(Ricardian Value Theory)에 따른 비교우위론을 생각해봅시다.


    (주 : 오늘날 현대 경제학 교과서 버전의 비교우위론-기회비용 관점-이 궁금하신 분은 2015년에 작성한 본 블로그의 글 [국제무역이론 ①]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을 살펴보시면 됩니다.) 


    내용을 좀 더 쉽게 파악하기 위해 표를 봅시다.



    잉글랜드는 옷을 생산하려면 100명의 노동, 포도주는 120명의 노동이 필요합니다. 포르투갈은 옷 생산에 90명, 포도주에 80명이 필요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리카도는 갑자기 "잉글랜드는 포도주를 수입하고, 또 직물을 수출해 포도주를 구매하는 것이 이익", "포르투갈은 포도주를 수출하여 직물과 교환하는 것이 유리" 라고 단언합니다. 즉, 표에 색칠한 품목이 양 국가가 비교우위를 가진 채 수출하는 상품입니다.


    리카도가 왜 이렇게 단언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가치 이론을 다시 살펴봐야 합니다.


    지난글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을 통해, 리카도는 "한 상품의 (교환)가치는 그 상품의 생산에 필요한 상대적 노동량에 달려있다"고 믿었다는 점을 소개했습니다. 이른바 '투하노동설' 입니다. 예를 들어, 100명의 노동이 투입되어 만들어진 상품의 가치는 100이고, 120명이 투입된 상품의 가치는 120 입니다. 

     

    이런 이유로 서로 다른 수의 노동이 투입된 상품들은 동일한 가치로 교환될 일이 없습니다. 100명이 투입된 상품과 120명이 투입된 상품이 똑같은 가치로 교환, 예를 들어 100의 가치로 교환된다면 120 짜리 상품은 손해를 보는 셈이기 때문이죠. 또는 120 가치로 교환된다면 100짜리 상품은 앉아서 이득일 보게 됩니다.

     

     

     

     

    이를 수식으로 표현하면 위와 같습니다. 만약 교환되는 잉글랜드 옷의 상대 가치가 상대 투하노동량 보다 높다면, 잉글랜드인 모두가 옷 생산을 하게 될 겁니다. 반대로 교환되는 잉글랜드 옷의 상대 가치가 상대 투하노동량보다 작다면, 잉글랜드인 모두가 포도주 생산을 하게 될 겁니다. 자급자족 상황에서는 두 상품을 모두 생산해야 하기 때문에, 상품 가치가 조정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서로 다른 수의 노동이 투입된 상품들은 상대 노동투하량과 동일한 상대 가치로 교환됩니다. 즉, 잉글랜드가 무역을 하지 않고 자급자족 상태로 살아간다면, 두 상품의 상대 가치는 상대 노동투하량과 동일한 값을 계속 가질 겁니다. 리카도의 숫자를 예시로 쓴다면, 포도주 대비 옷의 상대 가치는 상대 투하노동량과 동일한 100/120을 띄어야 합니다.

     

    그러나 다른 국가와 상품 교환을 할 때는 국내 교환과는 다른 법칙이 작동합니다.

     

    한 나라에서 상품의 상대 가치를 규제하는 것과 동일한 규칙이 둘 또는 그 이상의 나라들 사이에서 교환되는 상품의 상대 가치를 규제하지는 않는다.

     

    - 데이비드 리카도, 권기철 역, 1817, 『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리에 대하여』, 147쪽 

     

    이 말이 무슨 말이냐하면, 두 국가 간에 교환되는 상품의 가치는 두 국가의 상대 투하노동량과 다르게 결정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두 국가의 상대 투하노동량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상품의 가치가 최소한 어느 한 국가의 상대 투하노동량과는 다른 값을 가지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 무역거래시 교환되는 상품의 상대 가치는 어떻게 결정될까요? 

     

     

     

    만약 옷의 상대 가치가 잉글랜드와 포르투갈이 옷 생산에 투입하는 상대 노동량보다 높다면 양 국가 모두 옷을 생산할 겁니다. 반대로 옷의 상대 가치가 적다면 양 국가 모두 포도주를 생산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두 국가는 똑같은 상품을 만들기 때문에 무역교환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무역 교환을 하기 위해서 옷의 상대 가치는 두 국가 상대 노동량의 가운데에 있어야 합니다. 그 결과 이제 잉글랜드는 옷에 특화하게 되고 포르투갈은 포도주에 특화하게 됩니다


    아래를 통해 표와 수식을 다시 살펴봅시다.


     


     

     


     

    ※ 무역이 발생하는 이유는 자국과 외국에서의 '가격이 다르기 때문'

    - 이른바 '교역조건'의 중요성 (Terms of Trade)


    '무역 교환을 하기 위해서 옷의 상대 가치는 두 국가 상대 노동량의 가운데에 있어야' 하는데, 왜 '잉글랜드는 옷에 특화하게 되고 포르투갈은 포도주에 특화'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앞서 살펴본 '두 국가 간에 교환되는 상품의 가치는 두 국가의 상대 투하노동량과 다르게 결정될 수 있다'의 의미가 무엇인지 좀 더 깊게 생각해봅시다.


    바로, 무역이 발생하는 이유는 국내에서 판매할 때의 상대가격과 외국에 판매할 때의 상대가격이 다르기 때문(different relative price)이라는 말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수출이 발생하는 이유는 국내에서 판매할 때보다 외국에 판매할 때 더 높은 상대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higher relative price) 이고, 수입이 발생하는 이유는 국내에서 구입할 때보다 외국에서 구입할 때 더 낮은 상대가격을 지불할 수 있기 때문(lower relative price) 입니다.






     

    자급자족일 때 잉글랜드 옷의 상대가격은 100/120 인데 반하여, 외국과의 무역시 최대 90/80의 상대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급자족일 때 포르투갈 포도주의 상대가격은 80/90 인데 반하여, 외국과의 무역시 최대 120/100의 상대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습니다.


    내에서 판매하는 것보다 외국에 판매하는 것이 더 비싼 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잉글랜드는 옷을 수출하고 포르투갈은 포도주를 수출합니다.


    반대로 수입을 생각해보면, 자급자족일 때 잉글랜드 포도주의 상대가격은 120/100 인데 반하여, 외국과의 무역시 최소 80/90 가격으로 구입해 올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급자족일 때 포르투갈 옷의 상대가격은 90/80 인데 반하여, 외국과의 무역시 최소 100/120 가격으로 구입해 올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 생산된 상품을 구입하는 것보다 외국에서 수입해오는 것이 더 싸기 때문에, 잉글랜드는 포도주를 수입하고 포르투갈은 옷을 수입합니다.


    여기서 애덤 스미스의 절대우위론과 한 가지 차이가 나타나는데,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에서 중요한 것은 상품 가격의 기준이 (생산성의 절대 수준이 결정하는) 절대 가격이 아니라 (생산성의 상대 수준이 결정하는) 상대 가격(relative price) 이라는 점입니다.  


    절대 가격을 보면 포르투갈은 생산성의 절대 수준이 잉글랜드에 비해 높기 때문에, 옷이든 포도주든 수입을 하지 않고 국내에서 생산된 제품을 사용하는 게 훨씬 더 값이 쌉니다. 


    하지만 자본과 노동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둘 중 어느 제품을 국내에서 생산하는 게 비교적 싼 지를 혹은 둘 중 어느 제품을 외국에 판매해야 비교적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지 고려해야 합니다.


    이로 인해 생산성이 절대적으로 우위인 국가도 상대적인 생산성은 열위일 수 있기 때문에, 절대열위 국가로부터 수입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생산성이 절대적으로 열위여서 국내 상품 가격이 높은 국가도 상대적인 생산성은 우위이기 때문에, 더 높은 상대 가격을 받고 절대우위 국가에 수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 결과, 절대우위와 절대열위 국가 모두 무역을 통해 '상호이득'(mutual gain)을 볼 수 있습니다.


    리카도가 책을 집필하던 시기에는 경제주체가 선택을 할 때 '기회비용'을 중점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사고가 완전히 뿌리내리지는 않았으나, 자원이 한정적이라는 인식을 했었기 때문에 비교우위론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주 : 앞에서도 말했지만, 오늘날 현대 경제학 교과서 버전의 비교우위론-기회비용 관점-이 궁금하신 분은 2015년에 작성한 본 블로그의 글 [국제무역이론 ①]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을 살펴보시면 됩니다.) 


    『원리』에 나타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을 다시 한번 살펴봅시다.


    ● 제7장 외국무역에 대하여


    잉글랜드는 직물을 생산하는 데 연간 100명의 노동이 필요한 상황에 있으며, 잉글랜드가 포도주를 생산하려고 할 경우 동일한 기간 동안 120명의 노동이 필요하다고 해보자. 그러면 잉글랜드는 포도주를 수입하고, 또 직물을 수출해 포도주를 구매하는 것이 이익임을 알게 될 것이다.


    포르투갈에서 포도주를 생산하는 데는 연간 80명의 노동만이 필요하며, 같은 나라에서 직물을 생산하는 데는 연간 90명의 노동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면 포르투갈은 포도주를 수출하여 직물과 교환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포르투갈이 수입하는 상품이 잉글랜드에서보다 포르투갈에서 더 적은 노동으로 생산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교환은 일어날 것이다. 비록 포르투갈은 직물을 90명의 노동으로 만들 수 있지만, 그것을 생산하는 데 100명의 노동이 필요한 나라로부터 그것을 수입할 것이다. 


    왜냐하면 포르투갈은, 그 자본의 일부를 포도 재배에서 직물 제조로 전환시켜서 생산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직물을, 잉글랜드에서 획득하게 해주는 포도주 생산에 그 자본을 투입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잉글랜드는 80명의 노동의 생산물에 대해 100명의 노동의 생산물을 내놓을 것이다. 그러한 교환은 동일 국가의 개인들 사이에서는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잉글랜드인 100명의 노동이 잉글랜드인 80명의 노동에 대한 대가로 주어질 수는 없지만, 잉글랜드인 100명의 노동의 생산물은 포르투갈인 80명, 러시아인 60명, 또는 동인도인 120명의 노동의 생산물에 대한 대가로는 주어질 수 있다. (...)


    그리하여 직물이 포르투갈에 수입되려면, 그것을 수출하는 나라에서 치르는 값보다 포르투갈에서 더 많은 금을 받고 팔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포도주가 [포르투갈에서] 잉글랜드로 수입되려면, 그것이 포르투갈에서 치르는 값보다 잉글랜드에서 더 많이 받고 팔릴 수 있어야 한다. 


    만약 무역이 순전히 물물 교환이라면, 그것이 지속될 수 있는 것은 잉글랜드가 일정한 노동량으로 포도 재배 대신에 직물 제조로 더 많은 양의 포도주를 획득할 수 있을 만큼 직물을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을 동안뿐일 것이며, 또 포르투갈의 산업에 정반대의 효과가 일어날 동안뿐일 것이다.


    - 데이비드 리카도, 권기철 역, 1817, 『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리에 대하여』, 149~151쪽 


    이처럼 국제무역이 발생하는 이유나 비교우위 원리는 이를 이해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크루그먼이 말한 것처럼) 간단하고 흥미롭습니다(simple and compelling).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왜 '비교우위론과 자유무역을 둘러싼 논쟁'이 과거에도 오늘날에도 반복되는 것일까요?




    ※ 비교우위를 둘러싼 논쟁 

    -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정말 상호이득을 가져다 주는가

    - 개도국 : 생산성이 높은 선진국과의 경쟁에서 어떻게 이기나

    - 선진국 : 개도국이 저임금을 이용하여 상품을 싸게 만들면 어떻게 경쟁하나


    비교우위가 말해주는 가장 중요한 함의는 '무역을 하는 국가들이 모두 이득을 볼 수 있다'(mutual gain)는 것입니다. 절대열위인 국가도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역을 통해 이익을 볼 수 있습니다. 절대우위인 국가도 비교열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역을 해야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무역이 상호이득을 안겨준다는 사실은 직관적으로 와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 개도국이 선진국 대기업을 어떻게 이겨?" 여기에 더해 서로 다른 가격이 무역의 이익을 창출한다는 설명을 해주면 "그럼 개도국이 저임금을 이용해서 상품을 싸게 만들면 우리 선진국은 어떻게 수출하나?" 라는 반응이 나옵니다.


    ▶ 개발도상국 : 생산성 높은 선진국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어떻게 이기나

    ▶ 선진국       : 개도국이 저임금을 이용하여 상품을 싸게 만들면 어떻게 경쟁하나


    즉, 개도국과 선진국 모두 비교우위가 말하는 상호이득 논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을 내비치곤 합니다. 경제학자들이 보기에 이들의 우려가 어떤 점에서 잘못된 것인지 알아봅시다.

     

    리카도는 투하노동량이 상품 가치를 결정한다고 믿었으나, 오늘날 현대 경제학에서 중요한 것은 '(한계)생산성'과 '임금' 입니다.

     

    상품 한 단위 생산에 a명의 투입된다는 말은 근로자 1명의 생산성이 1/a 단위라는 말과 같습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 한 대 생산에 4명이 투입되면, 근로자 1명의 생산성은 스마트폰 1/4대이죠. 즉, 리카도가 사용한 투하노동량에 역수를 취하면 근로자 1명의 생산성을 구할 수 있습니다.

     

    상품의 가격은 '임금/생산성'이 결정짓기 때문에, 임금이 높을수록 그리고 생산성이 낮을수록 가격은 올라가고, 임금이 낮고 생산성이 높을수록 가격은 하락합니다. 이를 수식으로 표현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이것을 앞에서 구해놓은 '양 국가의 상대 투하노동량과 상품의 상대 가치의 관계'에 대입하면 개도국과 선진국의 임금이 어디에서 결정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위의 관계가 말해주는 바는, 개도국과 선진국의 임금은 그들의 생산성 수준에 따라서 결정된다는 점입니다. 보통 선진국은 개도국에 비해 높은 임금 수준을 기록하는데(wage disadvantage), 선진국이 누리는 최저 생산성 우위(lowest productivity advantage, 좌변) 보다는 높고 최고 생산성 우위(highest productivity advantage, 우변) 보다는 낮습니다.


    이를 쉽게 풀어 설명하면, '선진국의 높은 생산성 우위는 고임금 때문에 어느정도 상쇄된다'거나 '개도국의 저임금 우위는 낮은 생산성 때문에 어느정도 상쇄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개발도상국은 낮은 생산성에 맞추어 저임금을 유지함으로써 강대국에 대해 가지는 비교우위를 유지할 수 있고, 선진국은 고임금을 가지고 있으나 생산성 수준도 그에 맞게 높기 때문에 개도국에 대해 가지는 비교우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약 두 국가 모두 생산성에 비해 낮은 임금을 인위적으로 유지한다면 무역의 상호이득은 사라질 수 있으나, 임금은 전체 노동시장의 생산성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오직 무역을 위해서 임금을 인위적으로 조정하기는 힘듭니다. 

     

    (주 : 임금을 고려한 비교우위론에 대해서는 본 블로그의 글 [국제무역이론 ①] 1세대 국제무역이론 -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


    (주 : 인위적으로 임금을 낮게 유지하여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한 행위가 어떠한 결과를 초래했는지에 대해서는 본 블로그의 글 [유럽경제위기 ②] 유로존 내 경상수지 불균형 확대 - 유럽경제위기의 씨앗이 되다, [유럽경제위기 ④] 유로존의 근본적결함① - 독립적인 통화정책의 불가능, 유럽경제위기를 키우다 )




    ※ 비교우위를 둘러싼 논쟁

    - 수확체감산업에 특화하는 경우에도 자유무역의 이익 누리는가?


    지난글[각주:9]과 이번글의 앞에서 복습했듯이, 데이비드 리카도가 자유무역을 주장하게 된 배경은 '새로운 시장의 발견'과 '식량의 자유로운 수입' 그리고 이를 통한 '자본가의 높은 이윤 유지' 였습니다.


    리카도가 바라보기에 모든 문제의 근원은 '토지의 수확체감성'(diminishing returns)에 있었습니다. 곡물 생산을 늘려나가면 영농자본가의 수익이 늘지 않고 지주만 이득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수확체감으로 인한 노동자 임금 상승은 산업자본가의 이윤에도 악영향을 끼쳤습니다.


    따라서 경제성장을 위해서 수확체감 성질을 가진 산업을 포기하고(=외국으로부터의 수입으로 대신하고) 제조업 같은 수확체증산업(increasing return)에 특화할 필요성이 생깁니다. 19세기 당시 영국이 제조업 부문에 비교우위가 있었기 때문에,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바람직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런데... 19세기 영국과는 달리 수확체감산업에 비교우위를 가진 국가는 자유무역을 통해 이득을 얻을 수 있을까요?


    만약 당시 영국이 제조업이 아닌 농업에 비교우위가 있었다면, 자유무역의 결과 농업부문 특화가 더 진행되어 (리카도의 가치 · 지대 · 임금 · 이윤 이론에 따라서) 경제성장에 악영향만 끼쳤을 겁니다.


    이런 이유로 인하여 "자유무역 및 비교우위론은 이미 제조업에 비교우위를 가진 국가에만 유리한 이론 아니냐"는 비판을 줄곧 받아왔습니다.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 질서를 따르면 '수확체증산업에 특화할 수 있느냐', 다르게 말해 '제조업이나 고부가가치 산업을 키울 수 있느냐' 여부는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자유무역을 둘러싼 논쟁의 주요 논점이 되고 맙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글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①] 1920~30년대 호주 보호무역 - 수입관세를 부과하여 수확체감과 교역조건 악화에서 벗어나자'에서 깊게 다룰 계획입니다.




    ※ 비교우위를 둘러싼 논쟁 ③

    - 특화품 생산을 늘려나갈수록 교역조건이 악화된다면?


    "수확체감산업에 특화하는 경우에도 자유무역의 이익 누리는가?"에 대한 의문은 결국 '어떤 산업에 특화를 하느냐가 무역의 이익을 누리는 데 있어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해 줍니다. 그리고 이는 "비교우위에 따른 특화를 한 결과, 특화품목의 생산량을 늘려나갈수록 교역조건이 악화된다면 자유무역의 이익을 누릴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으로 발전됩니다.


    이번글에서 살펴보았듯이, 비교우위론은 무역이 발생하는 이유를 국내에서 판매할 때의 상대가격과 외국에 판매할 때의 상대가격이 다르기 때문(different relative price)이라고 설명합니다. 


    출이 발생하는 이유는 국내에서 판매할 때보다 외국에 판매할 때 더 높은 상대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higher relative price) 이고, 수입이 발생하는 이유는 국내에서 구입할 때보다 외국에서 구입할 때 더 낮은 상대가격을 지불할 수 있기 때문(lower relative price) 입니다.


    그러므로 무역의 이익 크기(gains from trade)는 '국내 가격과 수출시장에서의 가격이 얼마나 다른가'가 결정짓습니다.


    만약 국내에서 판매해야 하는 가격보다 훨씬 더 높은 가격을 받고 수출시장에서 판매를 할 수 있다면, 수출로 얻게 된 돈으로 더 많은 수입품을 수입해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국내 판매가격과 수출시장에서의 판매가격이 똑같다면, 굳이 무역을 해야할 이유도 없으며 수입도 줄어들 겁니다.


    일반적으로는 개별 국가가 생산성을 증가시켜서 특화품 가격을 낮게 만들게 되더라도, 세계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적기 때문에 수출시장 가격은 변동하지 않습니다. 이 경우 수출시장 가격이 국내 가격보다 상대적으로 더 비싸지기 때문에 무역의 이익은 커집니다.


    그러나 석유 · 철광석 · 농산품 등 1차 상품(raw material)은 특정 국가에서 주로 생산되며, 이들이 생산량을 조정하면 세계시장에서의 가격이 크게 변동합니다. 가령, OPEC 등 산유국이 원유채굴량을 늘리면 석유가격이 크게 하락합니다. 


    이러한 특징은 결국 '비교우위에 입각해서 특화를 한 뒤 생산량을 증가시켰더니, 교역조건이 악화되어 무역의 이익이 사라졌다'는 현상을 초래하고 맙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 비교우위를 둘러싼 논쟁 ②와 유사하게, "자유무역 및 비교우위론은 제조업에 비교우위를 가진 선진국에만 유리하고, 1차 상품에 비교우위를 가진 개발도상국에 불리한 거 아니냐"는 비판을 불러옵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글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②]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 무역의 이점을 무시한 대가를 치르다'에서 깊게 다룰 계획입니다.




    ※ 비교우위를 둘러싼 논쟁 ④

    - 어떤 산업이 비교우위를 가지는가는 어떻게 결정되는가 

    - 비교우위에 따른 특화는 영원히 지속되는가


    비교우위를 둘러싼 논쟁 ②와 ③은 결국 '어떤 산업에 비교우위를 가지는가', '어떤 산업에 특화를 하는가'의 문제입니다.


    리카도는 '비교우위가 상대적인 생산성(relative productivity)의 차이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국가마다 상대적으로 생산성 우위를 가진 산업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산업에 비교우위를 가지느냐도 다릅니다.


    그럼 보다 근본적으로 국가마다 다른 상대적인 생산성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왜 영국 등 선진국은 제조업 부문에 생산성 우위를 가지게 되었고, 왜 남미 등 개도국은 1차 산업에 생산성 우위를 가지게 되었을까요.


    또한 현재는 비교열위에 놓여져있는 수확체증산업 및 제조업을 성장시켜서 미래를 도모하고 싶은데,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 질서를 따르면, 헌번 결정된 비교우위에 따른 특화는 영원히 지속되는 것인가요?


    이러한 물음들은 결국 '유치산업보호론'(Infant Industry Argument)과 깊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유치산업보호론이란 현재 영유아(Infant) 상태인 산업을 자유무역에 노출시키지 않고 보호정책으로 육성하자는 주장입니다. 주로 산업화 후발주자인 국가가 제조업을 육성하기 위해 쓰는 산업정책 입니다.


    만약 한 국가가 가지는 비교우위가 '역사적 우연성(historical accident)으로 그저 빨리 진입(early entry) 했기 때문에 가진 것'이라면, 늦게나마 진입하려는 국가가 미래에 더 나은 우위를 가질 수도 있을 겁니다. 


    또한, 비교우위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정책입안자들이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지금은 자유무역을 따르기보다 보호무역을 통해 비교우위 산업을 육성하려는 정책이 더 효과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비교우위론은 그저 "미래는 생각치 말고 현재의 비교우위 산업에 특화해라" 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즉,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 질서를 따르면, 영원히 현재의 비교우위 산업에만 특화해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 논쟁을 불러왔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두 개의 글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④] 유치산업보호론 Ⅰ -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대립(?)'과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⑤] 유치산업보호론 Ⅱ - 존 스튜어트 밀 · 로버트 발드윈, 특정한 조건 하에서는 효율적 생산을 위한 정부개입이 정당화 된다' 에서 깊게 다룰 계획입니다.




    ※ 비교우위를 둘러싼 논쟁 ⑤

    - 무역의 이익을 어떻게 배분하는가

    - 무역개방 이후 비교열위에 처하게 된 근로자와 산업을 어떻게 지원하나

    - 시장의 자기조정 기능은 작동하는가 


    앞서 소개한 논쟁들이 '비교우위의 원리 그 자체가 옳으냐 그르냐'를 둘러싼 것이라면, 이번 논쟁은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을 실시한 이후의 대책'에 관한 것입니다.


    애덤 스미스 및 데이비드 리카도 등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비교우위 및 자유무역을 선호하는 이유는 '비교우위를 가진 상품에 특화한 후 비싼 값에 수출하고, 나머지 상품은 직접 생산하지 않고 싼 가격에 수입할 수 있기 때문' 입니다. 이른바 '수입품의 간접생산'(indirect product) 논리 입니다.


    무역개방을 한다면, 필연적으로 다른 국가에 비해 상대적인 생산성이 낮아서 생산을 중단하게 된 산업이 생길 겁니다. 그렇다면 비교열위에 처하게 된 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를 어떻게 지원해야 하나요? 그리고 (개도국과 선진국이 모두 선호하는) 제조업이 비교열위 상태에 놓이게 된다면 이를 어떻게 해야하나요?


    '무역의 이익을 어떻게 배분하는가'와 '무역이 소득분배에 미치는 영향'은 오늘날 선진국에서 특히나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에 대해서도 다른글에서 깊게 다룰 계획입니다.




    ※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 [국제무역논쟁 선진국] 시리즈


    이번글에서 짧게나마 소개한 '비교우위를 둘러싼 논쟁'들은 앞으로 [국제무역논쟁 개도국] & [국제무역논쟁 선진국] 시리즈를 통해 깊게 생각해볼 기회가 있을 겁니다.


    본격적인 [국제무역논쟁]을 살펴보기에 앞서, '서로 다른 상대가격'과 '교역조건'이 무역의 이익을 어떻게 결정하는지에 대해서 보다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합시다.


    다음글 :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④] 교역조건의 중요성 - 무역을 하는 이유 · 무역의 이익 발생


    1. He used to tease me by saying, 'Name me one proposition in all of the social sciences which is both true and non-trivial.' This was a test that I always failed. But now, some thirty years later, on the staircase so to speak, an appropriate answer occurs to me: The Ricardian theory of comparative advantage; the demonstration that trade is mutually profitable even when one country is absolutely more - or less - productive in terms of every commodity. That it is logically true need not be argued before a mathematician; that it is not trivial is attested by the thousands of important and intelligent men who have never been able to grasp the doctrine for themselves or to believe it after it was explained to them. [본문으로]
    2. I believe that much of the ineffectiveness of economists in public debate comes from their false supposition that intelligent people who read and even write about world trade must grasp the idea of comparative advantage. With very few exceptions, they don't -- and they don't even want to hear about it. Why? [본문으로]
    3. [국제무역이론 ④] 新무역이론(New Trade Theory) - 상품다양성 이익, 내부 규모의 경제 실현 http://joohyeon.com/219 [본문으로]
    4.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 http://joohyeon.com/264 [본문으로]
    5.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 http://joohyeon.com/264 [본문으로]
    6.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 http://joohyeon.com/264 [본문으로]
    7.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 http://joohyeon.com/264 [본문으로]
    8. - 폴 새뮤얼슨, 1969, 'The Way of an Economist' [본문으로]
    9.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http://joohyeon.com/26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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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①] 애덤 스미스,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 사상을 내놓다

    Posted at 2018. 7. 25. 17:33 | Posted in 경제학/국제무역, 경제지리학, 고용


    ※ 애덤 스미스의 1776년 작품 『국부론』,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변화시키다



    사실 그는 공공의 이익(public interest)을 증진시키려고 의도하지도 않고, 공공의 이익을 그가 얼마나 촉진하는지도 모른다. 외국 노동보다 본국 노동의 유지를 선호하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안전(security)을 위해서고, 노동생산물이 최대의 가치를 갖도록 그 노동을 이끈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이익(gain)을 위해서다. 


    이 경우 그는, 다른 많은 경우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손(an invisible hand)에 이끌려서 그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그가 의도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해서 반드시 사회에 좋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흔히, 그 자신이 진실로 사회의 이익을 증진시키려고 의도하는 경우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그것을 증진시킨다. 


    나는 공공이익을 위해 사업한다고 떠드는 사람들이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사실 상인들 사이에 이러한 허풍은 일반적인 것도 아니며, 그런 허풍을 떨지 않게 하는 데는 몇 마디 말이면 충분하다.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상)』, 비봉출판사, 552~553쪽


    경제학에 관심이 있든 없든 애덤 스미스(Adam Smith)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가 '보이지 않는 손' (Invisible Hand)과 '이기심'(Self-Interest)을 말했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애덤 스미스가 어떠한 맥락에서 '보이지 않는 손'을 사용했는지, 그리고 『국부론』을 통해 무엇을 전달하려고 했으며, 왜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국부론』을 경제학의 시초로 평가하는지를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도 얼마되지 않습니다. (경제학 전공자 중 『국부론』을 읽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더 쉬울 거 같네요.)


    애덤 스미스의 1776년 작품 『국부의 성질과 원인에 대한 연구』(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는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변화시켰습니다. '국가의 부(Wealth of Nations)가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국부를 늘릴 수 있는지' 그리고 '외국과의 무역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등의 사고방식을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 영향으로 바뀌어버린 사고방식은 오늘날까지 경제학자들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에이 주류 경제학자들은 맨날 '보이지 않는 손' 운운하면서 교조적인 자유방임주의만 내세우지 않냐"라고 비아냥 거리기에는, 경제학의 논리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즉, 주류 경제학자들은 자유무역(Free Trade)를 옹호한다는 사실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았는데, 그들이 왜 자유무역을 찬성하고 왜 보호무역을 반대하는지를 명확히 아는 사람은 얼마 없는 것이 현재 상황입니다. 


    1776년에 쓰여진 책 속에 담긴 논리를 2018년 현대 사회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과거 이론을 암기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과거 개도국과 오늘날 선진국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국제무역논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통해 내놓은 사상과 배경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이번글을 통해 『국부론』의 원문 내용을 읽어나가며, 애덤 스미스의 사상이 발현된 배경과 내용을 알아보고, 이것이 자유무역에 관해서 오늘날까지 어떤 함의를 전달하여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배워봅시다. 




    ※ 애덤 스미스가 비판하려고 한 것은 '중상주의' (Mercantilism)

    - 국부란 화폐의 축적이 아닌 재화의 생산


    ● 제1편 노동생산력을 향상시키는 원인들과 노동생산물이 상이한 계급들 사이에 자연법칙에 따라 분배되는 질서 - 제1장 분업 (1쪽)

     

    한 나라의 국민의 연간 노동은 그들이 연간 소비하는 생활필수품과 편의품 전부를 공급하는 원천이며, 이 생활필수품과 편의품은 언제나 이 연간 노동의 직접 생산물로 구성되어 있거나 이 생산물과의 교환으로 다른 나라로부터 구입해온 생산물로 구성되고 있다.


    따라서, 한 나라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생활필수품과 편의품이 제대로 공급되고 있는지 그렇지 못한지는 이 직접 생산물 또는 그것과의 교환으로 다른 나라로부터 구입해온 생산물과 그것으 소비하는 사람의 수 사이의 비율에 의해 결정된다. (...)



    ● 제2편 자본의 성질 · 축적 · 사용 - 제2장 사회의 총재고의 특수한 부문으로 간주되는 화폐, 또는 국민자본의 유지비 (355쪽) 


    한 나라의 모든 주민들의 주간 또는 연간 수입이 화폐로 지불된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진정한 부(富), 그들 모두의 실질적인 주간 또는 연간 수입은 그들이 이 화폐로 구매할 수 있는 소비재의 양에 비례하여 크거나 작다. 그들 모두의 수입 전체는 화폐와 소비재를 합한 것과 같은 것이 아니라 이 둘 중 하나이고, 전자보다는 오히려 후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종종 한 사람의 수입을 매년 그에게 지불되는 금속 조각에 의해 표현하지만, 이것은 그 금속 조각의 금액이 그의 구매력의 크기, 즉 그가 매년 소비할 수 있는 재화의 가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그의 수입이 구매력 또는 소비능력에 있는 것이지 그 구매력을 표시하는 금속 조각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상)』, 비봉출판사, 1쪽, 355쪽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통해 비판하려고 한 것은 '중상주의'(Mercantilism)였습니다. 


    중상주의란 ▶'부(富, Wealth)가 화폐 또는 금은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고방식'과 ▶'이러한 국부를 무역수지 흑자와 제조업 육성을 통해 증진시켜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뜻합니다. 그리고 국부 증진을 위한 과정에서 ▶'국가가 무역을 통제해야 한다'(State Regulation of Trade)는 주장을 하는 사상입니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는 ▶'국부는 화폐의 축적이 아닌 생산의 증가'이며▶ '무역차액에 집착하는 건 잘못된 논리, 제조업과 농업은 둘 다 중요'하며 ▶'무역 독점권을 폐지하여 무역을 할 자유(Freedom to Trade)를 부여해야' 한다고 반박합니다.  


    우선 이해해야 하는 것은 '국가의 부'가 무엇인지 입니다. 중상주의자에게 국부란 금은의 축적이지만, 애덤 스미스는 '연간 노동의 직접 생산물 또는 교환으로 얻은 생산물'을 국부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화폐는 축적의 대상이 아닌 소비재를 구입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으로 보았죠.


    (주 : 이에 대해서는 '[경제학원론 거시편 ②] 왜 GDP를 이용하는가? - 현대자본주의에서 '생산'이 가지는 의미'를 통해, GDP를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야기 한 적 있습니다.)


    이제 국제무역과 관련한 중상주의자들의 주장과 애덤 스미스의 반박을 좀 더 알아봅시다.




    ※ 중상주의자들의 주장과 애덤 스미스의 반박 ①

    - 무역수지 흑자에 관하여

    - 토마스 먼 : "우호적인 무역수지(favorable balance of trade)가 필요하다"

    - 애덤 스미스 : "무역차액 학설보다 더 불합리한 것은 없다"


    • 16~17세기 중상주의자 토마스 먼(Thomas Mun)
    • 그가 1664년에 내놓은 『잉글랜드의 재보와 무역』(『England's Treasure by Forraign Trade』)


    우리의 재산과 재보를 늘리는 정상적인 수단은 무역이다. 여기서 지켜야 할 준칙은 우리가 이방인에게서 사서 쓰는 것보다 더 많은 가치를 그들에게 파는 것이다. (...)


    지금 2,000 파운드를 자신의 금고에 갖고 있고 매년 1,000 파운드를 수입으로 갖는 사람을 생각해보자. 이 사람이 매년 1,500 파운드를 지출한다면 그의 돈은 4년 만에 모두 없어질 것이다. 반면 검약의 길을 택해 매년 500 파운드를 지출한다면 그의 돈은 같은 기간에 두 배가 될 것이다. 이 준칙은 우리 공화국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지 않을 수 없다.


    - 토마스 먼, 1664, 『잉글랜드의 재보와 무역』(『England's Treasure by Forraign Trade』)

    - 홍훈, 2009, 『경제의 교양을 읽는다 - 고전편』,  60-61쪽에서 재인용 


    대표적인 중상주의자는 바로 토마스 먼(Thomas Mun) 입니다. 그는 1664년 출판한 『잉글랜드의 재보와 무역』을 통해 "무역수지가 우리 재보의 준칙이다" 라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재보(Treasure)는 금은의 축적을 뜻하며, 수출과 수입의 차액인 무역수지 흑자를 통해 금은을 축적해야 국부가 증가한다는 논리입니다. 그는 무역 차액만큼 국부가 늘어난다는 논리를 자연스럽게 여겼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사고방식은 오늘날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지난글 '[국제무역논쟁 시리즈] 과거 개발도상국이 비난했던 자유무역, 오늘날 선진국이 두려워하다'에서 소개하였듯이, 트럼프는 대중 무역적자를 패배의 결과물로 잘못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상수지 흑자에 집착하는 잘못된 관념'에 대해서는 두 차례 글을 통해 비판한 바도 있죠. (( [경제학으로 세상 바라보기]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은 것일까? / [경제학원론 거시편 ⑥] 외국의 저축을 이용하여 국내투자 증가시키기 -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은 것인가?)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국부=무역수지 흑자' 라는 관념을 비판할 수 있었던 기반은 애덤 스미스가 제공해주었습니다. 애덤 스미스는 "거의 모든 무역규제의 근거가 되고 있는 무역차액 학설보다 더 불합리한 것은 없다" 라고 강하게 비판합니다. 이제 『국부론』의 원문 일부를 읽으면서 애덤 스미스의 생각을 알아보도록 하죠.


    ● 제4편 정치경제학의 학설체계 - 제1장 상업주의 또는 중상주의의 원리


    정부의 관심은 금은의 수출을 경계하는 것으로부터 금은의 증감을 일으키는 유일한 원인인 무역수지의 감시 쪽으로 전환되었다. 정부의 관심은 하나의 쓸모없는 걱정으로부터, 훨씬 더 복잡하고 훨씬 더 당혹스럽지만 마찬가지로 쓸모없는, 다른 하나의 걱정으로 옮겨졌다. 먼(Mun)의 『잉글랜드가 외국무역에서 얻는 부(England's Treasure in Foreign Trade)』(1664년)라는 저서는 잉글랜드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상업국의 경제정책의 근본 격언이 되었다. (...)


    광산이 전혀 없는 나라는, 포도밭이 없는 나라가 포도주를 들여오는 것과 같이, 금은을 외국에서 가져와야 한다. 그러나 정부가 어느 한 가지보다 다른 한 가지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포도주를 살 돈을 가진 나라는 필요로 하는 포도주를 언제든지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금은을 살 수단[예: 포도주]을 가진 나라는 결코 금은의 부족을 겪지 않을 것이다


    금은은 다른 모든 상품과 마찬가지로 일정한 가격으로 구입되며, 금은이 다른 모든 상품의 가격이듯이, 다른 모든 상품은 금은의 가격이다. 


    우리는 정부의 개입 없이 무역의 자유에 의해 우리가 필요로 하는 포도주를 언제든지 공급받을 수 있다는 것을 완전히 안심하고 믿어도 된다. 또한 무역의 자유에 의해 우리는 우리 상품을 유통시키거나 다른 용도에 사용할 금은을 언제나 공급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마찬가지로 안심하고 믿어도 된다. (...)


    불필요한 금은을 국내에 도입하거나 붙들어 놓음으로써 그 나라의 부를 증가시키려고 하는 시도는 가정에 불필요한 주방도구를 보유케 함으로써 가정의 기쁨을 증가시키려는 시도만큼이나 어리석다는 것이다. 불필요한 주방도구를 구입하는 비용은 가정의 식료품의 양·질을 증가시키기는커녕 감소시킬 것이다. 마찬가지로, 불필요한 금은을 구매하는 비용은 어느 나라에서나 국민에게 의식주를 제공하고 국민을 고용하는 데 사용될 부를 필연적으로 감소시킬 수 밖에 없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상)』, 비봉출판사, 526쪽, 533쪽


    애덤 스미스가 보기에 금은의 축적을 위해 무역차액에 집착하는 것은 '쓸모없는 걱정'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상품을 생산하고 있다면 언제든지 이를 이용하여 금은과 교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상품 생산에 주력하는게 옳은 선택이지, 향후 있을지도 모르는 금은의 부족을 걱정하며 매달리는 것은 되려 국부를 줄이는 행동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세계경제에서도 외환보유고 축적에 집착하는 행위가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각주:1]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럼 중상주의자와 달리 애덤 스미스가 말하는 '재보의 준칙'이 무엇인지 아래의 내용을 통해 확인합시다.


    ● 제4편 정치경제학의 학설체계 - 제3장 무역수지가 불리한 나라로부터의 거의 모든 종류의 상품수입에 대한 특별한 제한


    거의 모든 무역규제의 근거가 되고 있는 무역차액 학설보다 더 불합리한 것은 없다


    이 학설은, 서로 교역하는 두 지역의 수지가 균형을 이루고 있다면 어느 누구도 이익을 보거나 손실을 보지 않는 반면, 그것이 한쪽으로 어느 정도 기울어져 있다면, 정확한 균형에서 기울어지는 정도에 비례하여, 한 쪽은 손실을 보고 다른 한 쪽은 이득을 얻는다고 가정한다. 이 두 가정은 잘못된 것이다. (...) 어떤 강요 · 제한 없이 양국간에 자연스럽고 규칙적으로 수행되는 무역은 양자 모두에게 유리하다. (...)


    나는 이익이나 이득이라는 것은 금은량의 증가가 아니라 그 나라의 토지 · 노동의 연간생산물의 교환가치 증가나 주민들의 연간소득 증대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양자는 서로 상대방의 잉여생산물의 일부에 대한 시장을 제공할 것이며, 사용된 자본, 즉 상대방의 잉여생산물의 일부의 생산 및 시장 출하를 위해 사용되어 그곳 주민들 사이에 분배되어 그들의 소득 · 생계를 제공한 자본을, 서로 보충해준다. 따라서 각국 주민 중의 일부는 그들의 소득 · 생계를 간접적으로 다른 쪽에서 얻게 되는 것이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상)』, 비봉출판사, 594~595쪽


    네. 애덤 스미스는 역시 '생산'을 강조합니다. 무역수지 흑자라고 부유하고 적자라고 빈곤한 것이 아닙니다. 무역은 서로 시장을 제공하는 행위이며, 생산물의 교환을 통해 소득 · 생계를 간접적으로 얻으며 양자 모두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 중상주의자들의 주장과 애덤 스미스의 반박 ②

    - 제조업에 관하여

    - 중상주의자 : "우호적인 상품구성(favorable commodity composition of trade)이 필요하다"

    - 애덤 스미스 : "농촌과 도시의 이득은 상호적이며 호혜적"


    1664년 토마스 먼은 '우호적인 무역수지'를 주장했으나, 애덤 스미스가 반박하기 이전에도, 중상주의자들 사이에서 '무역수지가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유용한 지표인지'에 관한 의문이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무역수지가 양적인 측면에서 가이드를 제공해줄 수 있을지라도, 질적인 측면(quality)은 알려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중상주의자들은 '어떠한 상품을 교환하는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중상주의자가 관심을 기울인 상품 종류는 무엇이었을까요?


    만약 어떤 국가가 제품을 위한 원료를 가지고 있다면, 원자재(raw material) 그 자체로 수출하는 것보다는 제품(manufacture)을 만들어서 수출하는 게 훨씬 이득이다. 왜냐하면 제품은 훨씬 더 가치가 있으며, 원자재보다 5배, 10배, 20배의 이득을 국가의 재보에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 Petyt, 1680, Britannia Languens, or a Discourse of Trade, 24쪽

    - Douglas Irwin, 1998, Against the Tide: An Intellectual History of Free Trade』

    38쪽에서 번역 재인용


    중상주의자가 바라보기에, 경제발전과 고용의 확장을 이끌어낼 수 있고 교역에서 더 많은 가치를 불러오는 것은 '제조업'(Manufacturing) 이었습니다. 원자재를 그대로 수출하는 것보다 제품으로 만들어서 수출을 하면 더 많은 금은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제조업은 다른 부문에 비해 더 많은 고용도 창출(greater employment)하며, 임금은 외국의 소득에 의해 지불된다(foreign paid income)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중상주의자들은 '제조상품 수출은 이득을 주며 외국 제조업자들을 위한 원자재 수출은 해를 끼친다. 원자재 수입은 이로우며 제조상품 수입은 충격을 준다.'는 생각을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국내에서 제조 생산이 일어나게끔 하는 것(manufacturing should be produced in the home market)이 주요 목적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중상주의자들은 다른 산업에 비해 '제조업'을 우위에 둔 반면에, 애덤 스미스는 '농업과 제조업의 균형성장'을 이야기 했습니다. 더 나아가 스미스는 제조업 부흥의 기원을 농업개량(the improvement of domestic agriculture and food production)에서 찾았습니다. 그의 논리를 살펴봅시다.


    ● 제1편 노동생산력을 향상시키는 원인들과 노동생산물이 상이한 계급들 사이에 자연법칙에 따라 분배되는 질서 - 제11장 토지의 지대


    토지의 개량·경작으로 한 가족의 노동이 두 가족에게 식량을 공급할 수 있을 때, 그 사회의 절반의 노동은 사회 전체에게 식량을 공급하는 데 충분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 나머지 반, 또는 적어도 그들 중의 대부분은 다른 물건을 마련하는 일, 다시 말하면 인간의 다른 욕망·기호를 만족시키는 일에 종사할 수 있다. 의복·주거·가구·마차는 이러한 욕망·기호의 주요 대상이라 하겠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상)』, 비봉출판사, 214쪽


    농업은 인간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식량을 제공합니다. 만약 먹고살만한 식량도 확보되지 않은 상태라면 그 이상의 기쁨은 생각도 못하게 됩니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만약 토지의 개량 덕분에 잉여생산물이 발생하고 농업에 적은 노동력만 필요하게 되면, 식품 이외의 것들을 누리면서 살 수 있게 됩니다. 애덤 스미스가 제조업의 기원을 농업개량에서 찾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어서 애덤 스미스는 농업개량과 제조업의 관계를 좀 더 명확히 설명하면서, 농업에 종사하는 농촌과 제조업에 종사하는 도시는 서로 상호적이며 호혜적이라고 강조합니다. 그의 설명을 살펴보죠.


    ● 제3편 각국의 상이한 국부증진 과정 - 제1장 국부증진의 자연적인 진행과정


    모든 문명사회의 대상업은 도시 주민과 농촌 주민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상업이다. (...) 농촌은 도시에 생활자료와 제조업 원료를 공급한다. 도시는 농촌 주민에게 제조품의 일부를 되돌려줌으로써 이 공급에 보답한다. (...) 양자의 이득은 상호적이고 호혜적이며, 다른 모든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경우에도 분업은 세분된 여러 가지 직업에 종사하는 상이한 사람들에게 이익이 된다. (...) 


    사물의 본성상 생필품은 편의품·사치품에 우선하는 것과 같이, 전자를 생산하는 산업은 후자를 생산하는 산업에 반드시 우선해야 한다. 그러므로 생필품을 공급하는 농촌의 경작·개량은 편의와 사치의 수단을 제공할 뿐인 도시의 성장에 반드시 우선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도시의 생필품을 구성하는 것은 시골의 잉여생산물, 즉 경작자의 생필품을 넘는 부분뿐이며, 따라서 이 잉여생산물의 증가에 의해서만 도시는 발달할 수 있다.  (...)


    도시와 시골의 주민들은 서로서로에게 봉사한다. 도시는 상설시장이며, 시골 주민들은 이곳에 들러 그들의 천연생산물을 제조품과 교환한다. 도시 주민들에게 작업원료와 생활자료를 공급하는 것은 이 상업이다. 


    도시 주민이 시골 주민들에게 판매하는 완성품의 양은 필연적으로 도시 주민이 구입하는 원료와 식료품의 양을 규제한다. 그러므로 도시 주민의 일거리와 생활자료는 완성품에 대한 시골의 수요증가에 비례해서만 증가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수요는 토지개량·경작확대에 비례해서만 증가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이 만든 제도가 사물의 자연적 경로를 방해하지 않는다면, 도시의 부의 증가와 도시의 성장은 국토·농촌의 개량·경작의 결과이며 그것에 비례한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상)』, 비봉출판사, 463~466쪽


    이처럼 애덤 스미스는 농업개량의 결과, 완성품에 대한 시골의 수요가 증가하기 때문에 도시 제조업의 일거리가 생겼다고 설명합니다. 농업개량은 제조업과 경제발전에 선행하여야 합니다. 따라서 사회의 자본이 농업→제조업→외국무역 순서로 투입되는 건 '사물의 자연적 순서'(natural order of things) 라고까지 주장합니다. 




    ※ 중상주의자들의 주장과 애덤 스미스의 반박 ③

    - 국가의 역할에 관하여

    - 중상주의자 : 국가의 무역규제가 필요

    - 애덤 스미스 : '무역을 할 자유'를 개인들에게 부여해야


    앞서 살펴본 중상주의자의 주장을 잠깐 다시 정리해봅시다. 이들은 금은의 축적 정도를 알려주는 '우호적인 무역수지'를 선호한데 이어서, 제조업 위주의 수출 등 '우호적인 상품구성'이 이루어져야 국부가 증진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럼 이를 달성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소비자를 가만히 내버려두면 소비증가로 인해 수출보다 수입이 많아질 수 있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이 제조업 자본가 보다는 대지주가 되기를 희망한다면 제조업 발달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즉, 경제를 가만히 내버려 둔다면 '개인과 공공의 이익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상황'(disharmony between private and public interest)이 발생합니다. 따라서, 중상주의자들은 무역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자와 무역이 금지된 자를 구분하고, 제조업을 인위적으로 육성하게끔 도와주는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 제4편 정치경제학의 학설체계 - 제1장 상업주의 또는 중상주의의 원리


    부(富)는 금은으로 구성된다는 원칙과, 그런 금속은 광산이 없는 나라에서는 오직 무역차액에 의해, 또는 수입하는 것보다 큰 가치를 수출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는 원칙이 확립되었기 때문에, 국내소비를 위한 외국재화의 수입을 가능한 한 줄이고 국내산업의 생산물의 수출을 가능한 한 증가시키는 것이 필연적이고 경제정책의 주된 목적으로 된 것이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상)』, 비봉출판사, 545~546쪽


    중상주의자들은 '개인과 공공의 이익이 불일치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무역정책'(trade policy) 혹은 '상업정책(commercial policy)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른바 '국가의 무역규제'(state regulation of trade) 입니다. 


    중상주의자들의 사상으로 상업정책은 방향이 명료해졌습니다. 원자재 수입에 낮은 관세를 매기고, 제조업 수입에는 높은 관세를 부과합니다. 반대로 원자재 수출은 돕지 않고 제조업 수출은 보조금과 장려금을 지급합니다. 국가는 철저히 제조업을 지키는 방향으로 상업정책을 집행하고, 제조업 육성을 위해 국내시장에서 독점권도 허가해줍니다.


    이에 대해 애덤 스미스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그는 무역차액 학설은 불합리하다고 평가했으며, 제조업을 우위에 두지도 않았습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개인이 자연적자유(natural liberty)에 따라 행동한다면, 개인과 공공의 이익은 일치'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국가가 무역을 규제하기 보다 '무역을 할 자유'(freedom to trade)를 상인들에게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국부론』의 상당부분에 이러한 주장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보이지 않는 손'(an invisible hand)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등장하게 됩니다.


    ● 제4편 정치경제학의 학설체계 - 제2장 국내에서 생산될 수 있는 재화를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에 대한 제한


    (548~549쪽)

    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는 재화의 수입을 높은 관세나 절대적 금지에 의해 제한함으로써 이 재화를 생산하는 국내산업은 국내시장에서 다소간 독점권을 보장받는다. (...) 국내시장의 이와 같은 독점권은 그런 권리를 누리는 특정 산업을 종종 크게 장려할 뿐만 아니라, 독점이 없었을 경우 그것으로 향했을 것보다 더 큰 노동·자본을 그 산업으로 향하게 한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런 독점권이 사회의 총노동을 증가시키거나 그것을 가장 유리한 방향으로 이끄는 경향이 있는가는 결코 그렇게 분명하지 않다.


    각 개인은 그가 지배할 수 있는 자본이 가장 유리하게 사용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사실, 그가 고려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이익이지 사회의 이익은 아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또는 오히려 필연적으로, 그로 하여금 사회에 가장 유익한 사용방법을 채택하도록 한다. (...)


    (552쪽)

    사실 그는 공공의 이익(public interest)을 증진시키려고 의도하지도 않고, 공공의 이익을 그가 얼마나 촉진하는지도 모른다. 외국 노동보다 본국 노동의 유지를 선호하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안전(security)을 위해서고, 노동생산물이 최대의 가치를 갖도록 그 노동을 이끈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이익(gain)을 위해서다. 


    이 경우 그는, 다른 많은 경우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손(an invisible hand)에 이끌려서 그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그가 의도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해서 반드시 사회에 좋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흔히, 그 자신이 진실로 사회의 이익을 증진시키려고 의도하는 경우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그것을 증진시킨다. 


    나는 공공이익을 위해 사업한다고 떠드는 사람들이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사실 상인들 사이에 이러한 허풍은 일반적인 것도 아니며, 그런 허풍을 떨지 않게 하는 데는 몇 마디 말이면 충분하다. (...)


    (553쪽)

    자기의 자본을 국내산업의 어느 분야에 투자하면 좋은지, 그리고 어느 산업분야의 생산물이 가장 큰 가치를 가지는지에 대해, 각 개인은 자신의 현지 상황에 근거하여 어떠한 정치가나 입법자보다 훨씬 더 잘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


    국내의 특정한 수공업·제조업 제품에 대해 국내시장의 독점권을 부여하는 것은 어느 정도 각 개인에게 그들의 자본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를 지시하는 것으로, 거의 모든 경우, 쓸모 없거나 유해한 규제임에 틀림없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상)』, 비봉출판사, 548~553쪽


    결국 무역차액과 제조업을 강조하는 중상주의 사상의 기본뿌리는 '개인과 공공의 이익이 불일치' 한다는 사상이었고, 애덤 스미스가 무역의 자유와 보이지 않는 손을 주장하는 기본뿌리는 '완전히 자유롭고 공정한 자연적인 체계'(natural system of perfect liberty and justice) 안에서 개인과 공공의 이익을 일치'한다는 자유주의 사상입니다.




    ※ 애덤 스미스의 자유무역 사상의 논리 ①

    - 경제성장으로 연결되는 자유무역

    - 자원의 효율적 사용을 가능케하는 자유무역


    지금까지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을 통해 당시 지배적인 사상이었던 중상주의를 조목조목 비판하였습니다. 


    이어서 그는 무역의 독점권을 없애고 '무역을 할 자유'(Freedom to Trade)를 상인들에게 부과하고, 수입관세와 수출보조금 등을 없애는 '자유무역'(Free Trade)을 실시하면 얻을 수 있는 이득(gain)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무역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gains from trade)는 크게 2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 동태적이익(Dynamic Gain), 둘째, 정태적(Static Gain) 입니다. 


    ● 무역의 동태적이익 (Dynamic Gain) 

    - 무역을 통한 시장확대는 분업의 고도화와 생산력 발전을 이끈다 


    : 동태적이익은 말그대로 '시간이 흘러가도 무역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뜻하며, 경제학에서는 주로 '경제성장'(growth) 혹은 '경제발전'(development)을 의미합니다. 


    애덤 스미스는 무역을 통한 시장확대는 분업의 고도화와 생산력 발전을 이끈다고 믿었습니다. 『국부론』의 본 제목은 『국부의 성질과 원인에 대한 연구』이며,  '분업을 통한 생산'을 통해 국부가 증진된다고 보았습니다. 더 나아가 애덤 스미스는 '무역을 통한 시장확대'가 '분업을 최고도로 진행' 시켜 '생산력과 부를 증가시킨다'고 분석했습니다. 


    ● 제4편 정치경제학의 학설체계 - 제1장 상업주의 또는 중상주의의 원리


    금은의 수입은 한 나라가 외국무역으로부터 끌어내는 주된 이득도 아니며, 유일한 이득은 더더욱 아니다. 외국무역이 행해지는 지역 사이에서는 어디에서건 국민들은 외국무역으로부터 두 가지 이득을 끌어낸다.


    외국무역은 그들의 토지·노동의 생산물 중 그들 사이에서 수요가 없는 잉여분을 반출하고 그대신 수요가 있는 다른 것을 가져온다. 외국무역은 그들에게 남는 것을, 그들의 욕구를 만족시키고 그들의 향락을 증가시키는 데 사용될 다른 것과 교환함으로써, 그 잉여분에 가치를 부여한다. 따라서 국내시장의 협소함도 어떤 기예(技藝:art)나 제조업의 각 분야에서 분업이 최고도로 진행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


    그들의 노동생산물 중 국내소비를 초과하는 어떠한 부분에 대해서도 넓은 시장을 개방함으로써, 외국무역은 그들로 하여금 생산력을 발전시키게 하고, 연간생산물을 최고도로 증가시키게 하며, 그리하여 사회의 실질수입과 부를 증가시키게 한다. (...)


    아메리카의 발견이 유럽을 부유하게 한 것은 금은의 수입에 의한 것이 아니다. (...) 아메리카의 발견은 확실히 가장 본질적인 변화를 야기했다. 그것은 유럽의 모든 상품에 새롭고 무궁무진한 시장을 개방함으로써, 옛날 상업의 좁은 영역에서는 생산물의 큰 부분을 흡수할 시장의 부족 때문에 일어날 수 없었던 새로운 분업·기술개량을 야기했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상)』, 비봉출판사, 541쪽


    외국과의 교역이 없이 좁은 국내시장만 가졌다면, 수요가 없는 상품을 생산할 필요가 없게되고 이에따라 분업도 세분화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외국무역을 통해 넓은 시장을 확보하면, 새로운 수요가 생겨난 결과 분업이 고도화 된다는 논리 입니다.



    ● 무역의 정태적이익 (Static Gain) 

    - 무역은 효율적인 자원사용을 이끌어낸다


    : 정태적이익은 '그 시점에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뜻하며, 경제학에서는 주로 '자원의 효율적 사용'(efficiency gain)을 의미합니다.


    애덤 스미스는 왜 무역은 효율적인 자원사용을 이끌어낸다고 믿었던 걸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외국산 제품이 국내산 제품보다 값싸기 때문입니다(lower price).  


    ● 제4편 정치경제학의 학설체계 - 제2장 국내에서 생산될 수 있는 재화를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에 대한 제한


    국내의 특정한 수공업 · 제조업 제품에 대해 국내시장의 독점권을 부여하는 것은 어느 정도 각 개인에게 그들의 자본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를 지시하는 것으로, 거의 모든 경우, 쓸모 없거나 유해한 규제임에 틀림없다.


    만약 국산품이 외래품만큼 싸게 공급될 수 있다면 이러한 규제는 명백히 쓸모 없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렇나 규정은 일반적으로 유해하다. 현명한 가장(家長)의 좌우명은, 구입하는 것보다 만드는 것이 더욱 비싸다면 집안에서 만들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


    모든 개별 가구에 대해서 현명한 행동이 대국에 대해서는 어리석은 행동이 될 수는 없다. 만약 외국이 우리가 스스로 제조할 때보다 더욱 값싸게 상품을 공급할 수 있다면, 우리가 비교우위를 가진 국산품의 일부로 그것을 사는 것이 유리하다. 


    이렇게 하더라도, 한 나라의 총 노동은 그것을 고용하는 자본과 일정한 비례관계에 있기 때문에, 위에서 설명한 각종 수공업자들의 노동이 감소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 나라의 총노동도 감소하지는 않을 것이고, 다만 가장 유리하게 이동될 수 있는 방도를 찾게 될 것이다. 직접 제조하는 것보다 더 싸게 구매할 수 있는 상품으로 한 나라의 총노동이 향한다면, 총노동이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 사용되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상)』, 비봉출판사, 553~554쪽


    위와 같이 애덤 스미스에게 무역의 정태적이익은 너무나도 당연해 보였습니다. 직접 제조하는 것보다 더 싸게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드는 데 힘을 쏟는 건 비합리적이기 때문이죠. 만약 그 힘이 우위를 가진 국산품 생산에 사용된다면 생산량이 더욱 증가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재차 이 사실을 강조합니다.


    ● 제4편 정치경제학의 학설체계 - 제2장 국내에서 생산될 수 있는 재화를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에 대한 제한


    특정 상품의 생산에서 다른 나라가 누리고 있는 자연적 이점이 한 나라에 비해 너무나도 크다면, 그 상품과 경쟁하는 것이 헛수고라는 것은 세상 사람들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바이다. (...)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대해 누리는 우위(advantage)가 천부적인 것이건 후천적으로 획득된 것이건, 그것은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 한 나라가 이러한 우위를 가지고 다른 나라가 그것을 가지지 못하는 한, 후자는 스스로 생각하기보다 전자로부터 구입하는 것이 항상 더 유리하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상)』, 비봉출판사, 555쪽


    애덤 스미스는 왜 어떤 제품은 국내에서 싸게 만들고, 다른 제품은 외국에서 싸게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원인이 어디있든지간에 '싼 곳에서 상품을 구입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었죠. 그는 무역이 가져다주는 정태적이익을 반복해서 강조했습니다.




    ※ 애덤 스미스 자유무역 사상의 논리 ②

    - 시장의 자동조절기능을 믿어라


    이제는 단순히 '(자유)무역이 가져다주는 이익'을 넘어서서, 무역 및 상업정책과 관련하여 자유주의자로서 애덤 스미스의 사상이 드러나는 부분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 자유로운 무역이 국내에 가져올 수 있는 충격은? (Trade Effects on Income Distribution)

    - 노동자는 한 분야에서 다른 분야로 쉽게 옮길 수 있다


    개개인의 자연적 자유(natural liberty)에 따른 행위가 공공의 이익과 일치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자유의지에 따른 행위가 다른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할겁니다. 마찬가지로 '무역을 할 자유'와 '자유무역'이 공공의 이익을 안겨주려면, 무역개방으로 피해를 보는 계층이 없어야 합니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애덤 스미스는 큰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아래 원문을 살펴보죠.


    ● 제4편 정치경제학의 학설체계 - 제2장 국내에서 생산될 수 있는 재화를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에 대한 제한


    자유무역을 회복함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이 통상의 일터와 통상의 생계수단을 일시에 잃어버린다고 하더라도, 이로 인해 그들이 고용 또는 생계를 박탈당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


    우리가 병사의 습관과 제조공의 습관을 비교해 볼 때, 병사가 새로운 직업으로 전환하는 것보다 제조공이 새로운 직업으로 전환하는 것이 더 쉽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제조공은 언제나 자기 노동에 의해 생계를 얻는 데 익숙 (...) 대다수 제조업에는 성질이 비슷한 기타의 제조업이 있기 때문에, 노동자가 한 분야에서 다른 분야로 쉽게 옮길 수 있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상)』, 비봉출판사, 568쪽


    위와 같이 애덤 스미스는 '노동자는 한 분야에서 다른 분야로 쉽게 옮길 수 있기' 때문에, 자유무역으로 인한 실업문제가 초래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 인위적으로 제조업을 육성하는 유치산업보호론 비판

    - 자본과 노동이 자연적인 용도를 찾도록 방임되었을 때 사회자본이 더 빨리 증가


    그리고 애덤 스미스는 자본과 노동을 인위적으로 특정 산업(제조업)에 배치하여 육성하는 정책 또한 반대했습니다. 중상주의자들에게 제조업은 중요한 산업이기 때문에, 외국 제조업 상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등의 규제정책으로 수입경쟁에서 보호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애덤 스미스가 보기에 이는 자본과 노동의 자연적인 용도를 훼치는 정책에 불과했습니다.


    ● 제4편 정치경제학의 학설체계 - 제2장 국내에서 생산될 수 있는 재화를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에 대한 제한


    사실 이러한 규제에 의해 특정제조업이 그런 규제가 없었을 경우에 비해 더 빨리 확립될 수도 있고, 일정한 시간이 지난 뒤에는 외국과 같이 싸거나 더 싸게 국내에서 생산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의 노동이, 비록 이처럼 그런 규제가 없었을 경우에 비해 더욱 빨리 특정분야에 유리하게 전환된다고 하더라도, 사회의 노동이나 사회의 수입 총액이 이와 같은 규제에 의해 증대될 것이라고 말할 수는 결코 없다. 


    왜냐하면, 사회의 노동은 자본이 증가하는 비율에 따라 증가할 수 있을 뿐인데, 자본은 수입 중에서 점차 절약되어 저축되는 것에 비례해서만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규제의 직접적인 효과는 그 사회의 수입을 감소시키는 것이고, 그리고 수입을 감소시키는 것이, 자본과 노동이 자연적인 용도를 찾도록 방임되었을 때 자연발생적으로 증가하는 것보다 더 빨리, 사회자본을 증가시킬 수는 분명히 없을 것이다


    이러한 규제가 없음으로써 사회가 문제의 제조업을 가질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 사회는 그 때문에 어느 한 기간 내에 필연적으로 더 가난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 발전의 어느 한 시기에 사회의 모든 자본과 노동은, 비록 다른 대상에 대해서이긴 하지만, 당시에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각 시기마다 그 사회의 수입은 그 사회의 자본이 제공할 수 있는 최대의 수입이며, 자본과 소득은 모두 가능한 최고의 속도로 증가했을 것이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상)』, 비봉출판사, 555쪽


    애덤 스미스가 생각하기에 그 시기에 제조업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 더 가난한 상태임을 보여주는 게 아닙니다. 그저 그 시기 사회에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 자본과 노동이 사용되고 있을 뿐입니다. 지금 현재 제조업이 없다는 건, 지금 현재 사회에 도움을 주는 산업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낼 뿐입니다. 


    규제 정책이 없다면 자본과 노동은 알아서 자연적인 용도를 찾아가게 되어 있고, '각 개인은 자신의 현지 상황에 근거하여 어떠한 정치가나 입법자보다 훨씬 더 잘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은 명백'[각주:2]하기 때문에, 현재 경제는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최대 생산량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 애덤 스미스 자유무역 사상의 논리 ③

    - 중상주의는 소비자를 희생시키고 제조업 생산자의 독점이익만 고려



    애덤 스미스가 가지고 있는 자유주의 사상은 『국부론』 <제4편 제8장 중상주의에 대한 결론>을 통해 정점을 찍습니다. 여기서 애덤 스미스가 강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은 '외국상품의 수입을 제한함으로써 국내 제조업자에게 독점권을 부여하는 정책', 즉 중상주의 그 자체입니다. 여기서 그는 앞서 중상주의를 비판하면서 전개했던 논리를 반복합니다.


    ● 제4편 정치경제학의 학설체계 - 제8장 중상주의에 대한 결론


    (794) 우리나라의 중상주의에 의해 주로 장려되는 것은 부자와 권력자의 이익을 위한 산업뿐이다. 가난한 사람과 빈궁한 사람의 이익을 위한 산업은 너무나 자주 무시되거나 억압을 받고 있다. (...)


    (813)

    국내에서 생산되거나 제조되는 상품과 경쟁관계에 있는 모든 외국상품의 수입이 제한되고 있다는 점에서, 국내 소비자의 이익은 명백히 생산자의 이익에 희생되고 있다. 이런 독점이 거의 언제나 야기하는 가격상승을 소비자가 감수해야 하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생산자의 이익을 위해서이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하)』, 비봉출판사, 764~813쪽


    : 외국산 제품이 국내산보다 값이 싸다면 이를 수입해와 사용하는 게 마땅한데, 무역장벽으로 인해 국내 소비자가 값비싼 제품을 사용하게 됨으로써 소비자의 이익은 피해를 보고 국내 제조업자만 이익을 봅니다. "중상주의에 의해 장려되는 것은 부자의 이익을 위한 산업 뿐" 입니다.


    ● 제4편 정치경제학의 학설체계 - 제8장 중상주의에 대한 결론


    이런 규제가 국민의 자랑스러운 자유를 얼마나 위반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 자유를 지키기 위해 골몰하고 있는 척하지만, 이 경우 그 유는 우리나라의 상인·제조업자의 하찮은 이익을 위해 분명히 희생당하고 있다


    이런 모든 규제들의 특기할 만한 동기는 우리나라 제조업 그 자체의 개선에 의해서가 아니라, 모든 이웃 나라의 제조업을 억압함으로써, 거추장스럽고 불편한 상대와의 귀찮은 경쟁을 가능한 한 끝냄으로써 우리나라의 제조업을 확장시키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제조업자들은 그들 자신이 국민 전체의 재능을 독점하고 있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하)』, 비봉출판사, 814쪽


    : 자유무역이 실시되었더라면 '어떠한 정치가나 입법자보다 훨씬 더 잘 판단하는 개인'은 자본과 노동을 가장 큰 가치를 만들어내는 산업에 투자[각주:3]할 겁니다. 또한 규제가 없다면 '자본과 노동은 알아서 자연적인 용도를 찾아가게 되어'서 최대의 생산량을 효율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역장벽 때문에 국내 제조업자들은 독점권을 누리면서 '국민 전체의 재능을 독점'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훨씬 더 잘 판단하는 개인의 자유'는 침해됩니다. 즉, 중상주의의 무역장벽은 '국민의 자랑스러운 자유를 위반'합니다. 


    ● 제4편 정치경제학의 학설체계 - 제8장 중상주의에 대한 결론


    이러 중상주의 전체를 고안해낸 것이 과연 누구인가를 파악하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우리는 그것을 고안해낸 사람이 소비자들이 아니라 생산자들이었다고 믿어도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소비자의 이익은 저적으로 무시되어 왔음에 반해 생산자의 이익은 매우 신중한 주의가 기울여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생산자들 중 우리나라의 상인·제조업자들이야말로 중상주의의 특히 중요한 설계자들이다. 이 장에서 주의깊게 살펴본 중상주의의 여러 규제들에서는 우리나라 제조업자들의 이익이 특별히 우대되었고, 그리고 소비자의 이익이 희생되었을 뿐 아니라 기타 생산자들[예컨대 원료생산자]의 이익이 더 크게 희생되었다.


    -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1776, 『국부론(하)』, 비봉출판사, 816쪽


    : 그렇기 때문에, 중상주의는 제조업자의 이익만을 위하는 정책이지, 소비자와 원료생산자의 이익은 고려하지 않습니다. 만약 관세와 수입제한을 없애는 자유무역이 모두의 이익을 증대시킬 수 있는 것과 대조적입니다. 


    이를 종합해볼 때,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통해 '자유무역'과 '보이지 않는 손'을 말한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단순히 자유방임사상을 가졌기 때문에 책을 쓴 것이 아니라, '외국상품의 수입을 제한함으로써 국내 제조업자에게 독점권을 부여하는 중상주의'를 비판하기 위해서 『국부론』을 집필한 것입니다.




    ※ 자유무역을 둘러싼 논쟁, 오늘날까지 이어지다


    지금까지 애덤 스미스의 1776년 작품 『국부론』의 원문 일부를 읽어나가면서, 중상주의와 자유무역에 관한 그의 주장과 사상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펼쳐지고 있는 국제무역논쟁에 관심 많으신 분들은 '보호무역주의자 vs 자유무역주의자'의 대립 구도와 논리가 18세기에도 똑같았다는 점을 느꼈을 겁니다. 지난글 '[국제무역논쟁 시리즈] 과거 개발도상국이 비난했던 자유무역, 오늘날 선진국이 두려워하다'에서 소개했던 몇몇 논점들이 『국부론』 내에서 그대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① 무역수지 흑자는 정말로 의미가 없나


    : 애덤 스미스는 "교환을 할 수 있는 상품이 있는 한 금은의 부족을 겪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주류 경제학자들은 "수출과 수입은 동전의 양면이다. 수출은 한 국가가 수입품을 획득하기 위해서 포기하는 재화이다. 즉, 수출은 수입대금을 지불하기 위한 소득을 벌어들이는 데 불과하다."[각주:4] 라는 논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무역수지 흑자 결정요인에 관한 경제학자들의 생각 참고  [경제학으로 세상 바라보기]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은 것일까? / [경제학원론 거시편 ⑥] 외국의 저축을 이용하여 국내투자 증가시키기 - 경상수지 흑자는 무조건 좋은 것인가?)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무역수지 흑자를 국제경쟁에서 승리한 결과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정말로 무역수지 흑자는 의미가 없는 지표일까요? 앞으로 [국제무역논쟁 시리즈]를 통해 생각을 정교하게 가다듬어 봅시다.



    ② 제조업은 독특한 특성을 가진 업종이 아닌가


    : 과거 중상주의나 오늘날 보호무역 모두, 결국 핵심은 '제조업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있습니다. 


    중상주의자들에게 제조업은 더 많은 수출가치와 고용을 만들어내는 업종입니다. 과거 개발도상국 정책결정권자와 1980년대 미국 그리고 오늘날 선진국에서 보호무역 흐름이 부상한 것도 제조업 육성 및 보호를 위해서였습니다. 반면 애덤 스미스에게 제조업은 그다지 특별한 산업이 아닙니다. 따라서, 중상주의적 정책은 그저 소비자와 기타 생산자를 희생시키고 제조업 생산자만을 위한 것이 됩니다. 


    제조업 육성 및 보호를 둘러싼 논쟁은 18세기에 종식되지 못한 채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또한 [국제무역논쟁 시리즈]를 통해 자세히 살펴볼 계획입니다. 



    ③ 개인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은 일치하는가


    : 중상주의나 보호무역주의는 "개인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국가가 개입하여 무역을 규제할 것을 요구합니다. 반면, 애덤 스미스와 자유무역주의자는 "개인의 자유의지에 따른 행위가 공공의 이익도 불러온다"고 생각합니다.  


    두 사상의 대립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습니다. 미국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장관을 역임했던 로버트 라이히(Robert Reich)가 쓴 아래의 글을 읽어보죠.


    ● 스푸트니크의 순간이라는 표현이 아쉬운 이유(Why our Sputnik moment will fall short)


    미국의 기업들은 사상 최고의 수익을 올리는 기업들이 적지 않을 정도로 우월한 경쟁력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성공의 상당 부분은 미국밖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제너럴일렉트릭은 미국인보다 외국의 노동자들을 더 많이 고용하고 있다. 제너럴모터스는 미국 내보다 중국에서 더 많은 자동차를 팔고 있다. (...)


    오바마의 연설은 기업의 수익과 일자리의 연계가 끊어졌다는 점을 외면한 것이고, 일자리 창출을 어떻게 할 것인지 설명하지도 못했다. (...) 정부는 일반 노동자 가정의 복리를 보호하고 개선하기 위해 존재한다. 제대로 된 정부가 없다면 미국인들은 점점 글로벌화되는 기업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런 기업들은 어디서 수익이 나든 오직 돈벌이에만 관심이 있다.


    - Robert Reich, 'Why our Sputnik moment will fall short', <FT>, 2011.01.26

    - "오바마가 말한 '스푸트니크의 순간', 핵심을 벗어났다". <프레시안>. 2011.01.27 에서 재인용



    ● '450억 달러 딜', 미국이 중국에게 배워야 할 것


    제너럴일렉트릭(GE) 등 미국의 여러 기업들이 중국과 에너지와 항공 관련 제조 계약을 맺게 되지만, 상당부분이 중국에서 생산될 것이다. GE와 중국이 합작한 업체가 상하이에 설립될 예정인데, 여기서 만드는 새로운 항법시스템 장치들이 보잉 항공기에 들어갈 것이다. 


    미국에게는 국가경제전략이 아니라 글로벌 기업만 있다. 바로 이런 측면을 봐야 한다. 중국의 국가 경제전략은 중국을 미래의 경제 동력으로 만드는 것이다. 중국은 가능한 한 미국으로도 많은 것을 배워 미국을 넘어서려고 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태양전지와 전기배터리 기술에서 미국을 넘어서고 있다. 중국은 기초 연구와 교육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지난 12년 동안 중국은 하나하나가 MIT에 맞먹는 20개의 대학을 건립했다. 중국의 목표는 힘과 위상, 고임금 일자리에서 중국을 최고의 위치에 올려놓는 것이다. 반면 미국은 국가 경제전략이 없다. 미국에는 그저 어쩌다 미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 기업들이 있을 뿐이다.


    - Robert Reich, 'The Real Economic Lesson China Could Teach Us', 2011.01.19

    - '450억 달러 딜', 미국이 중국에게 배워야 할 것', <프레시안>, 2011.01.20에서 재인용


    로버트 라이히는 오늘날 기업의 이윤추구 행위가 국가경제의 이익으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반면 중국정부는 치밀하게 세워진 경제전략 하에 기업의 이익이 국가경제의 이익으로 이어지게끔 하고 있다고 부러워 합니다.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중상주의, 보호무역주의를 넘어서서 '국가자본주의'(state capitalism)을 요구하는 주장으로까지 이어집니다. 또한 국가가 주도하여 경제주체들의 행위를 조정해야한다는 생각은 '제조업 육성 및 보호의 필요성'과 결합하여, 강력한 무역정책(trade policy) 및 상업정책(commercial policy)으로 연결됩니다. 


    이러한 논리가 타당한지에 대하여도 [국제무역논쟁] 시리즈를 통해 살펴봅시다.



    ④ 자유무역으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 이득을 얻을 수 있을까


    : 애덤 스미스는 국제무역의 발생원인을 '서로 다른 가격'에서 찾았습니다. 만약 외국이 더 값싸게 제품을 만들어낸다면, 우리는 이를 구입하여 사용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왜냐구요? 거창한 논리는 필요없습니다. 그저 외국산제품 가격이 국산품보다 싸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부문에서 우위에 놓인 국가'는 무역을 통해서 이득을 얻지 못한다는 말일까요? 애덤 스미스가 말한 우위는 '절대우위'(Absolute Advantage)[각주:5] 입니다. 그럼 선진국이 모든 부문에 대해 절대우위에 놓여있으면 무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인가요?


    '자유무역의 이익'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애덤 스미스의 절대우위론은 보완이 필요해 보입니다. 따라서, '자유무역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에게 상호이득(mutual gain)을 준다'는 논리는 1817년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Comparative Advantage)을 통해 증명됩니다. 


    앞으로 [국제무역이론 Revisited]를 통해,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에 대해 자세히 알아봅시다.



    ⑤ 시장의 자기조정기능은 작동하는가


    : 애덤 스미스는 자유무역과 무역개방이 피해를 불러올수도 있다는 사실에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아니, 피해를 불러오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중상주의가 소비자와 제조업 이외 생산자를 희생시키는 구조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렇게 믿은 이유는 앞서 살펴보았듯이 '시장의 자기조정기능'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무역개방으로 일자리를 잃은 제조업 근로자는 손쉽게 다른 일자리를 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정치가나 입법자보다 훨씬 더 잘 판단하는 자본가'는 최대의 이윤을 주는 새로운 곳으로 자본을 투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현실에서 시장의 자기조정기능은 불완전하게 작동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는 쉽게 새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외국과의 경쟁으로 몰락한 산업을 다른 산업이 빠르게 대체하지도 못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에는 '무역개방이 소득분배 및 산업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에 대해서도 앞으로 깊게 알아봅시다. 




    ※ 다음글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이제 다음글 [국제무역이론 Revisited ②] 데이비드 리카도,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다 에서 '자유무역 사상의 발전'에 영향을 끼친 애덤 스미스 이외의 또 다른 학자 데이비드 리카도의 주장을 알아보도록 합시다. 


    애덤 스미스는 제조업 생산자만을 우대하는 중상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이론을 말했으나, 데이비드 리카도는 "제조업 자본가의 이윤 증대를 위해 자유무역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리카도는 애덤 스미스가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무역개방이 계층별 소득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면서 자유무역이론의 폭을 넓혔습니다.


    다음글을 읽어나가면, 자유무역 사상의 발전 배경 및 오늘날 자유무역을 둘러싼 논쟁을 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을겁니다.




    1. 글로벌 과잉저축 - 2000년대 미국 부동산가격을 상승시키다. 2014.07.11 http://joohyeon.com/195 [본문으로]
    2. 중상주의자들의 주장과 애덤 스미스의 반박 ③ 에서 소개한 국부론 553쪽 내용 다시 인용 [본문으로]
    3. 중상주의자들의 주장과 애덤 스미스의 반박 ③ 에서 소개한 국부론 553쪽 내용 다시 인용 [본문으로]
    4. 참고 : Douglas Irwin. 2015. 'Free Trade Under Fire' 4th Edition [본문으로]
    5. 국부론에서 '비교우위'란 표현을 썼지만, 오늘날 알려진 비교우위와는 다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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